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身分)’과 ‘계급(階級)’ 그리고 ‘계층(階層)’이란 무엇인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서 ‘신분’과 ‘계급’과 ‘계층’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이 신분과 계급과 계층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이라고 정의되는가?
사전적인 뜻을 보면 신분은 ‘개인의 사회적인 위치나 계급’을 의미하고 계급은 ‘사회나 일정한 조직 내에서의 지위, 관직 따위의 단계’, ‘일정한 사회에서 신분, 재산, 직업 따위가 비슷한 사람들로 형성되는 집단. 또는 그렇게 나뉜 사회적 지위’를 의미한다.
사전적인 뜻을 봐도 신분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계급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분과 계급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데 막상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뭐냐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시대는 법으로 정해진 신분과 계급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국가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시대는 신분제도(身分制度), 계급제도(階級制度)가 일상에서는 혁파된 국가가 대부분이다. 다만 이렇게 신분제도와 계급제도가 혁파된 국가라고 해서 신분과 계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다.
대중매체를 접할 때 ‘군인 신분’, ‘공무원 신분’, ‘민간인 신분’이라는 말을 각종 신문, 영상매체 등에서 자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일상까지 속박하는 구시대의 신분제도 자체는 없어졌으나 ‘신분’이라는 것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계급은 어떠한가? 군대에서 복무하며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은 ‘군사 계급’을 가지며 그것으로 지위고하가 정해지고 계급의식(階級意識)을 공유한다. 군대만이 아니라 경찰관, 소방관을 비롯한 문민 공무원들도 엄연히 공무원으로서의 계급을 가지며 그것으로 지위고하가 정해지고 계급의식을 공유한다. 일상까지 속박하는 구시대의 계급제도 자체는 없어졌으나 ‘계급’이라는 것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범위’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쉽게 예시를 들어보면 ‘군인 신분’, ‘공무원 신분’, ‘민간인 신분’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 계급’, ‘공무원 계급’은 존재해도 ‘민간인 계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와 공무원 조직은 계급제도가 존재하는 계급사회이나 군인이나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들의 조직은 계급제도가 없고 계급사회도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을 구별하는 회장, 사장, 이사, 부장, 차장, 과장, 대리, 계장, 주임, 사원 같은 분류는 계급이 아니라 직급(職級)이다. 군인과 공무원의 신분을 가진 자들은 자기 조직이 계급제도가 존재하는 계급사회(階級社會)이기 때문에 군인,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계급을 동시에 가지나 군인이나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의 신분을 가진 자들은 자기 조직이 계급사회도 아니고 계급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민간인이라는 신분만 있고 계급은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분’은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다 가지는 것이라면 ‘계급’은 오직 ‘계급제도’가 존재하는 ‘계급사회’ 같은 곳에서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분과 계급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류의 역사는 길고 계급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다. 유한계급(有閑階級), 무산계급(無産階級), 서민계급(庶民階級), 상인계급(商人階級), 시민계급(市民階級), 자본계급(資本階級), 중산계급(中産階級), 지식계급(知識階級), 신흥계급(新興階級), 노동계급(勞動階級), 평민계급(平民階級), 상류계급(上流階級), 특권계급(特權階級), 귀족계급(貴族階級), 중서계급(中庶階級), 생산계급(生産階級), 기생계급(寄生階級), 양반계급(兩班階級), 중간계급(中間階級), 유산계급(有産階級), 상층계급(上層階級), 자산계급(資産階級), 지배계급(支配階級), 하류계급(下流階級), 하층계급(下層階級), 지주계급(地主階級), 수탈계급(收奪階級), 착취계급(搾取階級), 적대계급(敵對階級), 중류계급(中流階級), 소시민계급(小市民階級), 피지배계급(被支配階級), 피압박계급(被壓迫階級), 자본가계급(資本家階級), 신중산계급(新中産階級), 소자산계급(小資産階級)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한 술 더해 군주와 제후로 이루어진 제일계급(第一階級), 귀족과 성직자로 이루어진 제이계급(第二階級), 부르주아를 비롯한 평민들로 이루어진 제삼계급(第三階級)이라는 계급까지 있었다.
오늘날에는 저런 구시대의 신분제도, 계급제도가 혁파되어 저렇게 복잡한 계급 구분을 쓰는 나라는 이제 거의 없다. 웬만한 국가에서 계급은 민간인들로 이루어진 민간단체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군대, 경찰관, 소방관, 교도관 같은 계급제도가 필수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공무원 조직에서만 제한적으로 존재하는 제도로 남아있다.
그럼 계층(階層)은 무엇인가?
계층의 사전적인 뜻은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사람들의 층’이다. 쉽게 말하자면 상류층(上流層), 중류층(中流層), 하류층(下流層) 같은 게 바로 계층이다.
이런 계층들을 ‘사회계층(社會階層)’이라고 하는데 사회계층의 사전적인 뜻은 ‘한 사회 안에서 재산, 교육, 직업, 주택, 명성 따위의 기준에 의하여 구별되는 인간 집단’이다.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이라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계층은 계급과는 달리 법적으로 규정되는 게 아니고 그 범위도 되게 애매하다.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의 기준은 누가 정하고 어떻게 정한단 말인가? 바로 이 점이 계층과 계급의 중요한 차이이다.
인간세계에 존재하는 신분과 계급 그리고 계층은 인간이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문명사회를 이루면서 등장했다. 아니 정확히는 미개사회일 때도 신분과 계급과 계층의 원초적인 모습은 존재했는데 제대로 된 문명사회를 이루어지면서 법제화되고 체계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인류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의식수준이 높아진다고 해도 신분과 계급과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국가는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인간들에게 있어서 신분과 계급과 계층의 구별은 사회의 유지에 있어서 선택이 아니리 필수 또는 필연이며 그런 구별이 없다면 사회는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필요하며 그런 공무원들로 이루어진 공무원 조직은 필연적으로 계급이 존재하는 계급사회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런 공무원들은 아무런 공직, 관직을 가지지 않은 민간인과는 다른 신분을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공무원 신분과 민간인 신분은 나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생겨난다면 그 국가에는 재산과 권력을 많이 가진 부유층, 상류층이 생겨날 것이고 재산과 권력이 적은 중류층, 하류층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만민의 평등을 주장한 공산주의 국가들조차 끝내 신분과 계급과 계층이 하나도 없는 세상은 만들지 못하고 전부 실패했다. 즉 신분과 계급과 계층은 인간들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고 그걸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다만 신분과 계급과 계층이 필연적이라고 해서 그로 인한 폐해를 정당화하는 것 역시 사회를 병들게 하고 무너지게 할 수 있다. 당장 프랑스 혁명만 봐도 신분제도, 계급제도의 모순이 폭발하여 일어난 것이다. 신분과 계급과 계층은 필연적인 것이나 필연이 곧 정의는 아니듯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그 자체로 올바름을 보장하지 않는다.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정치는 필연적으로 행해져야 하나 정치가 항상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분과 계급과 계층은 항상 올바른 원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즉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신분과 계급과 계층을 올바르게 작동하게 하려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며 구성원들이 그렇지 못할 경우 신분과 계급과 계층은 국가와 사회를 유지라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오히려 국가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심지어 멸망하게 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바로 그러지 못했기에 발생한 일이다.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들은 항상 신분과 계급 그리고 계층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동시에 그것이 올바르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 역시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어느 계급이 특권계급이 되어 국가와 사회를 좀먹지 않도록 어떤 신분이 차별당하지 않도록 하려면 결국 그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깨우치고 부족하고 잘못된 부분은 보완하고 고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