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대한 '바른' 이해

마이클 램지의 『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의 내용을 중심으로...

by KEN

Intro...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마이클 램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오늘의 한국 사회 안에서 사회적 신뢰를 크게 잃어버린 개신교의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볼 때, 신앙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교회 안의 신자일 뿐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어떤 신앙의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월 23일, 비아출판사에서 ‘시선들 시리즈’의 한 권으로 『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램지는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낸 인물로, 그의 영성 저작들 가운데서도 이 책은 특별히 ‘기도의 본질’을 깊이 성찰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미권에서는 전통적 신앙과 현대 영성을 균형 있게 연결해 낸 명저로 오랫동안 읽혀 온 책인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제기하는 기도의 본질을 통해 신앙을 다시 성찰해 보고 싶었습니다. 신앙은 단지 교회 안에 머무는 언어나 교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방향과 태도로 드러나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왜곡하지 않고 바로 알고, 그 부르심에 옳게 응답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다시 붙들어야 할 올바른 신앙의 자리일 것입니다.


올곧은 신앙인으로 바로 서기를 소망하며, 이 책을 조심스럽게 펼쳐 봅니다.



마이클 램지의 《Be Still and Know》 (역서: 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


0.


20세기 성공회 신학의 거장이자 제100대 캔터베리 대주교를 역임한 마이클 램지(Arthur Michael Ramsey, 1904–1988)는 그의 생애와 저작 전반을 통해 ‘신학’과 ‘기도’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적 실체임을 끊임없이 증언해 온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1982년 저작 ⟪Be Still and Know: A Study in the Life of Prayer⟫는 말년에 집필된 책으로, 평생을 학문적 엄밀함과 목회적 헌신 사이에서 균형 있게 살아온 한 노학자가 기도의 본질에 대해 남긴 영적 유언과도 같은 텍스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출간된 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책은 영미권 기독교 영성 문헌에서 이른바 ‘카울리 클래식(Cowley Classic, 영국 옥스퍼드 근처 Cowley 지역의 성공회 수도공동체와 연관된 영성·신학 고전 시리즈를 가리킴)’으로 분류되며, 지속적인 영향력을 지닌 작품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번 논의의 관점은 저자가 제시하는 기도의 신학적 구조를 살펴보고, 그가 말하는 ‘거룩한 시간 낭비’라는 개념이 성과주의와 효율성에 깊이 잠식된 현대 기독교 영성에 어떤 예언자적 도전을 던지는지를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목표는 그렇습니다.


램지의 저작들은 대체로 치밀한 교부 신학적 토대와 성공회의 중도 전통, 곧 Via Media(중간의 길,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극단을 피하고 초대교회의 신앙과 전통을 계승하는 신학적·실천적 입장) 위에 서 있지만, 이 책은 그중에서도 사도적 단순성(복잡한 교리 체계나 제도적 형식주의를 초월해 그리스도 중심의 순수한 신앙과 사역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평가되더군요. 책은 기도를 잘 수행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기술서가 아니라, 기도가 인간 존재의 방식 그 자체임을 드러내는 존재론적 탐구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이클 램지는 1961년부터 1974년까지 영국 성공회의 최고 지도자인 캔터베리 대주교로 봉직하며, 교회와 사회가 크게 흔들리던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이미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쓴 《복음과 가톨릭 교회》(1936)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변모》(1949) 같은 책들을 통해, 깊이 있는 신학자라는 평가를 확고히 받아 왔던 모양입니다.


램지의 신학에서 눈에 띄는 점은, 서방 교회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방 정교회의 영성, 특히 신비적인 신앙 전통을 깊이 받아들였다는 점인 듯합니다. 이를 통해 그는 법과 규칙, 구원 개념에 치우치기 쉬운 서방 기독교의 사고를 보다 풍성하게 보완하고자 했다고 전해집니다. 램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변모 사건을 신학의 중심에 두었는데, 이를 통해 기도를 단순히 “무언가를 달라고 요청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그 빛을 삶으로 드러내는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하도록 안내합니다.


대주교직에서 물러난 이후, 램지는 더럼과 옥스퍼드 등지에서 조용히 지내며 교회 정치의 복잡한 현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사유와 기도에 집중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의 책 『Be Still and Know』는 이러한 평생의 여정이 결국 ‘기도’라는 가장 개인적이고 깊은 신앙 행위로 모아진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1982년에 출간된 이 책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NIV)라는 시편 46편 10절의 말씀을 제목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램지가 말년에 이르러 도달한 신앙의 깊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특히 인상적으로 알려진 점은, 그처럼 바쁜 대주교직을 수행하던 가운데서도 램지가 매일 아침 기도의 시간을 지켰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58분 동안은 잡념과 싸우고, 겨우 2분 정도만 진정한 기도를 드린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는데, 이 말은 기도가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의 자리라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주는 증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기도란 단독으로 수행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도란 인간과 창조주 사이에 일어나는 폭넓은 상호 교류를 드러내는 하나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양심의 감동을 통해, 영감 받은 이들의 삶과 글을 통해,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게 자신을 알려 주신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말씀하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인류는 감사드리고,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합니다. 경외하고 경탄합니다. 깊이 슬퍼하고 크게 뉘우칩니다. 섬김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을 추구합니다. 이 모든 응답이 우리 마음과 정신과 의지가 하느님을 향해 움직이는 과정입니다. 때로 이 움직임을 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성서 저자들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전체를 말하고 듣는 모습으로 묘사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시는 음성에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듯 말로 하는 대화는 언어와 침묵, 기다림과 행동을 아우르는 관계 속 작은 단편일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기도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_『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 13-14쪽, 비아.



1.

성서적 기초 - 기도의 원형


램지는 기도를 정의하기에 앞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그가 강조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기도란 인간이 애써 하나님께 도달하려는 노력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해 내려는 일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관계에 참여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기도를 살피면서,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함께 가야 하는 두 가지 기도의 축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만큼의 깊은 친밀함이고, 다른 하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 준 철저한 순종입니다.


먼저 ‘아빠(Abba)’라는 호칭입니다(마가 14:36). 예수가 하나님을 이렇게 불렀다는 사실은 당시 종교적 관습을 생각하면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램지는 여기서 기도의 출발점을 읽어 냅니다. 기도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간이 신 앞에 엎드려 호소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녀가 아버지 앞에서 신뢰 속에 나누는 대화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첫걸음은 공포가 아니라 친밀함이며, 거리감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가복음 14:36]
"Abba, Father," he said, "everything is possible for you. Take this cup from me. Yet not what I will, but what you will." [Mk 14:36, NIV]


그러나 램지는 이 친밀함이 결코 가볍거나 감상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절정이 바로 겟세마네의 기도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 14:36) 이 기도는 예수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자기 포기, Kenosis, 비움) 순간을 보여 줍니다. 램지에게 기도란 자신의 소망을 관철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조율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통해, 기도가 단지 말로 드리는 행위가 아니라 삶 전체를 내어 드리는 행위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꼭 램지의 글을 통한 확인 이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기도의 방법을 알려주신 바 있습니다.

아래 마태복음 6장 5절~8절의 내용을 참고해 보시지요.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비판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 비판은 너무나도 명료합니다. ①장황하게 기도하지 마라, ②남에게 보이려는 듯 기도하지 마라, 더불어 ③은밀한 장소에서 은밀히 기도하라는 가르치심 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숨어서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 _ 마태 6:5-8, 새번역


이 성경의 말씀을 바탕으로 램지 또한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시의 기도 관행을 두 가지 측면에서 엄중히 비판하십니다(마태 65-8), 하나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기도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입니다. 다른 하나는 남에게 주목받고 칭찬받으려고 공개적으로 과시하듯 기도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들에 반해 예수께서는 기도를 각자의 집 처럼 은밀한 공간에서 드려야 한다고 역설하십니다. 이어지는 설교에서는 확신을 가지고 끈기 있게 기도하라고 가르치 십니다. _『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 50쪽, 비아.


이어 램지는 바울 서신과 초대 교회의 기도를 살피며, 오늘날 우리의 기도와 무엇이 다른지를 비교합니다. 현대인의 기도가 흔히 무엇을 달라는 요청(간구)이나 문제 해결에 집중되어 있다면, 사도들의 기도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감사와 찬양,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을 떠올려 보시면, 대부분이 감사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램지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상황이 바뀌기를 요구하기에 앞서,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보고 응답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기도의 문을 여는 열쇠이며, 기도하는 사람의 시선을 자신의 부족함에서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돌려놓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주제는 영광입니다. 램지는 에베소서나 골로새서에 나타난 기도들을 통해,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행위임을 강조합니다. “주의 영광을 보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라는 고린도후서 3:18의 표현처럼, 기도는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얻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 자신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기도는 단순히 ‘(윤리적 차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도덕적 질문을 넘어서, ‘(존재론적 차원) 어떤 존재로 변화되어 가는가’라는 더 깊은 차원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램지에게 기도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의 삶 전체가 조금씩 변모되어 가는 길이었습니다.



2.

신학과 실제로서의 기도


아울러 저자는 앞서에서와 같이 성서적 기초 위에 신학적 성찰과 실천적 지침을 쌓아 올립니다. 여기서 램지 특유의 통찰인 "하나님과 함께 시간 낭비하기"와 "지적 성실성"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기도란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만큼이나 친구가 되어 주시는 분을 의식하며, 잠시 시간을 내 그분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잠시나마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 이는 기도를 다루는 책들이 말하는 모든 요소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경이로워하며 하느님과 함께 있다면 그것이 곧 경배입니다. 기꺼워하며 하느님과 함께 있다면 그것이 곧 감사입니다. 부끄러워하고 회한을 느끼며 하느님과 함께 있다면 그것이 곧 참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하느님과 함께 있다면 그것이 곧 중보입니다. 기도의 비밀은 결국 하나, 하느님과 함께 있기를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_『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 130-131쪽, 비아.


마이클 램지의 기도론 가운데 가장 자주 언급되고, 많은 이들의 마음을 붙드는 표현으로 전해지는 개념입니다.

기도란 곧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낭비하는 것(거룩한 낭비)이라는 표현입니다.

참고)<The Christian Priest Today>(1987) 에서 언급되는 '거룩한 낭비' 개념 세 가지.
- 기도: 아무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하나님 곁에 머무는 시간.
- 예배: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목적으로 드리는 행위.
- 삶의 태도: 자신의 삶을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쏟아붓는 헌신.


이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고 늘 배우며 살아왔던 기존의 관념 때문이었죠. 시간은 곧 돈이고, 무엇인가 유익한 결과를 내야만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회에서 살아왔던 겁니다. 그러나 램지는 바로 이 생각과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기도마저도 효율과 성과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 표현을 통해, 기도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그 시간의 쓸모를 따지지 않듯이,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계산 없이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야말로 관계를 깊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가 자주 인용하는 시편 구절,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단순히 몸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고 언급합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고, 증명하고, 인정받으려 애쓰는 내면의 분주함을 내려놓으라는 초대인 것입니다.


램지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내려 애쓸 때보다,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더 깊이 일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시간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인 겁니다. 우리는 행위로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순간인 것이죠.


기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생산자나 소비자로만 규정하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다시 서게 됩니다.(고후 3:18) 이것은 안식일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멈춤을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끊임없는 경쟁과 소외 속에서 잃어버린 중심을 되찾는 영적인 저항인 셈입니다.


램지가 말하는 침묵의 기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깊은 변화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 갑니다.


저자가 이해한 중보기도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방식과는 조금 다릅니다. 중보기도를 단순히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대신 요청하는 기도”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램지는 중보기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중보기도란, 하나님의 면전에서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마음속에 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를 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묵상합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묵상하고 예배 행위에서 흘러나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중략) 중보기도는 이 사람이나 저 사람에 대해 하나님께 몇 마디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마음속에 품는 것을 의미합니다. _『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131-135쪽 중에서


이 말은 중보기도가 말의 양이나 요청의 구체성에 달려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서서, 그 사람을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바라보는 일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중보자는 자신의 동정심이나 선의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중보기도란, 이미 그 사람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참여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의 출발점은 문제를 나열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그 사람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는지를 묵상하는 예배의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는 하느님께 요청을 퍼붓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베푸시는 자비의 물줄기에 우리의 바람을 띄우는 일이 됩니다. _『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132쪽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바라볼 때, 우리의 기도는 점점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지 않게 됩니다. 중보기도 역시 “내가 무엇을 바라는가”를 앞세우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은 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시는가”에 귀 기울이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는 꼭 이 사람 저 사람을 두고 하느님께 말을 늘어놓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마음에 담아 둔 채 하느님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_『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135쪽


또 하나 램지가 강조한 점은, 기도가 결코 개인적인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홀로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는 거대한 연결망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개인의 마음을 넘어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에 접속하는 통로가 됩니다.


램지는 이 점을 기독교 전통에서 말하는 ‘성도의 교제’라는 개념과 연결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고립된 독백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 모든 성도들과 함께 드려지는 하나의 찬양이며 응답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작은 기도 하나도, 이미 하나님 앞에서 이어지고 있는 우주적인 사랑의 합창 속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중보기도는 누군가를 대신해 애쓰는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는 은혜의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램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중보기도가 신앙을 더 넓고 깊게 확장시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앞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지금껏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기도론과 램지의 관점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램지의 관점이 언제나 유일한 정답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관을 세워 가는 과정에서, 그의 사유는 적어도 한 번쯤 깊이 곱씹어 볼 가치가 있는 제안임에는 동의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의 기도 습관을 조용히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그저 무엇인가를 달라고 조르는 기도, 마치 하나님이 아주 멀리 계신 분인 것처럼 큰 소리로 외치는 기도, 혹은 수많은 미사여구와 장황한 설명으로 상황을 나열해야만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태도 말입니다. 더 나아가, 오랜 시간과 많은 정성을 들여야만 하나님이 비로소 귀를 기울이신다는 생각 역시, 과연 온전히 옳은 믿음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램지가 남긴 한 고백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58분 동안은 잡념과 싸우고, 겨우 2분 정도만 진정한 기도를 드린다”는 그의 말은, 기도가 양이나 형식으로 평가되는 행위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어쩌면 기도란 잘 해내는 일이 아니라,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연습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점에서, 램지의 사유는 오늘 우리의 신앙을 차분히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4.


램지의 책은 분명 하나님의 ‘현존’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매우 정직하게, 그 현존이 언제나 우리의 감각이나 감정으로 뚜렷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기도하다 보면 마음이 메마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는 숨기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램지는, 기도를 뜨거운 감정이나 특별한 체험으로 판단하려는 현대의 경향과 일정한 거리를 둡니다. 대신 그는 기도를 하나의 의지적 방향성으로 이해합니다. 기도가 잘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기도하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가 이미 기도다”(desire to pray is prayer)라는 그의 말은 많은 신자들에게 깊은 위로가 됩니다. 감정이 사라진 것 같아도,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도의 자리라는 뜻입니다.


램지가 말하는 ‘침묵’과 ‘가만히 있음’은 요즘 유행하는 마음챙김이나 명상과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겉모습만 놓고 보면 조용히 앉아 숨을 고르고 생각을 멈춘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램지는 이 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인 마음챙김이 주로 마음의 안정이나 집중력 향상처럼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효과를 목표로 한다면, 램지의 침묵은 철저히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그의 침묵은 나를 비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비워진 그 자리를 하나님으로 채우기 위한 준비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내가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데' 있다는 점을 그는 분명히 합니다.


저자는 또 하나, 관상기도에 대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간구에 앞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에 대한 묵상으로 이끌립니다. 이 묵상에 더 많은 공간을 내어줄수록 기도는 점점 더 말하기'뿐 아니라 '듣기'를 품게 되고, 혼잣말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대화가 되어 갑니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묵상의 힘이 가장 깊이 드러나는 순간, 하느님을 바라보고 마음이 고요해지며 함께하시 는 그분을 깊이 느끼는 순간은 말 없는 침묵의 순간입니다. (중략)
그러나 쉼 없이 이어지는 일들과 그 일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은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떨어뜨리지요. 그래서 침묵의 역할이 극히 중요합니다. (중략)
침묵을 통해 기도는 말하는 일이기에 앞서 듣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침묵은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합니다. _『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147-149쪽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외치는 기도에만 열심인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골방에서, 깊은 침묵속에서의 묵상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을 새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램지의 기도론은 분명 성공회 전통, 특히 전례와 성사를 중시하는 흐름 위에 서 있습니다. 개인의 기도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예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그의 특징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체험 위주의 신앙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균형을 제공할 수 있지만, 형식적인 예배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램지는 동방 정교회의 신비적 전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서방 기독교가 놓치기 쉬운 깊이를 보완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의 책은 특정 교파를 넘어, 다양한 신앙 배경을 가진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평자들은 램지의 글을 ‘사도적 단순성’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는 복잡한 신학 용어를 남발하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간결하게 짚어냅니다. 이는 그가 학자이기 이전에 설교자였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물론 어떤 독자들에게는 이 단순함이 “너무 기본적인 이야기 같다”거나 “구체적인 방법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기도의 다양한 유형을 정리하거나, 실천 방법을 단계별로 안내하는 책을 기대한 독자라면 램지의 책이 다소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점이 바로 이 책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램지의 책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알려 주는 설명서가 아니라, 왜 기도하는가, 그리고 기도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책입니다. 기술보다 방향을, 방법보다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의미 있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램지의 기도론은 즉각적인 해답을 주기보다, 신앙의 방향을 다시 세우도록 돕는 조용한 동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리해 보면...

저자는 '기도의 본질로의 회귀'를 주문


마이클 램지의 『Be Still and Know』는, 기도를 잘하는 방법이 넘쳐나는 시대 한가운데서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기도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책은 기도를 더 효과적인 도구로 만들려는 문화에 조용히 맞서며, 하나님 앞에 그저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저자는 기도를 어떤 기술이나 성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에 대해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고, 다만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분을 아는 것이 곧 기도이다.”

이 말은 기도를 잘 해내려 애쓰느라 지친 이들에게, 방향을 바꾸라는 초대처럼 들립니다.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겠습니다.


첫째, 기도의 비공리성을 회복하라는 요청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낭비하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아무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아 보이는 그 시간이야말로, 효율과 생산성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 문화에 대한 거룩한 저항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분리되지 않은 통합적 신앙입니다. 램지는 지성과 감성, 개인과 공동체, 묵상과 삶을 떼어 놓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기도는 쉽게 맹목으로 흐를 수 있고, 기도하지 않는 신학은 메마른 지식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분명히 짚어 줍니다. 신앙은 머리와 마음, 삶이 함께 움직일 때 살아난다는 메시지입니다.


셋째, 변화의 목표를 다시 묻는 시선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 자신이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상황을 바꾸기보다 먼저 사람을 바꾸는 길입니다.


이 책은 정보를 얻기 위해 빠르게 읽을 책이 아니라는 점을 느낍니다. 램지의 조언처럼, 이 책 자체가 기도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한 장, 한 문장을 천천히 읽고 곱씹으며, 그 문장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도로 이어지도록 읽는 것이 어울립니다.


성과와 결과에 지친 신앙인에게, 지적 의문과 영적 갈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신학도에게, 그리고 기도가 습관처럼 굳어 버린 목회자에게 이 책은 맑은 샘물 같은 통찰을 건넵니다. 마이클 램지는 20세기를 살다 갔지만, 그의 메시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말을 겁니다.
“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하나님을 알라.”고 말입니다.


"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라는 제목은 이 책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바를 담고 있습니다. 고요함과 침묵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이를 소홀히 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망가집니다. 그러한 면에서 관상(contemplation)이 어떤 방식으로든 회복되는 조짐이 보인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관상이란 결국 하느님의 사랑에 자신을 여는 일이며, 그 사랑이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깨닫고 있습니다. - 마이클 램지 _『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 9-10쪽, 비아,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세상은 쉬는 방법, 보는 방법, 사랑하는 방법, 찬미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활동에 휩쓸리며, 멈추어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멈추어 쉬지도, 깊이 생각하지도 않으면 보는 능력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는 능력, 더 넓은 관점으로 보는 능력, 집단이나 국가나 인종이라는 경계 너머를 보는 능력, 하느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진정한 모습 그대로 인간 존재를 보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흐릿하게 보게 되는 곳에서는 사랑도 희미해집니다. 찬미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우리는 먼저 본 다음 사랑하고 나서야 찬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존재의 목적이자, 쉼과 봄과 사랑의 원천인 창조주를 더 이상 찬미하지 않게 됩니다. _『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 221쪽, 비아

관련서적 및 자료

1. 『Be Still and Know』, Michael Ramsey, 2012, Wipf & Stock Publishers

2. 『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 마이클 램지, 2025, 비아

3. 『ARTHUR MICHAEL RAMSEY: LIFE AND TIMES』, Dr. John Macquarrie, 1989, All Saints Church New York City (The Levy Memorial Le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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