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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 May 27. 2021

처음 3D회사 면접 그리고 처음 합격소식

스물 아홉에 신입사원이 된 한 사람의 20대 감상문


얼마 전 서울에 세찬 비가 내리고 난 저녁 7시 30분 즈음에 비가 그치고

아주 밝게 해가 들었다. 인생에 여러 번 본 순간이었고 익숙한 현상이기도 한데

나는 그 순간에 아주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어둠이 익숙할 시간에 밝게 비친 햇살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녹였고

희망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온 세상을 밝게 비추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뉴딜 취업연계지원사업 모션그래픽 전문가 과정

수료를 모두 마치고 드디어 취업을 했다.

현대무용수로 살며 10여 년 동안 활동을 했고, 힘들고 서러웠던 시절

춤을 순수하게 사랑했고 무대가 즐거웠던 모든 시절이 이제 다 지나간 일이 됐다는 게

체감이 된다. 나는 지난 2년간에 시간을 보낼 때 언제든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모션 그래퍼로 취업을 바라고, 실력 성장을 위해 바쳐온 시간들을 수놓아 보니

이제 와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인생이라는 커다란 바다에서 크고 작은 파도에 밀리고 치여 여기까지 온 거 같다.


나는 3D 모션그래픽 회사에 취업이 됐다. 취업이 되기 전 보다 합격을 하고 난 다음

밤을 많이 지새운 것 같다.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서 그랬던 거 같다.


'지나온 시간들의 향수

회사가 과연 나의 쓸모를 찾을 수 있을까란 불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설렘 등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포트플리오 제작 과정 중에는 늘 마감에 압박과 퀄리티의 부담감에 시달리며

작업을 했고, 수료가 끝난 다음에는 매일같이 감수성에 젖어있었다.


요즘은 명상가처럼 인생을 조용하고 고요하게 바라보고 있다.


지금도 어리지만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감수성에 젖어있는 상태가 싫다고 생각했다.

근데 살다 보니 생각이 드는 건 긴장감이 없는 요즘 같은 하루를 마주하기 어색하고

대처하는 방법이 미숙해서 그랬던 거 같다. 할 게 없을 땐 꼭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아주 심플한 해결책이 있는데 그 심플한 사실을 29년 만에 알게 됐다. 나름대로 '깨어있다'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 인간으로서의 성숙도는 아직 이렇게나 미흡하다.

하긴... 지금까지 살아오며 어디까지가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노력했다 노력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방어적인 자세로 인생을 보내왔으니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땐 노력의 정도도 모르고 "노력했다"라는 말을 자주 내뱉었다.

하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지난 몇 개월간의 시간은 나에게 노력이 뭔지를 알려줬다.

일주일이라는 한정된 기간 안에 구성안부터 레퍼런스 찾고 소스 작업 모션 작업과 믹싱까지

이틀에 하루씩 밤을 새 가며 포트플리오를 만들고, 끊임없는 수정과 보안의 연속

에너지 드링크를 하루에 6캔씩 마시고 두 시간에 한 번씩 찬물로 세수를 하며 오로지

결과만을 위하여 몸과 정신을 혹사시켰다. 내가 잘한 건 아니다. 나도 이렇게 빡빡한 일정 속에

산다는 것이 처음이라 참 많이 미련했다. 나는 무용을 할 때 혹은 공부를 할 때도 결과에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다고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혼돈에 사로잡혀 늘 정신이 없었다.

 그 혼돈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됐다.

 한 번은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이다.

 "오늘 한번 노는 건 괜찮겠지"나 "오늘 하루 좀 늦잠 자는 건 괜찮겠지"

이런 사소한 안일한 생각들이 모이고 모이다 보니 혼돈의 소용돌이가 됐고 나는 그 안에서 정신을 못 차렸다. 혼돈이 지나고 나면 폐허가 된 나의 마음 상태만이 눈에 보였다.

그 안일함을 눈치채기까지 9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시간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일해봤으니, 내겐 그 안일한 상태를 알아차리는 지혜가 생긴 것이다.


나의 지난 아픔과 어리석음이 안일함을 마주할 수 있는 지혜를 낳았다 생각해 보니

세상엔 참 의미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거 같다.


저녁 8시 30분경까지 세상은 밝았다.

 길가에 가로등이 켜지지 않았더라면 대낮이라 착각이 들 정도로

그날 저녁 길가는 유난히 밝았다.


저녁 일곱시 반 경 연남동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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