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대가 되어 정리하는 평범한 20대의 연애기록

먼지 쌓인 밀봉된 일기장

by 외노자O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글들을 바탕으로 그때의 감정을 회상하며 기록한 회고록입니다. .


신은 인간에게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신이 실수하였으리라 확신했다.

대학시절 처음 만났던 첫사랑 그녀와의 5년간의 열애는 그녀의 새로운 인연에 등장으로 인한 일방적인 이별통보로 한순간에 파단이 났다. 나름 현실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나는 분노의 5단계 초입의 현실부정이 앞섰다.


당신과 나의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니고 운명이리라.

나의 취미와 특기는 당신이었고 나의 모든 것은 너였으며, 첫 연애였고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당신과의 만남에서는 이별 따위는 상정하지 않았음을 후회하였다. 블랙스완효과 따위는 고려할 관계가 아니었음을 확신했던 게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타협의 언덕을 건너 수용의 단계를 왔다.

그때당시의 나는 다시는 이런 행위를 반복하기 싫었고 이런 행위는 인류가 행하는 가장 멍청한 짓 중 하나라고 속단했었다.

그렇게 나의 생각과 사상이 굳어져갈 때쯤 그녀(A)를 마주한다.


/


사소한 행동들마저 평안과 행복으로 치환되던 그 모든시간들은 산 정상에서 마주한 구름처럼 실체 없이 산산이 흩뿌려진 듯하다.

무언가라도 정신을 돌릴게 필요했다. 밖에를 나가서 뭐라도 해야했다. 그렇게 낮에는 정말 바쁜 카페에서 일을 했다.

청담동에 있는 그때당시 나름 핫한 카페였는데 그 당시에 나는 외적으로 나를 가꿀 형편이 안되어 머리는 관리 안된 덥수룩한 장발을 유지했으며 옷은 그냥 손에 잡히는 티셔츠와 바지 카테고리만을 구분해서 입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근무 중 의상은 유니폼을 입었다.

이런 외관에 일만 주야장천 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 눈에는 게걸스럽게 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퇴근 후 한 뼘 같은 방에서 쓰러져 잠을 청하고 다시 일어나 출근을 반복했으며 이런 식으로 주 6일을 일하고 쉬는 날에는 하루종일 책만 읽었다. 고전문학부터 동양철학, 서양철학 등등 나의 말라비틀어진 정신상태에 스포이드로 물을 한두 방울씩 떨어뜨리는 심정으로 그냥 책만 하루종일 읽었다.

그때의 나의 외관은 정말 흑역사 중 흑역사였으나 반면에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하는 큰 성장통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일 년 즈음 될 무렵 내면의 평화를 점점 찾아가는 나에게 나와는 정반대의 결을 가진 네가 등장했다. 대학시절부터 후배에게도 깎듯이 후배님이라 존댓말을 사용하며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두는 내게는 너는 화성에서 온듯한 캐릭터였다. 3살 어린 A의 첫인상은 대뜸 반말에 출근한 지 3일 만에 3년 차의 능청스러운 행동을 보여줬던 너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캐릭터였다.

적어도 너는, 너만큼은 나와는 섞일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일 거라 확신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데면데면 업무를 같이하던 와중 뜬금없이 별을 보러 가자고 하루종일 제안하는 너의 행동에 나는 그날 하루종일 고민을 끌어안았다.

“저요? 왜? 왜요? ”라는 무조건적인 반사와 동시에 논리회로가 고장이 나버린 듯했다.


’그날 뉴스에 나올 만큼 별똥별이 잘 보이는 날이었고, 별은 보고 싶은데 혼자는 조금 무섭고 그냥 무해해 보이는 사람이라 별 의미 없이 얘기를 꺼낸 것‘ 이라는 걸 이제는 알지만 그 당시 그 속마음을 모르는 나는 내가 네게 뭘 잘못한 건지, 신종 방과 후 옥상으로 따라와인지, 내가 구현할 수 있는 모든 논리회로를 가동해 봐도 가늠이 안되어 몇 시간을 고민하다 퇴근 직전에 마지못해 간다고 답을 주었다. 그렇게 그날 낙산공원으로 별을 보러 갔고 캔맥주 4캔과 함께 별을 보러 언덕을 올랐다.


막상 올라가서 보니 서울시내의 빛공해로 별은 잘 보질 못했지만, 시시콜콜한 주제부터 진지한 주제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밤을 지새웠고 아침해가 뜨고 나서 각자 집으로 가서 옷만 갈아입고 출근을 했다.

그날 그 별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밤공기가 주는 진솔한 대화가 문제였을까… 우리는 그제서야 서로의 파편들을 찾아서 보기 시작했고 누구보다 코드가 맞다는 사람임을 그제야 인지했다.

밝은 사교성을 선망하는 차분한 나와

차분함을 선망하는 누구보다 밝은 너.

우리는 각자 본인에게 없기에, 더 빛나보이는 상대방을 동경하며 선망하기 시작한다.


그때 당시의 마음을 끄적여둔걸 이제야 정리해 기록으로 남긴다.


별 보러 갈래요?

별 뜻 없이 던진 개울가 돌맹이일수도 있겠지만

파장은 크게 퍼져나가 한참을 고민하다 퇴근하기 전 간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청춘드라마 같던 여름날의 너와 별들과, 서른을 훌쩍 넘기고 도시의 무인도에서 표류하는 나는

이제는 시리우스와 베텔기우스만큼 서로 떨어져 발광하는 듯해

우수에 가득 차 침수해 있는 항성의 나에 반해

너는 행성처럼 자유롭게 빛나는 별 같아서 눈부셔 보였나 보다.


“별 같아”

내면 깊숙한 곳에 너를 기억하는 표현이고

깊은 유대감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너를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표현이야

너는 주위에 어둠이 많아도 보란 듯이 빛이 나며

결국은 모두가 바라보게 돼

그래서 나의 스타이고 그렇기에 나는 열렬한 팬을 자청하는 듯해


날이 밝으면 하늘을 올려다볼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지내지만

저녁이 오면 어둠이 깔린 방에 차분히 누워 천장에 별을 띄우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별을 헤아린다


시리게 좋은 이 감정을 엽서에 가득히 눌러 담아

내가 좋아하는 김수영시집 가운뎃장 깊숙한 곳에 보관하고 싶어.

내 삶이 저열하고 시릴 때 습하고 더운 여름향기처럼

이 끓어오르는 마음들을 고이 접어 마음 한쪽에 켜켜이 보관해야지



이렇게 개연성 없는 청춘드라마처럼 너와 나의 만남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