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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 Jul 15. 2024

촉감놀이

#여행

목차


‘프롤로그’


Chapter1. 직접 보고 느껴봐야 알지


Chapter2. 채워지지 않는 갈증 


Chapter3. 솔직해진 나 


Chapter4. 홈플러스 장난감 코너 


Chapter5. 어라? 


Chapter7. 직업 : 모험가 


Chapter8. 나는 매일 여행을 떠난다. 




-프롤로그-


‘촉감놀이’ 촉각을 통해 만지고 있는 대상의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물건과의 차이를 느끼고 비교하며 인지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지 능력이 발달하고, 손을 뻗고, 담고, 쏟고, 쥐는 등 다양한 동작을 하며 활발한 신체 발달도 이룹니다. 




 여행이라는 주제는 하여금 심장이 뛰게 만들었다. 모두 어렸을 때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양 끝을 잡아서 목에 둘러 망토를 만들어 한쪽 팔은 허리에 오른쪽은 하늘 높이 쭉 뻗어 슈퍼맨 자세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날 여행을 처음 했다. 


 여행을 가기 전 ‘설렌다’, ‘두근거린다’라는 말을 다들 해본 적이 있지 않나? 하지만 걱정도 되고 두려운 마음도 있다. ‘여행이 순탄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혹은 ‘여행에서 무슨 일이 일 어날까 봐 걱정돼...’ 라며 우리는 항상 ‘걱정 반 설렘 반’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 일상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바로 무언가를 도전하는 행위 단계 에서 말이다. 우리는 도전을 쉽게 하지 못한다. 이유는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가 여행할 때 실패를 생각하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나? 없다. 여행 가서 재밌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도전하는 것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생각하고 도전하는 것이 아닌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라는 말을 주절거리자. 그러면 적어도 우리가 직접 인지하여 느끼지 않았는가? 이게 중요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읽기 전에 우선 책상 위 어젯밤에 끄적이던 노트 위나 중요한 걸 적기 위해 구석에 방치되었던 포스트잇 같은 곳에 ‘할 수 있다.’라는 마법의 주문을 적고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내 생각을 공유하여 당신은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내 뒷모습


Chapter1. 직접 느껴봐야 알지 


‘그림의 떡’.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이다. 내가 게임 캐릭터를 돈 주고 살 때 말이 다. 


 초등학생 때, 실내화 가방을 양발로 번 갈아가며 뻥뻥 차던 나는 사촌 형이 알려준 게임 덕 분에 내 유일한 취미는 게임이 되었다.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집에 가서도 또 놀았다. 게임을 하며 의자에 앉아 다리는 양반다리를 하고 눈은 화면을 고정한 채 30초에 한번 깜빡이며 게임 에 몰두했다. 내 캐릭터는 한 마을의 무자비한 도적이었다. 하지만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 어 마을에 나타난 몬스터를 해치운다...라는 설정을 하고 게임을 했다. 어렸을 때 나는 상상력 이 풍부했으니까.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이다. 메이플스토리는 단풍 모양의 로고를 하고 있다. 게임 캐릭터를 생성하면 1레벨부터 시작하여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여행을 떠난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로, 거리를 활주 한다. 처음 나에게 주어진 건 나무 몽둥이 한 자루였고 그렇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몽둥이로 마을에 나타난 몬스터를 잡아 성장하 여 더 강한 장비와 무기로 보스를 물리치는 내용이다. 튜토리얼이 끝나게 되면 빅토리아 아일 랜드라는 곳에서 시작을 하여 배를 타고 마을로 향하게 되고 마을에서 각자 원하는 곳으로 내 가 원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면 된다. 



 정말 재밌지 않은가? 게임 안에서 여행을 떠나다니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매번 다니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도 졸업 여행 가야 하지 않겠냐며, 친구와 함께 일본을 가자는 계 획을 세웠다. 친구와 나는 서로 처음 가는 일본 여행이라 밤낮을 세며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떠났다. 교통은 어떻게 이용하며,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는 어디이며, 사람들의 많이 받은 식 당 등 계획을 계속 준비했다. 


 무리 없이 우리는 도착했다. 낯선 곳에 발을 딛으며 친구와 나는 동시에 ‘やったー(야-호)’를 외치며 일본에 온 것을 실감했고 제일 먼저 환영해 준 것은 마리오였다. 처음 간 날 제일 기 억에 남는 건 마리오였다. 우리는 세계 제일 아이돌과 비슷한 수준에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돌아다녔다. 일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해 보고 가고 싶었다. 다시는 안 올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발바닥이 너무 아파 근처 다이소에서 깔창을 사서 푹신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힘들었다. 에너지를 다 썼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낯선 곳에서 계속 긴장하면서 돌아 다녀서 그런지 사진도 많이 못 찍었다. 눈에 담기 바빴다. 느끼기 바빴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서 다음 일정을 가기 위해 버스 시간표를 보고 내일은 어디 갈지 친구와 회의하며 밥을 먹다 가도 긴장해야 했다. 


내 나이는 19살이었다. 


이때 느낀 건가? 내가 생각한 대로 계획했던 데로 움직여도 내가 예상했던 아웃풋이 다르다 는 것을? 




Chapter2 채워지지 않는 갈증 


 19살에 갔던 곳은 오사카였다. 도톤보리 근처에 숙소를 잡고 우리는 거리를 활보했다. 19살 에 갔던 오사카는 한국어가 많이 보이는 곳이었다. 같은 인터페이스를 보고 있지만, 익숙한 언 어가 있으니 그 길을 따라 맞춰진 거리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사람들이 자주 가는 로컬 맛집이라는 리뷰가 있어도 한국어 메뉴판이 있고 주위에서는 한국어가 들린다. 마치 키자니아 에서 직업 체험을 하러 가는 것처럼 나도 일본체험을 하러 간듯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점 원도 한국어를 잘했다. 물론 한국 사람들에게 관광을 편하게 해주어 길을 헤매지 않고 어려운 것이 없게 해주었긴 하지만 내가 생각한 여행이 아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오사카 성



 한국에 돌아와서 오사카를 갔다 왔다고 자랑하면 다들 “나도 거기 가봤어~” 라며 모두가 입 을 맞추듯 말했다. 대치동에서 부모님이 좋은 학원에 자식들을 욱여넣듯이 나도 일본이라는 학원에 억지로 발을 맞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오지를 탐험하며 알 수 없는 설렘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설렘과 두려움으로 맞이 하는 것인데, 뭔가 알 수 없는 모순이 여행을 갔다 오고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가고 싶었다. 같이 갔던 친구와 군대에서 전역하면 일본에 다시 가보자고 그때는 우리 한 번 가봤으니 더 재밌게 놀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계획을 많이 세우지 않 고 한 번 가봤던 오사카가 아닌 도쿄로 핀을 꽂았다. 여유 있게 설정했다. 일정을 길게 잡았 다. 새로운 친구도 함께 했다. 


모든 것이 새로워진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걸 말했다. 


1. 하라주쿠에서 옷 구경하기

2. 신주쿠에서 술을 마셔보기 

3. 아키하바라에서 피규어 사기 

... 생략 


 대략 10개 정도 각자 하고 싶은 걸 정하고 계획을 세웠다. 우리의 목적은 모험을 떠나는 것 도 맞지만 서로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 했으니, 적어도 같이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작 은 계획을 세워야 했다. 새로운 친구는 일본을 처음 가보기에 19살에 같이 갔던 친구와 내가 리더를 했다. 7박8일 정도 여유 있게 날짜를 잡아서 우리는 보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고를 수 있었기에 모든 게 여유로웠다. 이렇게 우리는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는가 싶었지만, 4박이 넘어갈 때쯤 우리는 하고 싶은 게 달랐다. 나는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 지만, 친구는 행복하고 기쁘고 힐링이 되어야 했다. 이런 두 가지의 여행으로써의 가치관이 다 르니 예를 들어 목적지를 헤맬 때 해결하는 방식이 달랐다. 누군가는 검색을 하여 최악의 상 황을 생각하는 반면에 누군가는 그냥 도전하여 안되면 다른 거 하자는 방식이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3명이었기에 다수결의 원칙으로 무리 없이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그 순간 만큼은 아찔했고 제일 기억에 남는다. 서로 화를 주체하고 감정을 컨트롤하며 얼굴 근육을 사 용하는 게 보였으니 말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마지막 전날에는 각자 하고 싶은 거 하고 따로 움직이는 게 어떨 까?” 


 나는 적극 찬성했고 여행 중에 만약 혼자서 도쿄 시내를 돌아다닌다면 말이 통하지 않는 곳 에서 주문을 할 수 있는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지, 내가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지는 않을 까? 라는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각자 떠났다. 우리 숙소는 아키하바라 근처였기에 19살에 같이 갔던 친구 지훈이는 아 키하바라 근처로 갔고 새로운 친구 기문이도 아키하바라 근처로 갔다. 나는 숙소 근처에서 카 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 하였다. 주문은 어렵지 않았다.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점원 은 내게 돈을 요구하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일단 아메리카노를 먹으면서 공책 펴고 펜을 들 었다. 군대에서 내 유일한 취미는 그림이었는데 전역하니 들지 않았던 펜을 오랜만에 들었다. 그림을 잘 그리진 못했지만, 유일한 취미였던 그림은 느낌 있게 그릴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천천히 획을 그으며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는데 뭐랄까 갑자기 의미 부여가 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카페에 온 걸까? 펜을 잡으니 대각선에 앉은 사람이 펜을 들고 그림을 그 리고 있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구경했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



그림을 취미로 시작하고 나서 잘 그리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나 : 그림은 어떻게 하면 잘 그리는 거야?

       아니, 어떤 느낌이 와야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지 알 수 있어?
친구 : 네가 어떤 사물을 그릴 때 그 뒷모습을 보지 않고 그릴 수 있어? 

나 : 뒷모습을 보지 않고 어떻게 그   려?
친구 : 많이 봐야지. 많이 그리고. 많이 경험해 그게 제일 좋아” 


 나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나무를 그렸다. 나무의 뒷모습은 나무의 결이 있으니 내 멋대로 상상 하며 그렸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나무 뒤를 봤다. 


새는 어디로 날아갈지 몰라도 나는 법을 배운다.


 내가 그린 그림과 나무의 뒤는 전혀 달랐다. 내가 보는 나무는 해가 뜨는 쪽이어서 나무의 색상이 뒤와 달랐고, 해가 자라는 쪽이어서 풀이 많았지만, 나무 뒤편에는 풀이 잘 자라지 않 았다. 나무 뒤는 그늘이 지고 있어 작은 동물들과 곤충들이 쉬고 있었고 나무 뒤편 위에는 새 가 있었다.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일본 아키하바라 근처에 숙소를 잡고 혼자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시작하던 내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다. 앞에 앉은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걸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발견할 수 있었을까? 카페에서 다음 목적지를 검색하며 핸드폰만 보고 있었더라면, 앞에 있는 사람이 그림을 무슨 색상의 펜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었을까? 


 전혀 몰랐을 것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내가 그림을 그리 려고 하니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드디어 여행을 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감정이었다. 깨달았다. 경험이 왜 중요한지, 생각 이 많으면 글을 적어라 라는 등, 주위를 둘러보라는 어른의 말도 모든 게 퍼즐이 맞춰지듯이 이해가 갔다. 


Chapter3 솔직한 나.
 

 경험에 대한 강박이 심해진 건가? 솔직하게 닥치는 대로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어?’, ‘너는 어떤 노력을 했어?’ , ‘무엇을 본 거야?’ 


나는 다시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냥 어느 날 일본 카페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말이야 


 나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니 솔직한 나를 볼 수 있었고, 그림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이 많이 되었고 나를 알아 갈 수 있었다. 내가 주로 그리는 그림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 며, 흑과 백밖에 없는 그림이다. 


뭘 봐


 그림을 배우지도 않았고 전시회를 가지도 않으며 좋아하는 작가도 없고 좋아하는 그림도 없 다. 그냥 내가 느끼는 것을 보고 그리는 것이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선을 더 그린다. 그럼 선하나가 아닌 두 개이기 때문에 강조가 된다. 펜 하나로 도화지에 선을 그리는데 의미가 전 달된다.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지 나는 주로 그림을 그릴 때 감정 이 우울해질 때 그린다.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다. 나의 속상함을 그리다 보면 위로받는 느낌 이었다. 



왼쪽 – 후회는 서랍에 담아두자 , 오른쪽 – 고독한 성수패션


어째서인지 나는 사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했다. 배우고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아리에서 회식하던 도중 어떤 누나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 누나는 대학생 또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근데 학년은 나보다 낮았고 나는 그런 누나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아주 조심스럽게 누 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냐고, 궁금하다고 물어봤다. 


 나 : 혹시 누나 얘기해줄 수 있어요?
 누나 : 지금?? 갑자기?? 해줄 수 있는데... 왜?? 나: 그냥뭔가배울수있을것같아서요
 누나 : 뭐가 궁금한데??
 나 : 다요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냥 대뜸 물어봤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친하 지도 않고 동아리에서 회식하던 도중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어린 동생이 갑자기 자기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상황인데 나였어도 당황했을 것 같다.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 술 한번 먹자고 얘기를 한 후 집에 돌아와서 무슨 질문을 해야 내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술을 먹는 당일이 되고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이었다. 



누나 :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 


나 : 사실은 제가 경험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요, 무엇을 물어볼 수 있을까? 고민만 하다가 지금도 고민 중이에요 


누나 : 하고 싶은 거 있어? 


나 : 저는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그냥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제가 만들어서 제 가 치를 알 수 있는 돈을 벌고 싶어요 


누나 : 잘하는 거 있어? 


나 : 최근에 그림을 그리게 시작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이모티콘도 그렸었는데 잘 되진 않았고 요. 역시 그림으로는 돈을 벌기 힘든 거 같아요 


누나: 보여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표정


 누나는 내게 잘 그린다고 하였고, 나는 그림에 관해 설명하고 다른 그림들도 보여줬다. 누나 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자신이 했던 사업에 관해 얘기했고 누나는 홍대에서 디자인 옷 가게를 했었고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져 새로운 꿈이 생겨 늦은 나이에 학교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나는 입이 바쁘게 ‘왜 그런 선택을 했어요?’, ‘누나는 잘하는 게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 하세요?’ 등 질문으로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우리는 많은 대화를 오갔고 나 는 누나의 도움으로 내 디자인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팔 수 있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Pod(Print on Demand) 제품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제작하는 방식의 제품 판매 형 식이다. 내 그림의 등록을 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머그컵, 티셔츠, 폰케이스, 그립톡 등)에 내 이미지를 위에 입혀서 판매하는 것이다. 


 그날 당장 집에 가서 제품을 등록하고 상세 페이지를 꾸미며 계속해서 생산했다. 생산적인 활 동은 계속해서 부푼 희망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에게 내 가치를 알릴 수 있겠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시작했겠지?’ 굉장히 설레었고 나는 또 한 번 여행을 떠난 느낌이었다.
 

Chater 4 홈플러스 장난감 코너 


 어릴 적에 엄마와여느 때와 같이 장을 보러 갈 때면 이상하게 설렜다. 항상 무언가를 쟁취해 왔던 것 같기 때문이다. 어느때와 같이 엄마가 나한테 장을 보러 가자 했었고 나는 귀찮았지 만 그래도 오늘은 어떤 것을 고를까? 라는 기대감에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엄마의 실수로 장난감 코너에 들어선 나는 눈이 휘 번쩍 뜨였고 나는 입맛을 다셨다. 레고를 사야 할지? 그 당시 유행하는 펭이를 사야 할지? 아니면 건담을 사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 졌다. 물론 엄마가 나에게 사준다고는 안 했다. 우리 집안에 가정교육은 책임과 보상이었기 때 문에 지금 나는 물건을 사고 나서 수학 시험 100점을 맞아야 한다는 책임을 지기 싫었고, 수 학 100점을 맞아 보상으로 장난감을 사준다는 설정도 없기에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결국 떼를 쓰고 바닥에서 사달라고 울면서 춤도 춰봤지만 엄마의 완벽한 가정교육으로 나는 실패했다. 


 그렇게 나는 뮤지컬 동아리에 들어갔다. 어린이연극동아리 같은 곳에 들어가면 아이들의 자 신감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이 곳에 들어가서 면접을 본다면 내게 닌텐도를 사준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목표가 생겨버리고 집에서 나는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2pm의 heartbeat 장기 자랑 연습을 했다. 


 확실한 목표와 보상이 나를 훈련해 중독이 되어버렸다. 어릴 적에 있던 일이라 잊고 살았는 데 이 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 오래되고 먼지가 낀 톱니바퀴가 갑자기 불이 들어와 재가 동을 하기 시작했다. 


 POD 제품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판매를 한 후 보상으로 돈이 들어오는 걸 경험했다. 즉 순환의 구조를 이해한 것이다. 무언가를 만들어 판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낀 것이다. 첫 수입은 3만원이다. 상품들은 만원 정도였으나 7개를 팔아도 나는 2주 동안 윤동주 – 쉽게 씌어진 시 처럼 그림을 그려도 나에게 들어오는 건 3만원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은 혹독했고 나는 이 물이 얼마나 깊은지 직접 온도를 느끼며 체감했다. 


 이런 식으로 피부로 직접 느껴 알아보니 더욱 이해가 빨랐고 다른 곳에 적용하는 것도 빨라 졌다. 취미를 최대한 많이 만들었다. 기타를 치고 운동을 하고 최근에는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기타를 치다 보니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음악을 즐겨 듣 고 취미로 피아노나 기타를 치기 때문이다. 운동을 배우니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보기 시작했 다. 어떤 운동을 하는지? 어떻게 운동을 하면 되는지, 클라이밍을 배우니 나중에 배워보고 싶 다며 알 수 없는 인맥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처럼 취미를 시작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 니 배우는 과정은 힘드나 결과는 엄청 많은 느낌이었다. 



POD 샘플 사진


다시 한번 갑자기 고민이 생겨 나의 선생님이 되어버린 누나에게 연락을 했다. 


나 : 해외 경험이 왜 중요한지 알려줄 수 있어요? 


누나 : 나야 물론 미국에서 일도 해보고, 언어로 돈을 벌어봤지만 안 가본 것과 가본 것은 차 이가 큰 거 같아 


나 : 학교에서 단기 해외 연수 모집 공고가 올라왔는데 단기로 가는 게 의미 있을까요..? 누나 : 그래도 갔다 오면 가봤다고 할 수 있잖아 카카카카카
나 : 오 맞네요
누나 : 근데 그냥 가봐, 가봐야 알지 좋은 기회야 나는 무조건 갔어 


그렇게 나의 마지막 남은 군 전역 돈은 이곳에 투자했다 


 나는 부랴부랴 지원서를 작성했고, 면접자를 어떻게 설득해야 내가 이곳에 가는 것이 도움이 될까를 계속 생각했다. 나는 어학성적도 없고,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전공도 아니고 그냥 나는 수학을 배우러 가고 싶은데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학교에서 단기 연수로 가는 곳은 캐나다 빅토리아에 있는 Camosun College였다. 근데 뭔가 빅토리아라는 곳이 뭔가 낯이 익었다. 나는 학교에서 나눠준 관련 서류들을 읽었지만, 모두 영 어로 적혀있었기에 급 자신감이 떨어졌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마음속에서 할 수 있 다!를 외치고 있었다. 


 글을 친구에게도 보여주고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100번 정도 물어봤지만 답은 없었다. 경험을 해 본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학성적이 있으면 가산점이 있다는 말에 어학성적이 없는 나는 ‘그냥 해보고 안 되면 말지’ 라는 생각으로 서류를 지원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일부러 손 한쪽으로 모니터를 가리고 기대 안 하는 척 손을 저으며 합격 결과를 확인하는 나였다. 


‘합격’ 


 이 단어는 지구의 자전축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면접 준비를 위해 외우지도 않던 단어 책을 꺼내서 읽는 척을 했다. 아니 처음에는 읽었다. 근 데 갑자기 준비하려고 하니까 마음이 벅차올라 단어도 잘 안 외워지고 그냥 유튜브를 통해 간 단한 아메리카노 주문 방법을 외웠다. 


 면접 일자가 다가오고 ‘그래, 모든 건 경험이지 배우는 게 중요한 거야’라는 생각과 알이즈웰 (All is Well)을 외치며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시선은 면접관을 입술의 양쪽 끝은 11시와 1시 방향을 가리키며 딱 3가지만 기억했다. 


1. 경청하자
2. 분위기를 읽자
3. 자신 있게 대답하자 


 제일 먼저 도착하였고, 지원자들과 함께 가볍게 대화를 나눈 후 면접을 진행하였다. 면접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자기소개와 간단한 영어 실력 테스트가 있었다. 자기소개는 자신 있었다. 자신을 소개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23년 정도 살았다. 23년은 7억2천 만 초 정도 되는데 내가 여기서 300초로 자신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은 내 인생을 모순 하는 것이고 나는 항상 이 마인드로 소개를 해왔다. 문제는 영어 면접이었다. 


면접관 : 혹시 영어로 가게에서 주문을 할 수 있나요?
 나 : 네 그럼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것을 해보겠습니다.
 나 : Hello ? Can I get order now? I would like to Ice Americano. 

       Thank you (안녕하세요? 주문해도 될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감사합니다.)
 면접관 : 끝인가요?
 나 : And then , I will take out ,..네 끝입니다.
 (그리고, 가져갈게요...)


 사실 터무니없는 영어 면접이었지만, 내 표정과 뻔뻔함은 외국인과 같았다.
그게 통했던 걸까? 그냥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다른 사람은 영어로 자기소개를 진행했는데 준비해 온 게 티가 난다고 하며 면접관님이 자신 이 이 질문을 한 것이 실수했다고 농담도 하며 면접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면접을 보고 꾸민 것이 아까워 관심이 가는 후배에게 밥을 먹자고 말했다. 후배도 흔쾌히 허 락을 하였고 가볍게 밥도 먹으며 무엇이든지 술술 풀리는 그런 날이었다. 


 사실 도전은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나는 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덕분에 친구들에게 지원 했다고 말 도 못하고 양손을 모아 기도만 하고 있었다. 근데 내 입은 방정이라 친구들에게 말 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근데 정말 자신이 없어 말이 길어지고 말았다. 


 나 : 아니.. 이거 그냥 심심해서 도전한 건데 ..! 뭐.. 잘 되면 갔다 오고 아니면 말고 ~
 친구 : 에이 되겠지~ 너 성적 괜찮잖아카카카카카


 문자가 도착했고 핸드폰을 조심히 확인해 봤다. 자전축은 나였다. 주체할 수 없는 합격 소식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 캐나다 갔다 올 게
 엄마 : 된 거야??
 나 : 응 하하 한 달 정도 갔다 올 거 같아
 엄마 : 잘 되었네!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 아들 ~ Chapter 5. 어라? 


 굉장히 설렘 마음과 동시에 정신없는 하루가 지속되었다. 학교 해외 단기 연수 OT를 진행한 다고 하니 필수로 참여해달라는 문자를 받고 아이패드를 들고 약속 시간에 등장했다. 여기서 꼼꼼하게 적지 않으면 타국에 가서 헤맬 수도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나 포함 17명이 합격하였고, 합격 기준은 학점과 인성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지원금 이 나오는 좋은 기회인 만큼 학업에 성실한 사람을 기준으로 골랐고, 또한 여러분들은 학교의 얼굴로 해외 단기 연수를 파견 갔다 오는 것이니 최대한 사고를 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인성이 괜찮은 사람들로 선정했다고 하였다. 내심 자존감이 올라가고 어깨도 조금 올라갔지만 다시 한번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금 들었던 말을 아이패드에 고대로 적었다. 이 말은 나에게 동기부여가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OT에서 진행한 내용은 대략 비자 발급 방법, 학업 스케줄, 수학 보고서 작성 방법, 홈스테이 관련 서류, 비행기 예매 방법, 학교에 대한 간략한 설명 등 이었다. 이외에도 주변 놀거리, 문 화 등 사소한 것까지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내 머리 속에는 다양하고 많은 정보가 들어갔다. 덜컥 겁이 났지만, 이 또한 여행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지내던 도중 갑자기 담당자분이 ‘비행기 예매하셨나요? 이제 해야 할 것 같아요 얼른 진행해 주세요’라는 말을 하였다. 우리 17명은 해외 경험이 있는 사람을 필두로 결제를 진행했다. 모든 결제는 본인이 각자 진행하며 ‘이제 시작이다’라는 느낌을 받았 다. 


 우리는 각자 비행기 자리도 많고 값이 싼 것을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하루아침에 250만원 정도가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2명이 단톡방을 나갔다. 아마 학교 측에서 항공권 예 매나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거나 가이드라인이 있을 줄 알았던 두 명이지 않을까 싶 다. 




 물론 나도 갑자기 현금이 필요했지만, 다행히 나라를 지키다 온 수고가 통장에 고스란히 남 아있던 나는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렇게 남은 15명은 일사천리로 예매를 진행했고,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서로를 도왔다. 더블 체크를 계속 아니, 15번 정도는 체크를 한 것 같다. 비행기는 완료되었으니 당분간은 또 영어 공부에 몰두하였다. 


 생각보다 학교에서 모든 것을 도와주지 않았다. 하긴 학교가 지원금도 주고 홈스테이 연결 및 외국학교와 협력도 도와주었는데 개인이 하는 것은 학교가 일일이 관여하기에는 어려운 일 이라고 납득하였다. 


 우리는 미국 시드니를 경유하여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하는 항공권을 예매하였다. 캐나다에 가기 전에 우리는 모든 소속 절차를 서로 확인하여 안전하게 진행하였고, 7월 8일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공항 가는 버스에서 마주쳤다. 서로 왜 여기에 있냐며 신기해하였다. 공항 가는 버스에서 마주친 친구는 인천공항 제 1 터미널로 가고 나는 제 2 터미널로 가는데 서로 오랜만에 얘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호주로 어학연수 간다고 하고 나는 캐나다로 어학연 수를 간다고 하였다. 뭔가 되게 웃겼다. 


 공항에서 우리는 어학연수를 같이 가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눴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진행 하였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학년이었고 성적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다들 배우는 것을 좋아한 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우리는 목표가 같으니 가서 영어를 쓰자고 의견이 나왔다. 


 공항에 가면 사람들은 대부분 웃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은 늘 설레는 것 같 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땅들은 레고 조각처럼 입체감만 보일 뿐이었다. 출국 절차를 밟고 우 리는 미국 시애틀로 경유를 하기 위해 갔다. 미국 입국 심사는 까다롭다고 하고 영화에서 보 던 권총들과 마약 탐지견 그리고 다양한 인종들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두근거렸다. ‘내가 여기 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저절로 번역기를 켜서 대본을 숙지하였다. 입국심사 줄을 기다리면서 긴장을 너무 한 게 보인 나는 같이 가는 형이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어깨를 토 닥였다. 한국은 치안도 좋고 총도 없고 안전한 나라인 걸 아는 나라들이 많아서 입국 심사가 네가 생각한 만큼 어렵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묻는 말에 대답하라고 하였다. 나는 묻는 말 에 대답하라는 말만 기억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입국심사관 : Hi, How are you? Good? (안녕, 어때 괜찮아?) 

나 : Yeah, I’m good. Thank you (네, 좋아요, 감사합니다) 

입국심사관 : Why are you here? Travel? Study? (왜 여기 있어? 여행? 공부) 나 : Yeah, I’m good (네, 좋아요)
입국심사관 : Umm... You can’t speak English? (음.. 너 영어 못해?)
나 : I can little bit (조금 할 수 있어요) 

입국심사관 : wait (기다려) 


 갑자기 기다리라고 하는 말에 뒤를 쳐다보고 어깨를 토닥여준 형을 원망했다. 그리고 나서 기다렸더니 파란 수화기를 내게 주더니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파란 수화기 : 제가 통역 도와드릴게요. 묻는 말에 대답해 주세요. 


 나는 그렇게 묻는 말에 진짜로 대답했고 무사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고된 비행의 연속으로 피곤함에 찌든 우리들은 말수가 줄었고 그래도 첫 출발인 만큼 모두 지친 내색 없이 1박을 묵 을 숙소로 향했다. 


 1박을 묶는 이유는 페리(배)를 타야 하는데 늦게 도착해서 다음 날 오전에 배를 타고 빅토리 아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우리는 선착장에 갔다.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며 우리는 만담을 가졌다. 


선착장에서 본 어느 한 버스



 배를 타는데 정말 이렇게 큰 배는 살면서 처음 타본 것 같다. 밴쿠버에서 빅토리아까지 총 2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배 난간에 앉아서 경치를 구경하는데 원피스 해적이 된 것 같았고 모험 을 떠나는 것 같았다. 어릴 적에 비슷한 게임을 했던 것이 기억나고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배에서 내려 우리는 학교 관계자와 만나고 지금부터 홈스테이 사람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 다. 우리는 지금부터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나는 3살 어린이가 되었다. 


 처음 홈스테이에 도착했는데 15명 중 3명이 나 포함해서 남자였는데 모두 같은 홈스테이에 배정받았다. 우리는 한 인도인의 가정집에 배정받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정해진 방으로 들어갔다. 근데 어떤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방을 돌아다니는 걸 보았고 우리 세 명은 눈을 마주치며 상황을 파악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 주인분이 정체 모를 남성의 대해서 소개하 였고 우리는 이해했다. 자폐아를 가진 남성이고 가족은 아니라고 한다. 아마 장애인을 집에서 돌봐주는 구조인 것 같았다. 나와 다른 형은 지하에 있는 방에서 짐을 풀었고 내 어깨를 토닥 였던 형은 2층에 있는 방을 사용했다. 


 각자 조금 쉬다가 우리끼리 모여서 대화를 하자하고 2층에 있는 형 방에 들어갔는데 우리랑 방이 너무 달랐다. 같은 집이라고 해도 이상할 정도로 호텔 편의용품이 있는 것이 었다. 우리 는 그때 이상함을 눈치챘다. 형들은 같은 돈을 내고 이런 차별을 받는 건 불합리하다고 얘기 하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갑자기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 : Hey ! What did you say??!!! (너 뭐라그랬어??!!!) 


 형이 “야 방 옮기자. 이거 아닌 거 같아. 우리 셋이 방 다른 것도 아마 이 사람들도 돈을 벌 어야 해서 지금 내방 사진만 사이트에 등록했을 것 같아. 그래서 홈스테이 담당자분도 이곳에 배치해 줬고 각자 방 사진 찍어서 10분 뒤에 다시 모이자” 


 나는 달려가서 방에 있는 먼지 쌓인 배수구에 사진을 찍었고 학교 담당자분께 시차를 고려하 지 않고 연락을 보냈다. 다행히 한국 시각은 아침 시간이라 상황을 빠르게 전달하여 상황을 이해시켰다. 나는 형에게 “와 역시 형들은 다르네요. 저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대로 살 았을 것 같은데 역시 이게 경험의 차이일까요? 한살 한살 먹는다는 건 엄청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네요” 


 형들은 내 말을 듣고 너도 나중에 형이 되고 이런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나처럼 행동할 거 야 라고 말을 하였다. 




 우리는 증거 수집도 완벽히 하였고 한국에 있는 학교 담당자에게 말했으니 내일 Camosun 학교 담당자에게도 말하자 한 후 일단 오늘 하루는 여기서 자자고 고생했다 한 후 각자 위치 로 해산했다. 


 학교에 가서 내 어깨를 토닥인 형은 Camosun 학교 담당자가 이번에 형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다고 아마 빨리 진행되게 할 거라며 안심시켰다. 


 우리는 다음 날 바로 캐리어를 빼고 다른 홈스테이로 배정되었다. 금액도 변동되지 않았고 나와 어깨형은 개인 미용실을 집안에 꾸미고 귀여운 강아지를 키우는 유쾌한 캐나다 아줌마 집으로 갔다. 


 방도 쾌적했고 더 이상 먼지가 있는 구석은 없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집이었다. 앞으로 의 캐나다 생활이 제법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우리 하계 단기 연수 파견 간 우리들은 정해진 학교 시간표에 맞춰서 이동했고, 스케줄이 끝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주로 다운타운 (시내) 근처 카페에 앉아서 일본에서 휴식을 취했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러 갔다. 다양한 외국 인 친구들과 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아직 나는 준비가 안 된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자신감 이 많이 없었다. 


카페에서 바라 본 어느 한 빌딩


 카페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사람들도 그리고 건물 하나씩 그리 다 보면 그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 걸 알고 있으니, 이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도 있다. 



British Columbia Parliament Buildings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의사당 앞에 초록색 잔디밭에서 앉아서 5시간 동안 그린 적이 있다. 거 리를 지나가는 개를 구경하다 가도 그리고 가족들끼리 소풍 온 것도 구경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날의 날씨는 화창했고 사람들은 밝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해가 너무 뜨거워 나무 그늘 밑에 서 그림을 그렸다. 


 여행 와서 그림을 그리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핸드폰 카메라로 물체를 담는 건 쉬운 일이 지만 그림으로 그려서 장면을 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핸드폰 카메라는 짧은 순간을 기 록하는 일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건 순간이 아닌 모두를 담을 수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내 가 선을 긋는 간격이 달라지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덧대 그려 더 많이 그릴 수 있다. 이처럼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가 지나간 선들은 하나의 추억이 되어 고스란히 남는다. 



 갑자기 그림 여행이 되어버린 나는 펜과 노트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선착장 앞에서 이어 폰을 꽂고 팝송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어라?’ 느낌이 이상했다. 초등학생 때 영어라 는 언어를 배울 때 선생님이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 노래를 들려줬었다. 어릴 적에 검정 고무신, 포켓몬스터를 떼고 무한도전으로 넘어갈 때쯤에 외국인에게 존재를 조금씩 알게 되었 다. 하지만 내 어릴 적 기억 속에 외국인은 게임 NPC(non-player character)와 같은 존재였 다. 사촌 형이 알려주는 게임 속에서 NPC는 설정한 임의의 캐릭터일 뿐이지 사람들이 직접 조종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게임 속 NPC들이 지금 내 눈앞에서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내가 앞서 말했던 메이플스토리라는 곳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게임 안에서 배를 타고 나는 모험을 떠나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 곳... 어라...? 뭐지’ 



Chapter 7. 직업 : 모험가 


 나는 게임 안에 들어온 곳이 맞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곳은 빅토리아 항구다. 나는 배를 타 고 이곳에서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갑자기 삼박자가 딱 들어맞고 이런 생각은 온몸에 소 름이 끼치는 순간이었다. 어렸을 적에 내가 좋아하는 게임 속에 들어온 것이 아닌 진짜로 어 쩌면 이 세상은 큰 게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마치 게임 속 짜인 스토리처럼 퀘스트를 하나씩 클리어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 이 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앞으로 수많은 퀘스트를 진행하게 돼 있고, 나는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퀘스트 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특정 조건이 필요하다. 나는 게임 속에서 특정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 더 강한 신체와 좋은 무기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파티를 맺어 같이 성장하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좋은 회사 또는 더 높은 지식을 머리에 넣기 위해서는 그 전에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인생에서도 수 많은 퀘스트 들이 존재한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 받기’, ‘부 모님께 효도 하기’, 


 ‘자격증 공부하기’ 이수많은 과정은 나를 성장하게 만들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발 판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이 수많은 퀘스트 들을 한 사람들과 마주치고, 마치 말이라도 합 친 듯 “여기까지 오는데 고생하셨어요”라는 말을 한다. 

조여오는 외로움


 ‘나는 왜 이걸 진작에 알았을까?’, ‘아니야, 지금 알았으니 다행인 거야’, ‘내가 어떻게 이걸 깨달았지?’ 나는 몇 번이고 나와의 면담을 진행했다. 


 캐나다 갔다 온 후에 한둘씩 내 미래를 약속했고 계획을 세웠다. 테마는 경험이었다. 도전 속 에 경험은 나를 성장시키고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다. 운동은 꾸준히 일주일에 4번 이상 갔 다. 2시간 운동하고 10시간 공부와 일을 하며 2시간 취미활동을 하고 2시간 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하고 8시간 잠을 잤다. 이 과정은 조금도 조급해서는 안 되고 빠르면 안 된다. 대 충해야 한다. 열심히 하면 힘들고 지치고 넘어진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의심해야 한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인 만큼 효율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우리의 뇌는 방대한 데 이터를 가지고 판단 할 수 있다. 경험이 있는 데이터는 빨리 판단을 내리지만, 경험이 없는 데 이터는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건 책 한 권을 읽는 것과 같다. 서로 보 고 있는 관점이 다르고 문제 해결하는 방식이 다양한 것은 참으로 신기했다. 게임과 다른 점 은 이것이다. 게임은 누구나 똑같은 출발선이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똑같은 출발 선이 아니다. 누군가는 똑같은 출발선이고 노력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혹독한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근데 그렇다고 좌절할 것인가? 그건 더 안된다. 도착 지점은 같을 수 있다. 끝까지 해보 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아닌가? 


 여행은 생각의 관점을 바꿔준다. 아무도 모르는 ‘곳’과 ‘것’이 여행이 아니고 무언가 몰두하여 ‘그곳’에 집중하고 생각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로 취미생활을 할 때 몰두한 다. 이 집중력은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기를 수 있다. 사람은 우울 할 수도 기쁠 수도 행 복할 수도 지칠 수도 있다. 한 감정에 오래 있는 건 좋지 않다. 다양한 감정에서 보고 느끼는 건 다르기 때문이다. 


just travel


Chapter 8. 나는 매일 여행을 떠난다. 


 ‘과정’은 ‘결과’를 낳는다. ‘경험’은 ‘실패’를 줄여주고 ‘도전’은 ‘용기’다. 나는 지금 여행을 떠 나러 간다. 

완성은 있지만 완벽은 없다. 직접 보고 느끼고 만지고 계속해서 배우고 적용하면 완벽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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