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아] 시즌 5: 윌리엄 슈니더윈드의 저서를 중심으로...
고대 사회에서 문자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신성한 기원을 지닌 강력한 매체로 인식되었습니다. 문자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운명을 규정하며, 인간과 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문자 해독 능력이 소수 엘리트에게만 허락되었다는 사실은 문자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성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대 근동 세계—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이스라엘—의 사상 구조를 중심으로, 이름의 신성성, 인구조사와 명단 작성이 지닌 위험성, ‘생명책’과 같은 신성한 문서 개념, 그리고 저주와 축복에 담긴 문자의 상징성과 권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고대의 인식은 성경 속에서 문자가 수행하는 역할을 형성하는 결정적 배경이 되었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 종교의식과 문자 문화에 대한 태도 속에도 여전히 깊이 남아 있습니다.
고대 사회의 문자 개념
고대 사회, 특히 문자가 보편화되기 이전의 구술 문화권에서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 행위가 아니라, 신비롭고 강력한 사건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는 문자가 지닌 신성한 기원성과 극단적인 희소성 때문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은 문자를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라 신의 선물로 이해했습니다. 유대 전승에서는 히브리어 문자와 글쓰기 기술이 창조의 일부로 여겨졌고(미쉬나 아보트 5:6), 시내산의 두 돌판 역시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것으로 전해집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도 문자와 글쓰기는 신적 세계와 소통하는 신성한 매개로 이해되었습니다.
또한 문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축복과 저주를 담는 초자연적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글은 현실과 미래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가진 행위로 인식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고대 사회에서 문자 해독 능력은 왕과 제사장 같은 극소수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식자율은 인구의 약 1%에 불과했고, 이로 인해 문자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더욱 신비롭고 경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역시 오랫동안 문자문화 이전 사회였으며, 기원전 7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국어 알파벳이 전반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글쓰기는 고대인들에게 기술이 아니라 권능, 정보가 아니라 신성한 힘의 매개였던 것입니다.
글쓰기의 신성함
문자가 지닌 신성함과 권능 때문에, 글쓰기는 고대 사회에서 정치·종교적 특권 계층만이 소유하는 보호된 지식이었습니다. 문자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이었고, 접근 자체가 엄격히 통제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초기부터 신전에 소속된 서기관 집단이 문자를 관리했고, 기원전 1000년 이후에는 서기관들의 수호신으로 나부(Nabu) 신이 부상합니다. 나부는 최고신 마르둑의 아들이자 신들의 회의를 기록하는 신적 서기관으로 묘사되며, 이는 궁정 사회에서 서기관의 위상이 신격화될 만큼 상승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집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글은 본래 ‘신성한 문자(hieroglyph)’였고, 지혜와 마법의 신 토트(Thoth)가 글쓰기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토트는 인간에게 문자와 지혜의 비밀을 전해준 존재로 이해되었습니다.
특히 토트가 글쓰기와 마법을 함께 관장했다는 점은, 문자가 단순한 기록 수단이 아니라 마술적 힘을 지닌 실재적 능력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미라 보존 주문에서 일부러 깨진 글자를 사용한 관습이나, 의학서의 문장을 베껴 만든 부적과 같은 민간 신앙은, 문자가 실제로 생명과 죽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으로 여겨졌다는 고대인의 인식을 잘 드러냅니다.
“그 이름을 몰약 잉크로 두 개의 숫달걀 위에 쓰라. 그중 한 개는 당신이 손수 완전히 씻어 그 위에 쓰인 이름을 혀로 핥고 부순 다음 던져버리라. 나머지 한 개는 오른손을 반쯤 오므려 그 위에 올려놓고 새벽에 뜨는 햇빛을 받게 하라....... 그러고 나서 주문을 일곱 번 되뇌고, 달걀을 깨어 속에 있는 것을 삼키라.”
_ 미라를 보관하는 관에 기록된 주문
의식에 사용된 글
문자의 힘은 고대 사회에서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 종교의식과 주술 행위 속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글은 ‘의미 전달’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위로 이해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저주할 사람이나 국가를 상징하는 토기 인형에 저주문을 새겨 넣고, 그것을 부수는 의식을 통해 저주를 실행했습니다. 글이 새겨진 대상 자체가 저주의 매개체였던 것입니다.
성경에도 유사한 사고방식이 나타납니다. 민수기 5:15-30에 기록된 간통 의심 의식에서, 제사장은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기록한 뒤 그것을 물에 풀어 피의심자에게 마시게 합니다. 글이 물에 녹아 몸 안으로 들어가 저주를 일으킨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민수기 5:23-24]
23 제사장은 이 저주들을 두루마리에 쓴 다음에 그 쓴 물로 씻는다.
24 그리고 그 여자에게 그 저주를 가져오는 쓴 물을 마시게 한다. 그러면 그 물이 속으로 들어가 쓰라린 고통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물에 녹은 ‘찢어진 글’이 마술적 효력을 가진다는 이스라엘의 개념은, 저주 인형을 파괴하는 이집트 의식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합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 역시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문자가 실질적 권능을 지닌 존재라는 관념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기록된 이름
고대인들에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한 사람의 본질과 운명, 정체성을 응축한 실체였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부여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극도로 신중하고 신성한 행위로 인식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의 변화는 곧 존재의 변화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뀐 것은 운명의 전환을 의미했고(창 17:5),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는 장면은 한 인물의 삶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었음을 상징합니다(창 32:25–28). 모세의 이름 역시 그 기원 해석을 통해 그의 정체성을 신학적으로 규정하려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창세기 32:25-28]
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알고는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습니다. 야곱이 그 사람과 씨름하는 사이에 야곱의 엉덩이뼈가 어긋나게 됐습니다.
26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동이 텄으니 나를 보내 다오."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저를 축복하지 않으시면 못 갑니다."
27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야곱입니다."
28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제 네 이름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네가 하나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 속에서 이름을 기록하는 행위, 곧 인구조사는 매우 위험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이름을 명단에 올리는 것은 생명에 대한 통제권을 인간이 행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이는 신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0장에서 인구조사 시 속전을 바치게 한 규정, 사무엘하 24장에서 다윗의 인구조사 이후 전염병이 임한 사건, 그리고 민수기에서 레위 지파가 인구조사 명단에서 제외된 구조는 모두 같은 신학적 인식을 반영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게 이름을 기록하는 일은 행정 행위가 아니라, 생명과 운명, 신적 권한의 경계선을 건드리는 신성한 행위였던 것입니다.
신이 기록한 글
고대인들에게 인간의 기록을 넘어, 신이 직접 기록한 글과 하늘에 존재하는 책은 절대적 권위와 실재적 힘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글은 정보가 아니라, 곧 운명과 생명을 규정하는 권능이었습니다.
시내산의 두 돌판은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돌판은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신 언약의 문서로서 최고의 신성함을 지녔고(출 31:18), 언약궤 안에 보관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물이 되었습니다. 그 신성함 때문에 언약궤는 축복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고대 신앙 세계에는 하늘에 존재하는 ‘생명책’ 사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인간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으며, 그 이름의 기록 여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는 인식입니다. 모세가 “주의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출 32:32),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최후의 심판과 새 예루살렘 입성을 생명책과 연결하는 묘사는(계 20:15; 21:27), 이 사상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 자체에 대한 경외도 점점 강화되었습니다. 페르시아·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며 야훼(YHWH)의 이름은 감히 발음하거나 기록하기 어려운 신성한 이름이 되었고, 사본가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쓰지 않기 위해 특별한 표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기록된 이름 자체에 신적 권능이 깃들어 있다는 고대의 깊은 인식을 반영합니다.
결국 고대 세계에서 ‘기록된 글’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권위·생명·심판·구원을 매개하는 신성한 실재였던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고대 관념의 현대적 유산
문자가 신령한 힘을 지닌다는 고대의 관념은 국가와 사회가 복잡해지고 행정적 기록이 일상화되면서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문화와 신앙 안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세례명이나 개명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표시합니다. 이는 이름이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정체성과 운명을 상징한다는 고대적 인식의 연장선입니다.
또한 기록된 말씀에 대한 경외 역시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 두루마리를 귀하게 보관하고 낭독하는 전통, 교회 강대상 가장 높은 자리에 성경을 두는 관행은, 문자를—특히 신성한 텍스트를—경외하던 고대 세계관의 유산을 오늘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결국 문자에 대한 경외는 사라진 신앙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 채 계속 살아 있는 종교적 기억인 것입니다.
[관련자료]
1. How the Bible Became a Book: The Textualization of Ancient Israel, William M. Schniedewind, 2004
2.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윌리엄 슈니더윈드, 에코리브르,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