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아] 시즌 5: 윌리엄 슈니더윈드의 저서를 중심으로...
성경은 처음부터 ‘책’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단일한 저자가 일관된 의도로 집필한 작품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의 구술 전통이 문자로 옮겨지는 과정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텍스트들의 집합입니다. 수백 년 동안 전승되던 이야기와 율법, 예언은 각기 다른 역사적 상황과 공동체의 필요 속에서 기록되고, 편집과 재해석을 거치며 축적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적·종교적 합의를 통해 권위를 획득하고, 마침내 ‘성경’이라는 이름의 한 권으로 묶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고정된 완성품이라기보다, 문화와 기술, 권력과 신앙이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긴 과정의 산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은 다음과 같은 주제들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구술에서 문자로의 전환
고대 사회에서 지식과 전통은 주로 구술, 곧 살아 있는 목소리를 통해 전승되었습니다. 말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화자의 권위와 상황, 공동체의 기억이 결합된 살아 있는 지혜로 이해되었고, 문자보다 더 신뢰받는 매체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플라톤이 문자가 기억을 약화시키고 지혜의 외양만 남긴다고 비판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초기 문자문화는 기존 구술 전통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문자의 장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문자는 정보를 안정적으로 보존하고, 공간과 세대를 넘어 전달할 수 있었으며, 점차 새로운 권위의 매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인식론적 전환이었습니다. 유동적인 말의 권위가, 반복 가능하고 고정된 텍스트의 권위로 이동한 것입니다. 종교적 가르침과 사회 규범은 이제 말이 아니라 글을 기준으로 해석되고 논쟁되기 시작했고, 바로 이 지점에서 훗날 하나의 통일된 ‘성경’이라는 개념이 가능해질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저자' 개념의 재해석
“누가 성경을 썼는가?”라는 질문은 현대적 ‘저자’ 개념을 전제하기 때문에, 고대의 저작 현실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서기란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작가라기보다, 공동체 안에 전승되던 이야기와 율법, 신앙의 기억을 보존하고 정리하며 편집하는 관리자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은 단일한 목소리의 산물이 아니라, 여러 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개인과 공동체의 경험과 신앙이 겹겹이 축적된 텍스트입니다.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역사적 상황과 신학적 관심이 흔적으로 남아 있고, 바로 이 다성성이 성경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바흐친의 '다성성' 관련 문서 참조)
이 지점에서 리처드 엘리엇 프리드먼의 『누가 성경을 썼는가』가 제시하는 통찰은 결정적입니다. 그는 질문을 “누가 썼는가”에서 “언제, 왜 이 텍스트가 기록되고 편집되었는가”로 전환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 순간, 성경은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와 공동체가 신앙을 해석하고 재구성해 온 역사적·신학적 층위의 집합체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저술 시점에 대한 논의
성경의 저술 시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연대를 맞추는 기술적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의 역사 서술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직결되는 핵심 쟁점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학계에는 크게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존재하며, 각각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전혀 다른 그림을 제시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술 시기 논쟁은 성경 해석의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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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1) 이스라엘 왕정 시대(기원전 8-6세기) 저술
이는 리처드 엘리엇 프리드먼이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주장입니다. 성경의 핵심 전승은 이스라엘 왕정 후기, 특히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본격적으로 기록·편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고대 이스라엘이 문자 문화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사회경제적 토대를 갖춘 때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도시화가 진전되고 관료 체제가 성장했으며 국제 무역이 활성화되자, 기록과 문서의 필요가 급증했습니다. 이에 따라 문해력을 갖춘 전문 서기 계층이 등장했고, 이들이 성경 전통을 기록하고 편집한 주역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주목되는 시기는 히스기야(기원전 715–687년)와 요시야(기원전 640–609년)의 통치기입니다. 두 왕은 강력한 중앙집권 아래 종교 개혁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와 신앙의 정체성을 규정할 공식 문서가 필요해졌습니다. 프리드먼은 바로 이 시기에 성경의 원형이 되는 핵심 텍스트들이 기록되고 집대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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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2) 페르시아 및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4-2세기) 저술
필립 데이비스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성경의 상당 부분이 페르시아 제국기와 헬레니즘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봅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 재건된 유대 공동체가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창작하거나 재구성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다윗과 솔로몬도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 후대의 이상을 투영한 문학적 영웅으로 이해됩니다.
이 해석은 성경의 역사적 신뢰성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만, 급진성 때문에 주류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고 윌리엄 슈니더윈드는 지적합니다. 다만 이 논쟁 자체가 성경 텍스트 형성이 얼마나 복잡한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저술 시기를 단정하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있습니다. 성경은 단번에 완성된 책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적 부침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살아 있는 텍스트라는 사실입니다.
(참고: 저술 시점과 관련한 다양한 견해는 앞서 공유한 문서들을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은 세명의 학자의 주장입니다. 리처드 엘리엇 프리드먼(문서설), 율리우스 벨하우젠(자료비평), 제프리 스텍커트(신-문서설))
매체의 기술적 발전 (두루마리에서 코덱스로)
성경이 하나의 통일된 ‘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데에는 매체의 기술적 발전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초기에는 각 문서가 분리된 두루마리(scroll)로 존재해 개별적으로 읽혔고, 이 단계에서 성경은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문서들의 묶음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1세기경 등장해 4세기에 보편화된 코덱스는 판도를 바꿨습니다. 여러 문서를 한데 묶어 페이지를 넘기며 읽게 한 이 혁신 덕분에, 흩어진 전승을 하나의 물리적 단위로 묶는 일이 가능해졌고 ‘성경 전체’를 한 권으로 읽는 경험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함께 묶고 어떤 순서로 배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며 정경 형성 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 곧, 코덱스는 성경을 하나의 책으로 상상하고 구성할 수 있게 한 물질적·사유적 토대였고, ‘성경’이라는 개념 자체를 가능하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권위의 형성 과정
성경은 처음부터 절대적 권위를 지닌 채 주어진 텍스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읽히고 해석되며, 공동체의 신뢰와 합의를 통해 권위를 획득해 온 텍스트입니다. 그 의미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공동체와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재구성되어 왔습니다.
이 점에서 성경은 닫힌 의미 체계가 아니라, 해석의 역사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어 온 미국 헌법처럼, 성경의 권위 역시 각 시대의 사회적·종교적 필요 속에서 텍스트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구축되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권위는 본문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불변의 속성이라기보다, 해석 공동체가 신뢰하고 수용해 온 역사적 결과에 가깝습니다. 성경은 권위를 ‘소유한 책’이 아니라, 권위를 둘러싼 해석과 실천의 역사 속에서 의미를 계속 얻어 가는 텍스트입니다.
결국 성경의 형성은 단순한 집필의 역사가 아니라, 구술에서 문자로의 전환, 저자 개념의 변화, 매체 기술의 혁신, 그리고 공동체적 합의가 복합적으로 얽힌 하나의 문화사적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핵심 키워드 및 질문
앞서 살펴본 핵심 주장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성경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들을 정리하고, 그에 따라 분석적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작업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런 사유의 과정을 통해 성경을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형성의 역사로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키워드 1: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Q.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전환되는 과정은 성경의 내용과 권위 형성에 어떤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이 질문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과 같은 구술문화에서 지식은 기록된 정보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스승의 목소리와 관계, 상황 속에서 전해지는 가르침 자체가 권위였고, 배움은 언제나 함께 살아내는 기억의 축적이었습니다.
반면 문자는 비교적 새로운 기술이었고, 그 고정성과 비인격성 때문에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긴장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데,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문자가 기억의 훈련을 약화시키고 살아 있는 지혜 대신 그 그림자만 남긴다고 비판합니다. 살아 있는 대화보다 기계적 암기가 앞설 수 있다는 우려였지요.
그럼에도 역사는 달리 전개됩니다. 문자는 구술이 지닐 수 없는 영속성과 전파력으로 점차 새로운 권위의 중심이 됩니다. 메시지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안정적으로 전달되었고, 종교적 가르침과 율법이 문자로 고정되며 텍스트는 해석과 논쟁의 기준점이 됩니다.
바로 여기서 결정적 전환이 일어납니다. 문자가 구술의 권위를 대체하자, 수많은 텍스트 가운데 어떤 문서가 권위를 지니는가를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해졌습니다. 곧 정경(canon)의 개념은 신학적 결단 이전에, 구술에서 문자로 이동한 문화사적 전환 위에서 가능해진 결과라는 점입니다.
키워드 2: 저자성(Authorship)의 문제
Q. “성경의 저자를 논할 때 ‘누가 썼는가’보다 ‘언제 쓰였는가’를 묻는 것이 왜 더 중요한가? 그리고 이러한 질문의 전환은 성경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식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가?”
이 지점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현대적 의미의 ‘저자’ 개념을 고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저자가 독창적 개인을 뜻한다면, 고대 이스라엘에서 성경 전통을 기록한 서기관(소페르)은 창작자가 아니라 전승을 보존·정리·편집하는 매개자에 가까웠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특정 개인의 작품이라기보다, 여러 시대와 공동체의 신앙 경험과 해석이 겹겹이 축적된 복합 텍스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관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표적 작업이 리처드 엘리엇 프리드먼의 『누가 성경을 썼는가』입니다. 그는 질문을 “누가 썼는가”에서 “언제, 왜 기록되고 편집되었는가”로 전환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럴 때 텍스트가 필요했던 역사적 상황과 공동체의 요구가 선명해집니다.
이 전환은 읽기 방식의 변화도 요구합니다. 성경을 단일 저자의 일관된 메시지로 읽기보다, 서로 다른 역사적·신학적 관점이 공존하는 다성적 문헌으로 읽어야 합니다. 반복과 긴장, 비일관성은 오류가 아니라, 오랜 형성 과정의 흔적입니다.
요컨대 저자성을 새롭게 이해하는 일은, 성경을 교리의 집합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산물로 읽는 현대 성서학의 핵심적 전환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성경 읽기는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사유의 장으로 열립니다.
키워드 3: 정경화(Canonization)와 권위
Q. “두루마리에서 코덱스로의 매체 기술적 전환은 어떻게 성경의 개별 문서들을 하나의 ‘책’으로 통합하게 했으며, 그 결과 정경(canon)이라는 절대적 권위 개념의 형성에 어떻게 기여했는가?”
강조하고 싶은 핵심은 분명합니다. 기술은 정보를 담는 그릇에 그치지 않고, ‘무엇이 정보인가’에 대한 이해 자체를 바꾼다는 점입니다. 성경 역사에서 두루마리에서 코덱스로의 전환이 바로 그 결정적 사례입니다.
두루마리 시대에는 문서가 분산되어 읽혔고, ‘성경’은 하나의 책이라기보다 관련 문서들의 느슨한 모음이었습니다. 물리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한 권의 성경’은 성립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1세기 등장해 4세기에 보편화된 코덱스는 판도를 바꿨습니다. 여러 문서를 한 표지 안에 묶어 읽게 하면서, 흩어져 있던 텍스트들이 하나의 ‘책’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 혁신은 곧 질문을 낳았습니다.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배제하며, 어떤 순서로 배열할 것인가. 바로 이 질문들이 정경화의 출발점입니다.
정경은 추상적 신학의 산물이 아니라, 코덱스라는 물질적 가능성 위에서 현실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된 성경은 전례 없는 상징적·종교적 권위를 획득했고, 경쟁 문헌과 구별되는 완결된 계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정경화는 단순한 목록 정리가 아니라, 경계를 설정해 공동체의 신앙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결국 코덱스는 흩어진 텍스트들을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봉인했습니다. 이 물리적 경계는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가르는 신학적 경계와 겹쳐지며, 성경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작동하게 된 것입니다.
[관련자료]
1. How the Bible Became a Book: The Textualization of Ancient Israel, William M. Schniedewind, 2004
2.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윌리엄 슈니더윈드, 에코리브르,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