어렸을 때부터 미래지향적 인간이었다.
현재에 집중하기보다 언제나 앞날에 대한 고민과 걱정만 가득했다. 머릿속에는 항상 미래에 내가 겪을 일들이 떠돌고, 그 일들을 미리 준비하기 위한 계획들도 한가득이었다. 때로는 게임을 하면서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도, 연인과 데이트를 하면서도, 내가 계획해둔 일들을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에 100%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렴풋이 수능 공부를 걱정했다.
당시에는 필요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수능 공부를 시작하면 많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속독법을 익히기로 했다. 방 안 이곳저곳에 '속독법 마스터', '하루 2시간 연습' 등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구를 하얀 A4용지에 유성매직으로 큼직하게 적었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장소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두었다. 독학의 첫 번째 과정은 흰 종이에 가득 찬 검은색 원(●) 글자를 하나하나 잔상만 남기는 느낌으로 빠르고 훑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몇 번 연습하다 보니 눈이 뱅글뱅글 도는 것 같고 현기증이 났다. 연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 후부터 점차 연습의 빈도가 줄었다. 어느샌가 나는 벽에 붙은 종이들도 슬며시 떼어버렸다.
입대하면서부터 취업 준비를 생각했다.
나의 대학 시절은 지금보다는 취업이 수월했다. 취업 준비는 군대를 다녀온 뒤부터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으로 여겨졌는데, 나는 군 복무 기간에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전공과목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하기로 계획했다. 적당한 전공 점수에 높은 영어점수로 취업의 승부를 볼 심산이었다.
카투사를 먼저 지원했다. 탈락이었다. 차선책으로 육군보다는 여가가 많은 공군으로 입대하였는데, 훈련소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함께 있는 부대가 오산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군이 가까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영어를 쓸 기회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오산에 있는 부대로 지원하였고 발령까지 받게 되었다. 막상 부대에 들어가니 현실은 달랐다. 같은 부대 안에 있었지만, 지역 자체가 구분되어 있어 마주칠 일이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공부하기로 하고, 상병으로 진급하자마자 여가시간에는 독서실로 향했다. 당시 8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단어 책 '거로 VOCABULARY Workshop'을 2회독 할 때쯤 제대하였다. 나름 군대에서 미리 공부한 덕분에 공대생치고는 나름 높은 영어점수를 제대 후 몇 개월 만에 달성할 수 있었다.
입사와 동시에 퇴사 이후를 준비했다.
회사 일에 큰 흥미는 없었다. 그래도 주어진 일은 열심히 했던 터라, 나름 인정은 받았다. 언제나 윗사람에게 들었던 말은 '넌 더 할 수 있는데 왜 거기까지만 하느냐'였다. 사실 회사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급 이상의 돈을 줄 수 없다는 심리적 장벽이 나의 의지를 무력화시켰다. 결정적으로 입사 직후에 내가 퇴직 때까지 받을 월급과 성과급, 퇴직금 수령액을 엑셀로 시뮬레이션해 보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수령액에 놀랐다. 퇴직 이후의 삶이 벌써 두려웠다. 그때가 신입사원 1년 차였다. 그래서 회사 일에 집중하기보다 재테크에 조금 더 집중했다. 그런데 하필 주식투자를 선택했다. 그래서 아직도 회사에 다니고 있다.'미래지향적'이라는 단어는 사뭇 긍정적인 의미만 내포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현실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많이 빼앗긴다. 당장의 일에 몰두해야 할 때도 미래에 대해 공상하고, 걱정하고, 또 계획을 세운다.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것도 '미래'라는 단어 아래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성향을 고치려고 노력해보아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다만, 아주 조금씩 개선해 나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