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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수 Aug 03. 2024

[기독서간문] 3. '읽는다'는 것

벌써 목요일이네요. 한 주가 참 빨리도 갑니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만화를 빌렸습니다. 

잘 알려진 허영만 화백의 커피 만화 <커피 한잔 할까요?> 전체 8권입니다. 

그중 몇 권을 읽었습니다. 만화 중에서도 배울 점이 있더군요. 

가령 사진에서와 같이 어떤 일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에 대해 의미 있는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왜? 내가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고집불통 노땅 같냐?”
"혀는 확실해야 하고 머리는 유연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무지가 쌓이고 교류가 끊기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생기게 된다. 다른 커피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에겐 죄다.”(2권 153쪽)

어디 커피뿐이겠습니까?


우리들 삶, 모든 분야가 다 해당되는 얘기일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혀(세상 보는 눈)는 확실해야 하고, 머리(세상을 읽는 관점)는 유연해야' 하겠지요.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우리의 세상을 보는 관점(세계관)은 유연해야 할 것입니다. 결코 편협하거나 고정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신명기, 여호수아, 사무엘하, 잠언 등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신 5: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의 출발은 그다지 빛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짧은 이해로는 말이죠.

우리나라에 처음 도착한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이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처음 신학교를 세웠을 때도, 당시 미국 근본주의 활동의 영향을 받아 성경 이외의 신학은 모두 무시하고, 오로지 성경만 가르치는 '바이블 스쿨'을 만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윤리나 도덕, 세계관, 사람들이나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기독인의 의무, 법철학, 정치윤리, 경제관 등등의 학문이나 신학은 필요 없다는 신앙관을 가르쳤습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예수님 재림의 때까지 점점 더 악해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성경’ ‘오직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는 것이었죠 (성서무오설, 세대주의 전천년설이라는 종말론, 성결 등). 그 맥락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그런 것들의 연원에 의해 오늘날 교회 및 우리 기독교계가 한국 사회의 계몽 및 변화에 대한 지도력을 상실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일단의 성찰적 견해에도 귀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이와 연계해서 오늘은 성경을 읽는 방법과 관련한 짧은 의견을 형제님들에게 들려드릴까 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는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나 목장 모임 혹은 개인적인 묵상 등을 통해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성경 읽기의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는 엄밀히 말해서 ‘성경 말씀이 우리의 일상적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쉽게는 ‘말씀을 적용한다’는 표현에서와 같이 ‘우리의 일상적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살아내고자 하는 바람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둘째는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 말씀의 원래 뜻은 무엇인지’ 또는 ‘쓰일 당시에는 어떤 의미와 목적으로 기록되었는지’를 따지고 묻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적용과는 분리되어 생각하는 것이 학습에 도움이 되겠지요. 그러니 그 말씀은 누가 기록하였고, 언제 쓰였으며, 당시의 시대상 및 배경은 어떠했는지 등등이 무척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따지고 캐묻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구나 성경의 원래의 뜻을 깨우치고 나면, 이어서 그 말씀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고찰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성경에 대한 이해, 즉 성경 해석은 끊임없이 세상의 변화에 영향을 받으며 이루어져 오다 [1] 보니,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 또한 올바른 성경 읽기의 필요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학문이나 근래의 세계관을 학습하고 이해하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올바른 하나님 말씀 해석을 위해서는 말이죠.


<성경공부>와 <성경연구>를 병행해야 한다는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은 어떤 방식일까요? 


경건의 시간(QT: quiet time)을 가지면서 성경 구절 중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내 삶에 적용해보고자 하는 것은 첫 번째의 읽기 즉 ‘성경 공부’ 방법론을 수행하는 것이겠습니다. 이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방식으로의 읽기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성경 이외의 서적을 읽거나 선행 연구자들의 강연 등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방식이 되겠습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시도’ 즉 성경 자체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개론서 학습 및 다양한 목사님들의 설교 청취, 신학교수들의 유튜브 강연 청취 등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베뢰아 사람들의 열심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행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말씀 중의, <너그러워서>라는 뜻은 '진리에 대한 진지한 태도'이고, <그러한가 하여>는 '비판적인 태도로 상고'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고 해석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위의 두 가지 자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즉 (1) 하나님의 진리, 생명의 말씀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읽고 상고하며, (2) 그 들은 바가 과연 그러한가 의문을 제기하는 자세, 즉 비판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간절함 그리고 그 들은 바에 대한 비판적 자세, 이 두 가지야말로 고귀하고 고결한 덕목이며, 성경을 공부하는 기본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의 숲> p.19, 김근주 교수, 대장간 


이러한 비판적 태도를 통해, '과연 그러한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외부 서적이나 강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책은 물론이고 유튜브 영상도 잘 골라보면 매우 유용하더군요. 

작년도에 제가 의미 있게 봤던 영상들이 [신학 블럭버스터] 들입니다. 대화의 형식으로 우리의 신앙에 도움이 될만한 신학의 주제를 아주 쉽게 무엇보다도 유용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 시리즈를 1편(아래 링크 참조)부터 차근차근 들어보실 것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형제님들 각자 개개인 모두가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고, 사회적으로는 신앙인으로서 갖춰야 할 지식과 지혜를 확보하여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회인으로 성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추신) 성서 개론서 추천 

    1) 신약 : 현대인을 위한 신약개론(마크 알란 포웰) 

    2) 구약 : 구약성서 탐구 (버나드 W. 엔더슨)

    3) 하나님은 누구인가에 대한 포괄적 학습서 :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 신 (김용규)

    4) 유튜브 : 신학 BlockBuster (한국교회탐구센터) https://www.youtube.com/watch?v=hNhR9lZAO10&list=PLt0DkAJNZc-b6IuJx2fPi0xVAJa0icZly


[1] <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 _ 김호경, p.12



참고 서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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