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은 '누가' 썼을까?

리처드 엘리엇 프리드먼 _ Who Wrote the Bible?

by KEN

이런 주제에 대해 사실 대부분은 큰 관심이 없으시죠. 그쵸?


책을 누가 썼는가 하는 문제는 얼핏 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 보면, 저자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또 그 책이 어떤 시대적·사회적 정황 속에서 쓰였는지를 묻는 순간, ‘저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옵니다. 텍스트의 의미는 종종 바로 그 지점에서 깊이를 얻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대의 주장도 있습니다. 글의 의미는 저자보다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공동체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지요. 예컨대 스탠리 피시는 그의 저서 <Is There a Text in This Class?>에서, "의미는 텍스트 안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 공동체 안에서 형성된다"고 주장했다지요. 이는 성서를 포함한 고대 문헌을 읽을 때, '당시의 독자들이 그 글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중요한 책의 경우에는 저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글이 어떤 상황(context) 속에서 쓰였는지를 아는 일이 텍스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저자와 독자, 텍스트와 공동체는 언제나 긴장 속에서 서로를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고전이 하나 있습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 발전을 ‘도전과 응전’이라는 틀로 설명했지요. 성서의 저작을 둘러싼 논쟁 역시 이 관점으로 바라보면 무척 흥미롭습니다. 도전적인 주장을 제기하는 학자가 있고, 그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이어지며, 다시 그 평가에 대한 응전이 뒤따르는 과정 말입니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책도 바로 그런 지적 긴장 위에 서 있습니다.

이제 그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시지요.



성서의 기원과 형성에 관한 역사비평적 탐구

— 리처드 엘리엇 프리드먼의 <Who Wrote the Bible?>을 중심으로, 그의 핵심 주장과 이를 둘러싼 현대 성서학계의 주요 논쟁들을 심층적으로 살펴봅니다.



들어가며...


성서는 수천 년 동안 서구 문명과 종교적 사유의 토대를 이루어 온 텍스트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모세오경을 모세의 저작으로, 예언서를 각 예언자의 기록으로 이해해 왔지요. 그러나 본문 안에 반복되는 이야기, 시대착오, 문체와 신학의 급격한 변화들은 단일 저자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던져 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책이 바로 Who Wrote the Bible?이며, 저자 Richard Elliott Friedman(리처드 엘리엇 프리드먼)은 지난 2세기 고등 비평의 성과, 특히 문서 가설을 집대성해 성서가 어떻게 편집되고 형성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그의 작업은 성서를 초월적 교리서가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적 갈등과 종교적 논쟁 속에서 빚어진 역사적 산물로 읽게 만듭니다.



1.

문서 가설의 역사적 배경과 방법론적 기초


모세 저작설

성서 비평학은 맹목적인 신앙에서 출발한 학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텍스트 그 자체를 정직하게 읽으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프리드먼은 책의 서두에서 전통적인 모세 저작설이 어떻게 흔들리기 시작했는지를 추적합니다.


이미 11세기 유대 학자 이븐 에즈라는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에 있었더라”(창 12:6)라는 구절이 모세 시대의 시점과 맞지 않음을 암시적으로 지적했습니다. 모세의 시대라면 굳이 덧붙일 이유가 없는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본문이 가나안 사람들이 사라진 뒤, 더 늦은 시점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 문제 제기는 17세기에 이르러 더욱 분명해집니다. 토마스 홉스와 바룩 스피노자, 리처드 시몽은 성서 안의 3인칭 서술("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수기 12:3)), 모세의 죽음을 전하는 기록(신명기 34장), 그리고 동일 사건에 대한 상충된 보도들을 근거로 모세 저작설을 정면에서 비판했습니다.


요컨대, 성서 비평은 믿음을 허무는 작업이 아니라, 텍스트가 스스로 말하게 하는 읽기의 역사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복과 신의 이름

문서 가설이 본격적으로 정립되는 결정적 계기는 18세기에 찾아옵니다. 헤르만 베터, 장 아스트룩, 요한 고트프리트 아이호른—이 세 학자는 서로 교류하지 않은 상태에서, 놀랍게도 동일한 두 가지 단서를 독립적으로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야기의 중복'과 '신의 이름' 사용 사이의 상관관계입니다.


성서를 보면 창조 이야기, 홍수 이야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이야기처럼 동일한 사건이 두 번, 때로는 세 번 반복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반복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전승은 신을 ‘야훼(YHWH)’라 부르고, 다른 전승은 ‘엘로힘(Elohim)’이라 부른다는 일관된 패턴이 확인됩니다. 더 나아가, 야훼를 사용하는 문서는 신을 인간적으로—흙으로 인간을 빚고 동산을 거니시는 모습으로—묘사하는 반면, 엘로힘을 사용하는 문서는 꿈이나 천사를 통해 소통하는 초월적 존재로 그립니다.


이 발견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성서는 단일 저자의 작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승과 신학을 지닌 자료들이 결합된 복합적 텍스트라는 사실입니다. 문서 가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성서 이해의 지형을 바꾸었습니다.


벨하우젠과 고전적 문서설(JEDP)

19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성서학자 율리우스 벨하우젠은 앞선 연구 성과들을 종합해, 성서가 네 가지 주요 문서—곧 J(Yahwist: 야훼문서), E(Elohist: 엘로힘문서), D(Deuteronomist: 신명기문서), P(Priestly: 제사장문서)—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순차적으로 결합된 결과라는 이른바 그라프–벨하우젠 가설을 확립합니다. 그는 이 문서들의 형성 순서를 이스라엘 종교사의 발전 단계, 다시 말해 자연적 신앙에서 율법 중심의 조직 종교로 이행하는 과정에 맞추어 배열했습니다.


프리드먼은 이 기본 틀을 수용하면서도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고고학 발굴의 성과와 고대 근동 언어학의 발전을 적극 반영해, 각 문서의 연대와 저자 집단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수정합니다. 요컨대, 프리드먼의 작업은 벨하우젠의 고전적 도식을 계승하되, 그것을 현대 학문의 지평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든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야훼 기자(J)와 엘로힘 기자(E)


프리드먼 분석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J와 E는 단순히 잘라 붙인 ‘자료’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문서들은 솔로몬 사후 분열된 남유다 왕국북이스라엘 왕국정치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매우 의도적이고 정교한 문학 작품인 것입니다.


두 문서는 동일한 조상 전승을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왕조와 성소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야기를 선택하고, 배열하고, 때로는 변형합니다. 다시 말해, 성서의 내러티브는 신앙 고백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선언이었고, 프리드먼은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드러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J 문서를 보면 그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문서는 신의 이름을 처음부터 ‘야훼’로 사용하며, 프리드먼은 그 작성 시점을 기원전 10세기, 곧 솔로몬 말기나 르호보암 시대의 남유다 왕국으로 봅니다. 다시 말해, J는 남유다의 정치적 현실 속에서 탄생한 텍스트라는 것입니다.


첫째, 유다 지파의 우위 확보입니다. J 문서는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유다를 체계적으로 부각합니다. 요셉을 죽이지 말자고 제안한 인물도(창 37:26),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자고 아버지를 설득한 인물도 유다입니다. 여기에 다말 이야기까지 덧붙여(창 38장), 유다 가문의 혈통적 정통성을 강조하지요. 이는 다윗 왕조가 속한 유다 지파의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려는 명백한 정치적 의도입니다.


둘째, 지리적 편향성입니다. J 문서는 아브라함의 거주지를 남유다의 중심지인 헤브론, 곧 마므레로 설정합니다. 정탐꾼 이야기(민 13장)에서도 관심은 남부 지역에 집중됩니다. 남유다의 땅을 신성한 공간으로 강조하려는 서술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아론에 대한 침묵 혹은 우호적 태도입니다. J 문서에는 아론에 대한 비판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한 사독 계열 제사장들이 자신들을 아론의 후손으로 이해했기 때문으로 설명됩니다. 다시 말해, J 기자는 왕실과 결속된 주류 제사장 집단과 충돌하기보다는, 그들의 이해관계와 조화를 이루는 입장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J 문서는 신앙 문서이면서 동시에, 남유다 왕국의 정치·종교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고도로 계산된 문학 작품임을 보여줍니다.


E 문서를 살펴보겠습니다. E 문서는 모세 이전까지 신의 이름을 ‘엘로힘’으로 부르다가, 모세에게 이르러서야 비로소 ‘야훼’라는 이름이 계시되었다고 말합니다(출 3:15). 프리드먼은 이 문서가 북이스라엘 왕국, 특히 실로(Shiloh) 성소와 연관된 제사장 집단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첫째, 모세의 영웅화와 무시(Mushite) 제사장 그룹입니다. E 문서는 J에 비해 모세의 권능과 역할을 극대화합니다. 프리드먼은 이를 모세의 직계 후손을 자처한 레위계, 곧 무시 제사장 전통과 연결합니다. 솔로몬 시대에 실로 계열의 제사장 아비아달이 축출되고, 예루살렘에서 사독 계열이 제사권을 독점하자, 북쪽으로 밀려난 무시 계열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모세를 높이고 아론을 상대적으로 격하하는 신학을 전개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에브라임 중심주의입니다. E 문서는 북이스라엘의 핵심 지파인 에브라임의 조상 요셉을 강조하고, 에브라임 지파 출신인 여호수아에게 결정적 역할을 부여합니다. 반대로 J 문서에서 두드러졌던 유다의 비중은 축소되거나, 북쪽 지파인 르우벤으로 대체됩니다. 이는 북왕국의 정체성을 반영한 명백한 서술 전략입니다.


셋째, 금송아지 사건의 정치적 알레고리입니다.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이야기는 E 문서에만 등장하며, 프리드먼 분석의 핵심 장면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광야에서의 배교 사건이지만, 실제로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1세가 단과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 신상을 겨냥한 정치적 풍자입니다. 여로보암의 선언과 아론의 대사가 거의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E 기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북왕국의 종교 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금송아지 제작의 책임을 아론에게 돌림으로써 남유다의 아론계 제사장들의 정통성까지 공격하는, 이중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E 문서는 단순한 신앙 기록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정치·종교적 갈등 속에서 탄생한 치밀한 신학적 논증의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텍스트 비교: 세겜의 획득 (창 33장 vs 48장)

J와 E의 차이는 큰 이야기 구조뿐 아니라, 아주 미세한 단어 선택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대표적인 예가 세겜 땅을 얻는 방식에 대한 서술입니다.


J 문서는 야곱이 세겜의 아버지 하몰에게 백 크시타(화폐 단위)를 주고 그 땅을 평화적으로 구매했다고 말합니다(창 33:19). 반면, E 문서로 보는 창세기 48장 22절에서는 야곱이 요셉에게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무력 정복이 강조됩니다.


이 차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세겜이 북이스라엘의 첫 수도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E 문서가 이 지역에 대해 군사적이고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동일한 전승을 두고도 J는 협상과 구매의 기억을, E는 정복과 투쟁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

제사장 문서(P)


전통적인 문서설에서는 P 문서, 곧 제사장 문서를 바빌론 포로기 이후, 기원전 5세기에 쓰인 가장 늦은 자료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런데 프리드먼은 여기서 과감한 문제 제기를 합니다. 그는 언어학적 분석과 역사적 정황, 그리고 고고학적 증거들을 종합해, P 문서가 오히려 히스기야 왕 시대, 곧 기원전 8세기말에서 7세기 초에, 예루살렘의 아론계 제사장 집단에 의해 작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곧, P 문서를 포로기의 산물이 아니라 남유다 왕국 말기의 정치·종교 개혁과 긴밀히 연결된 텍스트로 다시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프리드먼의 P 문서 연대 재구성은 오늘날 성서학계에서 가장 뜨겁고 논쟁적인 쟁점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P 문서의 저작 동기: JE에 대한 대안적 역사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뒤, 북쪽에서 형성된 E 문서는 남유다로 흘러들어와 기존의 J 문서와 결합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JE 문서가 형성되지요.


문제는 내용이었습니다. JE 문서 안에서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든 책임자로 묘사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하고 있던 아론계 제사장들에게 이 전승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한 수정이 아니라, 아예 자신들의 관점에서 새로운 역사 서술에 나섭니다.


그 결과가 바로 P 문서입니다. P 문서는 아론의 권위를 회복하고, 제의 절차를 정교하게 체계화하며, 성전 중심의 신학을 확립하려는 의도 속에서 집필된 제사장들의 ‘자기 역사’였습니다. 다시 말해, P는 신앙 문서이자 동시에, 제사장 집단의 정통성과 권력을 방어하기 위한 신학적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P의 특징

결국 P 문서는 그 신학적·정치적 의도가 매우 노골적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첫째, 아론 중심주의입니다. P 문서는 아론을 모세와 동등하거나 때로는 더 우월한 위치로 끌어올립니다. 출애굽 과정의 기적들도 모세가 아니라 아론이 지팡이를 들어 행한 것으로 재서술되지요. 더 나아가 오직 아론의 후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고, 모세의 후손을 포함한 다른 레위인들은 제사장을 보조하는 하위 집단으로 격하됩니다. 이는 제사권 독점을 정당화하려는 명확한 선언입니다.


둘째, 고라의 반역 이야기와 위계질서입니다. 민수기 16장의 고라 반역 사건은 P 문서의 정치적 메시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레위인 고라가 아론의 제사장직 독점에 항의하자, 땅이 갈라져 그를 삼켜버립니다. 이는 모세 계열 레위인들이 아론 계열에 도전하는 행위 자체를 신성모독으로 규정하고, 영구히 봉쇄하려는 서사 장치입니다. 프리드먼은 이 이야기가 J/E 전승에 있는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곧 모세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도전 이야기와 의도적으로 결합되었음을 밝혀냅니다.


셋째, 성막과 중앙집권화 신학입니다. P 문서는 광야 시대부터 성막이라는 중앙 성소가 존재했고, 모든 제사는 오직 그곳에서만 드려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제의 규정이 아닙니다. 프리드먼은 성막의 구조와 치수가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점, 그리고 그 구조가 고대 근동의 이동식 성소 유물과 유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이 성막 묘사가 제1성전 시대, 특히 히스기야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봅니다. 이는 히스기야의 산당 철폐와 성전 중심 개혁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였다는 것이지요.


결국 P 문서는 제사 규례집이 아니라, 아론계 제사장들이 권위와 질서를 제도적으로 고정하기 위해 쓴 강력한 신학적 선언문이라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언어학적 증거와 저술 시기 문제

프리드먼의 논증이 설득력을 얻는 또 하나의 핵심은 언어학적 증거입니다. 그는 아비 허위츠를 비롯한 언어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하며, P 문서의 히브리어가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 나타나는 후기 히브리어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그 언어는 포로기 초기의 문헌인 에스겔서보다도 앞선, 이른바 고전 히브리어의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P 문서는 포로기 이후에 꾸며낸 후대의 산물이 아니라, 바빌론 유수 이전에 이미 성립된 텍스트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언어학적 분석은 P를 가장 늦은 문서로 보았던 벨하우젠 학파의 전통적 연대 설정을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강력한 반증이 됩니다.


다시 말해, 프리드먼은 신학이나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문법과 어휘라는 가장 기초적인 층위에서 P 문서의 ‘이른 연대’를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신명기사가(D)


마지막으로 D 문서를 보겠습니다. 신명기와 여호수아부터 열왕기하에 이르는 이 문서는 기원전 622년,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D 문서는 개혁의 신학적 매뉴얼이자 역사 해석의 틀을 제공한 텍스트입니다.


프리드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D 문서의 저자가 예언자 예레미야와 그의 서기관 바룩, 혹은 최소한 그들이 속한 학파였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합니다. D 문서 전반에 흐르는 언약 사상, 예루살렘 중심주의, 그리고 불순종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라는 관점이 예레미야 전통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D 문서는 익명의 편집 산물이 아니라, 요시야 개혁이라는 역사적 순간 속에서 예언자적 신학이 집약된, 매우 구체적인 사상적 프로젝트였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결론입니다.


요시야의 개혁과 율법책의 발견

성서는 요시야 왕 시대에 성전 수리를 하던 중 ‘율법책’이 발견되었고, 바로 그것을 계기로 대대적인 종교 개혁이 단행되었다고 전합니다(열왕기하 22장). 오늘날 학계는 이 율법책을 신명기의 초기 형태(Dtr1)로 이해합니다.


이 문서는 단순한 종교 문헌이 아니었습니다. D 문서는 예배의 장소를 오직 예루살렘으로 한정하는 중앙 성소 단일화를 법으로 확정함으로써, 요시야의 개혁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다시 말해, 발견된 ‘율법책’은 개혁의 계기가 아니라, 개혁을 가능하게 한 사상적 설계도였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예레미야 저작설의 근거

프리드먼이 D 문서의 저자를 예레미야 전통과 연결하는 데에는 분명한 근거들이 있습니다.


첫째, 언어적·신학적 유사성입니다. 신명기와 예레미야서는 어휘와 문체, 핵심 신학 주제에서 놀라울 만큼 겹칩니다. “마음의 할례”(신명기 10:16; 30:6 — 예레미야 9:26), "철(쇠) 풀무"(신 4:20; 왕상 8:51 — 렘 11:4),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와 같은 독특한 표현들은 사실상 이 두 문서에서만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우연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둘째, 실로 전승과의 연결입니다. 예레미야는 아나돗 출신 제사장 가문에 속합니다. 아나돗은 솔로몬에 의해 추방된 실로의 제사장 아비아달이 유배된 곳이지요. 이로써 예레미야는 실로 전통, 곧 무시 계열과 연결되며, 모세를 강조하고 ‘레위 제사장’이라는 표현으로 아론계의 독점을 견제하는 신명기의 입장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셋째, 역사 서술의 연속성입니다. 신명기 역사서의 마지막 장면—예루살렘의 멸망과 여호야긴의 사면—은 예레미야의 생애 말기와 정확히 겹칩니다. 프리드먼은 예레미야가 요시야 시대에 초판, 곧 Dtr1을 집필하고, 멸망 이후 그 내용을 보완해 개정판 Dtr2를 완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하면, D 문서는 추상적인 편집 전통이 아니라, 예레미야와 그의 학파가 주도한 매우 구체적인 역사·신학적 프로젝트였다는 점이 분명하다는 설명입니다.



6.

에스라와 텍스트의 최종 완성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 공동체는 결코 하나의 목소리를 가진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J, E, P, D라는 서로 다른 전통과 신학을 지닌 집단들의 느슨한 연합체였습니다.


프리드먼은 바로 이 분열된 전승들을 하나의 경전, 곧 ‘토라’로 엮어낸 최종 편집자(Redactor), 즉 R의 정체를 에스라(Ezra)로 지목합니다. 에스라는 특정 전통을 지워버리기보다, 상충하는 목소리들을 병치하고 공존하게 함으로써, 갈라진 공동체를 하나의 경전 아래 묶어내려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토라는 완벽하게 정리된 단일한 신학 체계가 아니라, 상처 입은 공동체를 통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긴장’을 남겨둔 문서였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모순의 보존과 교차 편집

프리드먼이 강조하는 결정적 장면은 바로 에스라의 선택입니다. 에스라는 아론계 제사장, 곧 P 전통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 관계에 있던 J·E·D 문서를 폐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것들을 P와 결합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는 특정 집단의 승리가 아니라, 분열된 공동체를 하나로 묶기 위한 정치적·신학적 ‘위대한 타협’이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홍수 이야기의 재구성입니다. 창세기 6–9장에서 J와 P는 문장 단위로 교차 편집됩니다. J는 비가 40일 내렸다고 말하고, P는 물이 150일 동안 불어났다고 합니다. J는 정결한 짐승을 7쌍 태우라 하고, P는 암수 한 쌍씩 태우라 하지요. 편집자는 이 모순을 해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대로 병치합니다. 프리드먼은 이 섞인 본문을 다시 분리하면, 각각 완결성을 지닌 두 개의 독립적인 홍수 이야기가 온전히 복원됨을 보여줍니다.


이 편집의 결과는 신학적 다원성입니다. 자비로운 신과 엄격한 신, 예언자적 영성과 제사장적 의식이 하나의 성서 안에 공존하게 됩니다. 바로 이 긴장 덕분에, 성서는 후대 유대교와 기독교가 서로 다른 역사적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해석의 풍요로움을 지닌 경전이 될 수 있었습니다.



7.

프리드먼의 비교 분석표 (종합)및 비교


다음은 프리드먼의 분석에 기반하여 각 문서의 특징과 주요 쟁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표입니다.


Table 1: 4대 문서(J, E, P, D)의 상세 비교


Table 2: 금송아지 사건(출 32장)에 나타난 문서별 정치적 입장



8.

비평적 읽기


평가와 논쟁

프리드먼의 저서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동시에, 성서학계 한가운데로 논쟁을 끌어들였습니다. 그의 이론은 고전적 문서설을 기본 틀로 삼되, 그것을 현대 학문 성과로 보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학계는 하나의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프리드먼의 작업을 지지하는 흐름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길을 모색하는 연구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서 가설을 둘러싼 논쟁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살아 있는 학문적 대화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신(新) 문서설(Neo-Documentarian)의 비판 — 조엘 베이든

예일대학교의 조엘 베이든은 오늘날 문서설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다만 그는 프리드먼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으며 비판합니다.


첫째, 역사적 특정화의 위험성입니다. 베이든은 P 문서를 히스기야 시대로, D 문서를 예레미야로 특정하는 시도가 지나치게 추측에 의존한다고 봅니다. 텍스트 분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문서들 사이의 상대적 순서와 문학적 관계까지이지, 저자의 실명이나 정확한 연대까지 확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P 문서의 독립성입니다. 프리드먼이 P를 JE에 대한 ‘대안 텍스트’로 이해하는 데 반해, 베이든은 P가 JE를 알지 못한 채 독립적으로 작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베이든에게 P는 기존 전승을 수정한 문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전통을 담은 별개의 자료라는 것입니다.


셋째, 편집의 기계성입니다. 베이든은 최종 편집자가 프리드먼이 말하는 것처럼 고도의 문학적·신학적 의도를 가지고 텍스트를 엮었다기보다, 권위 있는 전승들을 가능한 한 보존하려는 과정에서 기계적으로 결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따라서 성서 안의 모순은 편집자의 예술성이 아니라, 편집이라는 작업 자체가 낳은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지요.


요컨대, 베이든은 문서설의 틀은 지키되, 그 위에 과도한 역사적 상상력을 덧씌우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 학계의 수정주의 — 보충 가설과 후기 연대설

유럽, 특히 독일과 스위스 학계의 흐름은 프리드먼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롤프 렌토르프, 콘라트 슈미트로 대표되는 이 전통은, 문서 가설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합니다.


첫째, J와 E의 존재에 대한 부정입니다. 이들은 솔로몬 시대에 J와 같은 거대한 역사서가 이미 존재했다는 증거가 매우 약하다고 봅니다. 대신, 짧은 전승 단위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덧붙여지고 수정되는 과정을 통해 본문이 성장했다고 이해하며, 이른바 보충 가설을 선호합니다.


둘째, P 문서의 후기설 고수입니다. 프리드먼이 언어학적 근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유럽 학자들은 여전히 P 문서를 페르시아 제국 시대, 곧 기원전 5–4세기의 산물로 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P의 제의 율법과 신학이 포로기 이전 예언서들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 이른바 ‘침묵의 논증’이 여전히 강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유럽 학계는 성서를 처음부터 짜인 네 개의 문서로 보기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덧붙여지고 재구성된 텍스트로 이해하려 하며, 이 점에서 프리드먼의 고전적 문서설 복원 시도와 분명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프리드먼의 재반박

모든 학자가 프리드먼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윌리엄 프로프와 같은 학자들은 오히려 그의 언어학적 분석

을 강하게 지지합니다. 특히 포로기 이후 히브리어(LBH)와 포로기 이전 히브리어(SBH)가 문법과 어휘에서 분명히 구분된다는 점, 그리고 P 문서가 후기 히브리어의 특징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P의 조기 연대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하드 데이터’로 평가됩니다.


프리드먼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후속 저작 <The Bible with Sources Revealed>에서 그는 히브리어 원문을 문서별로 색깔을 달리해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가설이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텍스트 자체에 근거한 분석임을 독자 눈앞에 직접 보여줍니다.


요컨대, 프리드먼의 작업은 논쟁적이지만, 언어라는 가장 단단한 증거 위에서 문서설을 다시 세우려는 진지한 학문적 시도였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 볼까요?


<Who Wrote the Bible?>에서 리처드 엘리엇 프리드먼은 성서를 박제된 교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역사적 문서로 되살려 놓았습니다. 그의 연구는 성서가 단일한 신의 받아쓰기가 아니라, 왕권과 신권, 남과 북, 아론과 모세, 제사장과 예언자 사이의 치열한 권력 투쟁과 타협의 산물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깊은 통찰은 분명합니다. 성서의 위대함은 ‘완벽한 일관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정경 안에 담아낸 포용성에 있습니다. 최종 편집자는 모순을 제거해 매끈한 텍스트를 만드는 대신, 거칠고 충돌하지만 진실한 신앙 고백들을 그대로 보존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물론 프리드먼의 가설은 연대와 저자 식별에서 논쟁의 여지를 남깁니다. 그러나 성서를 읽는 방식 자체를 돌이킬 수 없게 바꿨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야훼 기자의 서사 감각, 에스라의 편집 기술, 그리고 그 이면을 흐르는 정치적 욕망과 신앙적 열정을 동시에 읽어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성서를 ‘신의 말씀’이자 동시에 철저히 ‘인간의 책’으로 이해하게 만든, 현대 성서학의 중요한 성취인 것입니다.



참고서적

<Who Wrote the Bible?>, Richard Elliott Friedman, 1987 초판, 2019 개정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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