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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 Aug 29. 2021

가장 뜨겁게  20대 마지막 여름과 작별

막막했던 영화 편집을 하면서 되짚어 본 실패의 본질



몸과 마음이 온전치 못할 때 정신은 가만히 있음에도 아득해져 간다.

온전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쉼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일이 나란 사람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거나, 그 일이 나를 집어삼켰다거나,

혹은 내가 예상치 못하게 토해냈을 때 내 안의 뒤틀림과 메슥꺼움으로 가득 찰 때

아득해져 가는 것이다.


그러니 쉼이 있음에도 안절부절못하는 것이고, 그 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딱하기만 한 것이다.


광고 영상, 홍보성 영상, 등 타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하여 영상을 만드는 일이 나에겐 그랬다.

 나는 모션 그래퍼로 취업을 할 때도 분명,

무용수로 생활했었던 시기와의 교집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무에 들어갔을 당시엔 배우기 바빴고 무조건 열심히 만들었다. 클라이언트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 무조건적으로 만들었다. 야근도 하면서 클라이언트의 변덕을 받아드리며 몇번이고 수정했고 또 그렇게 나온 아웃풋을 보며 뿌듯하기도 하고 약간의 즐거움도 있었다. 하지만 끝이나면 시작 시작과 동시에 시작, 그 과정중에 문득 든 생각은 내가 만든 영상은 어디로 가는걸까? 하는 의문이었다. 제 아무리 홍보성 광고 영상일지라도 어쨌든 내가 만든 영상이 노출이 되고, 누군가가 본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그 나름의 뿌듯함을 유지하며 작업을 이어나갈텐데 내가 만든 영상이 어디로 가는 지 나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시기를 거쳐가며 점점 더 나에게 솔직해지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


위로가 되고 따뜻한 영상 혹은 필요한 누군가에게 영향력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것들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퇴근 후에

두 발로 친구들과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현장에서는 프로듀서로서 후반에서는 영화 편집자로서 도전하였고 이번 글에선 영화 작업 후반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20개의 영상 소스 싱크를 하나하나 맞추는데 주말 2일을 꼬박 쏟아부어도 촉박했다.

싱크가 알맞게 떨어지게 슬레이트를 잘 친 부분이 있으면 반대로 현장 스테프들이 모두 정신없다 보니,

대충 넘어가는 장면도 있었다. ok컷이 아니더라도 편집에서는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싱크를 맞춰서 소스를 장착해놔야 한다. 한 여름에 내방은 거실에 있는 에어컨과 동  떨어져도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싱크를 이어 붙이고 1차 가편 집작 업을 하는데

하루가 소모됐다. 처음이다 보니 컷이 붙는 것과 편집에 있어서 영화적 법칙, 더블액션과 리액션 등

나는 지식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로지 나의 눈과 귀, 그리고 이미 개봉한 영화들을 레퍼런스로 참고하면서 1차 가편집을 완료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부터 회사로 가서 일을 마치고 난 후 감독에게 영화 가편집 본을 보여주기 위해 친구의 자취방으로 향했고, 두세 시간 정도 숙면을 취한 나는 아무래도 영화가 나의 존재보다 크게 다가왔는지 피곤함보다 긴장감과 떨림으로 그들을 마주했고, 나의 가편집본을 같이 프리뷰 했다.


나는 처음인지라 분명 악평만 난무할 것이라 생각했고, 가장 최악의 상황으론 나는 편집자의 자리에서 물러날 거라고 예상까지 했다.  숨죽이며 나의 가편집본을 시청했고 감독인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보더니 가편집본 프리뷰가 끝나고 난 후 나에게 내 두 귀를 의심하게 만들 말을 했다.


"야 너 재능 있네, 나 진짜 생각보다 많이 놀랐다?"


너무 예상 밖의 말을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동안의 고생과 심리적 압박감이 낳은 작은 보상인 건지

갑자기 온몸에 힘이 쫙 풀리더니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이렇게 인정받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상업영화계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나를 인정해줬고, 나는 내가 본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 한 순간, 너무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날도 새벽 한 시까지 편집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



첫 프리뷰 이후로 매일매일 친구의 자취방에서 새벽 한 시까지 편집하고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들고 다시 회사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편집실로 가서 새벽 한 시까지 편집을 하고 약 일주일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버렸다.

점점 몸이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만큼 버거워지지만 마음은 그와 반비례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싶단 생각에 전혀 버겁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나의 내일은 또 회사에 출근하여 기업홍보영상을 만들거나, 자막 작업을 하거나 잔업 처리를 할 지라도, 지금 나는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까 말이다.

많이 힘들고 긴 시간이지만 이 시간이 안 끝났으면 좋겠다.


어느덧 편집 작업이 끝나 이제 사운드 파일 믹싱 처리를 위하여 음향감독에게 사운드 파일을 넘겨줬다.

하루 이틀 이내로 작업해서 우리에게 전달해주면 나는 그 믹싱이 완료된 파일을 검토 후

최종적으로 마스터 영상을 영화진흥위원회에 메일로 보내면 되는 것이고, 우리의 아웃풋도 나온 것이다.



몇일 뒤 나는 믹싱 최종본을 받아, 마스터링 작업을 했고 영화진흥위원회에 작품을 보냈다. 편집을 하던 작은 원룸방에 친구들과 나는 마지막 최종 아웃풋을 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의 마음을 감히 모두 헤아리진 못하지만, 우린 결국 각자 생각 할 시간이 필요 한 것이다. 나는 작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해 질 녘의 공기를 마셨다. 한여름인지 아니면 가을의 시작인지 모를 이 공기는 나에게 이상한 용기가 샘솟았고, 몸과 마음이 한 여름 내내 왱왱거리는 모기보다 가벼워져서  마음이 하늘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붕붕 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정말 내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기만 했다.


사회에 일원으로서의 책임으로부터, 어머니의 가슴 아픈 눈물로부터,

아버지의 걱정 근심 어린 한숨으로부터, 불안정한 미래로부터.


"도망가자"



영화 편집을 하면서 나는 나의 내면으로부터 들렸던 소리다.

"도망가자"는 말

내 안에서 울려 퍼진 이 소리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도망치려고 했다.

받은 돈을 토해내고 그냥 일반적인 회사원으로 살면서 더 이상 창작을 한다던지 뭔가를 제작한다던지 그런 미래를 아예 안 그리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막연함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 정면으로 바라봤고, 그 거센 바람을 두 눈 똑바로 뜬 상태로 마주했다. 나는 더 이상 겁쟁이도 아니고, 더 이상 도망자도 아니고 비겁하지도 않다.

어떻게든 할려면 할 수 있다.

영화작업은 전공도 못해 본 나란사람에겐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도전이였고, 도착점에 들어왔다.

난 어쩌면 이제야 창작자로 첫발을 내디딘 셈이라는 생각이 든다.




20대 마지막 여름,

난 여름이 싫었다. 덥고 땀나고 비오고 습하고, 종합적으로 나의 20대 여름의 기억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작업을 통하여 나는 여름과 마지막 20대에 화해를 한 거 같다.

가장 뜨겁게  20대 마지막 여름과 작별, 이제 곧 가을이지만 매미가 더욱 길게 울어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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