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제2 종교개혁'을 위한 제언 시리즈
오늘부터 몇 회에 걸쳐, '기독교 신앙'에 대해 다소 급진적인 생각들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물론 일부 내용은 아직 신학적으로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 한국과 미국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른바 ‘기독교 현상’을 성찰하고, 그 개혁의 단초를 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사유의 편린들을 정리한 것이라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첫 번째로, 성경에 수록된 말씀, 곧 ‘텍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 구술 전통, 정경화, 그리고 지속적 재해석과 재서술화를 거쳐온 성서에 대한 소고
0.
성서 — 완결된 책인가, 오늘도 진행 중인 대화인가
기독교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성서는 오랫동안 ‘완성된 계시’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정경canon이 확정된 이후에는, 성서의 형태와 의미가 마치 영구적으로 고정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도 강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급격히 발전한 성서 형성사, 구술 전통 연구, 그리고 편집 비평의 성과들은 이러한 전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성서는 단번에 하늘에서 내려온 책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구술 전통과 문서 전통의 복잡한 상호작용, 그리고 공동체의 해석과 재해석, 편집과 증보가 축적되면서 형성된 살아있는 텍스트라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글에서는 이러한 성서 형성의 역동적 과정을 성서학적으로 재구성해 보고, 그 위에서 오늘날 기독교 신앙인이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학적 함의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성서 자체가 형성 과정에서 시대와 공동체의 구체적 상황에 반응하며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어 왔다면, 오늘의 성서 읽기 또한 그러한 해석학적 역동성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1.
구술 문화에서 문자 텍스트로 — 성서 형성의 첫 번째 단계
성서 텍스트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고대 근동의 구술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발터 옹이 『구술성과 문자성Orality and Literacy』(1982)에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듯이, 문자 문화 이전의 사회에서는 지식과 전통이 주로 말을 통해 전승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술 전통은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청중과 상황에 따라 매번 새롭게 수행되는 매우 역동적인 과정이었습니다.
구약성서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부분의 내러티브는 문서로 기록되기 이전에 이미 수세기에 걸친 구술 전통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족장 이야기(창세기 12–50장), 출애굽 전승, 사사기의 영웅 서사 등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예배와 절기, 그리고 교육의 맥락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되었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신앙과 역사적 경험에 맞게 끊임없이 재형성되어 왔습니다. 헤르만 궁켈의 양식 비평은 바로 이러한 구술 전통의 흔적을 문서 텍스트 안에서 찾아내려는 시도였으며, 이를 통해 성서 텍스트가 얼마나 다양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구술 단계에서 전통은 결코 고정된 형태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전통의 전달자들(전승자)은 핵심 이야기의 의미와 정신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공동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와 형식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창조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결국 전통의 보존과 창조적 재적용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인 행위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 형성의 첫 번째 해석학적 원리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2.
텍스트화와 편집의 과정 — 살아있는 문서로서의 성서
구술 전통이 점차 문자 텍스트로 고정되기 시작했을 때, 이 과정은 단순한 받아쓰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문서화 자체가 이미 하나의 해석 행위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텍스트가 일단 기록된 이후에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은 문서가설로 대표되는 오경 연구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율리우스 벨하우젠이 체계화한 JEDP 이론은, 오경이 서로 다른 시대와 공동체의 신학적 관심을 반영하는 여러 자료층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야훼 자료(J)와 엘로힘 자료(E)가 각각 남북 왕국의 전통을 반영하고, 신명기 자료(D)가 요시야 종교개혁의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제사장 자료(P)가 포로기의 경험 속에서 재구성되었다는 분석은, 오경이 단일 저자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공동체적 해석의 산물임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자료들이 단순히 병렬적으로 수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각 시대의 편집자들은 이 전통들을 의도적으로 재배열하고 통합했습니다. 마틴 노트와 게르하르트 폰 라트의 연구를 통해 발전한 편집 비평은, 이 편집자들이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라 자신의 신학적 관점에서 전통을 재해석한 신학자였음을 밝혀 주었습니다.
특히 신명기 역사서(여호수아–열왕기하)가 신명기의 언약 신학이라는 관점 아래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재구성한 거대한 편집 작업의 산물이라는 점은, 성서 자체가 이미 “이전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라는 해석학적 층위를 내재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역동성은 신약성서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됩니다. 공관복음서에 대한 비교 연구는, 마가복음이 하나의 원자료로 작용하여 마태와 누가에 의해 각기 다른 공동체의 상황에 맞게 재편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마태는 유대 기독교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예수를 새로운 모세로 제시하고, 누가는 이방인 독자를 향해 예수를 보편적 구원자로 재해석합니다. 이 과정은 결코 원형을 훼손하는 배신이 아니라, 복음의 정신이 새로운 컨텍스트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다시 말해 재육화re-incarnation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정경화 — 고정된 텍스트와 열린 의미
성서의 정경화canonization 과정은 흔히 이러한 역동적 형성 과정의 종결로 이해되곤 합니다. 구약의 경우 얌니아 회의(기원후 90년경), 신약의 경우 아타나시우스의 367년 부활절 서신과 카르타고 공의회(397년)가 정경 확정의 중요한 기점으로 언급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정경화 과정을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단순히 목록을 확정하는 행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공동체의 신앙적 경험과 신학적 판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제임스 샌더스가 정경 비평을 통해 설득력 있게 논증했듯이, 어떤 텍스트가 정경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그것이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실제로 기능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정경성은 텍스트 자체에 내재한 절대적 속성이라기보다는, 신앙 공동체와 텍스트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중요한 점은, 정경화가 해석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정경으로 확정된 이후에야 텍스트는 더욱 치열한 해석의 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유대교의 탈무드와 미드라쉬 전통은 텍스트의 의미가 공동체의 삶과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새롭게 펼쳐져 왔음을 잘 보여줍니다.
기독교 전통 안에서도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마르틴 루터, 장 칼뱅으로 이어지는 해석의 흐름을 통해, 동일한 텍스트가 각 시대의 지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새 의미를 생성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정경화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텍스트는 일정한 형태로 고정되었지만, 그 의미는 결코 고정될 수 없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 있는 공동체를 향해 계속해서 말을 걸기 위해서라도 그 의미는 고정되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4.
해석학적 함의 — 현대 성서 읽기의 방향
성서 형성사가 보여주는 이러한 역동적 과정은, 오늘 우리가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저는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해석학적 원칙을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코어core와 적용의 구분입니다. 성서의 권위는 특정한 문화적 표현이나 역사적 적용 방식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신앙의 핵심 — 곧 하나님의 성품, 인간의 존엄성, 정의와 사랑에 대한 요청,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 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서 형성사는 바로 이 핵심이 각 시대마다 새로운 언어와 형식으로 표현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율법의 정결 규정이 레위기적 형식으로 주어졌다면, 동일한 정결의 정신이 바울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창조로 재해석된 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핵심은 유지되면서 표현 방식은 변화해 온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는 해석 공동체의 책임성입니다. 성서 해석은 개인의 자의적인 독해로 환원될 수 없으며,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적 식별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고대의 편집자들이 공동체의 신앙 경험과 씨름하면서 텍스트를 형성해 나갔던 것처럼, 오늘의 해석 역시 교회 공동체의 기도와 논의, 그리고 삶의 실천과 긴밀히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성령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 성찰도 함께 요구받습니다. 전통적으로 성서의 권위를 보증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온 성령의 내적 증거는, 동시에 공동체가 새로운 시대 속에서 텍스트의 의미를 식별하도록 인도하는 원리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해석의 누적적 전통에 대한 존중입니다. 오늘의 성서 읽기는 지난 2000년에 걸쳐 축적된 해석의 전통을 무시한 채 텍스트로 곧장 뛰어들 수 없습니다. 교부 신학, 종교개혁 신학, 그리고 근대의 역사비평적 연구 성과들은 모두 성서와 공동체 사이에서 이루어진 살아 있는 대화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현대의 해석자는 이 전통과 비판적으로 대화하면서, 무엇이 시대적 한계에서 비롯된 해석이고 무엇이 텍스트의 보다 지속적인 진리인지를 분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5.
비판에 대한 응답 — 상대주의와 절충주의의 위험
이러한 입장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비판은, “해석의 무한한 개방성이 결국 성서의 권위를 해체하고 신앙을 상대주의로 전락시키는 것 아닌가”라는 문제 제기일 것입니다. 이 비판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질문입니다.
그렇지만 성서 자체의 형성 과정을 다시 살펴보면, 이와 같은 위험에 대한 일종의 내적 안전장치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대의 편집자들은 전통을 무제한적으로 변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핵심적인 신앙 고백 — 야훼 하나님의 유일성, 언약의 신실함, 그리고 출애굽이라는 구원 사건 — 을 일관되게 보존하면서, 그 주변의 표현 방식과 적용만을 재구성해 왔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해석학적 상대주의와 책임 있는 재해석 사이의 경계선을 분명히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해석학적 통찰을 참고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한 “지평 융합”은, 텍스트의 의미를 독자의 주관 속으로 흡수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지닌 타자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것이 독자의 세계에 말을 걸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결국 성서의 권위는 독자가 텍스트를 마음대로 변형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텍스트가 독자를 변형시키는 힘에서 비롯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그와 같은 변형적 만남은 언제나 구체적인 역사적 컨텍스트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역시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6.
정리하며... —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향하여
성서는 과거의 신앙 공동체들이 하나님과 씨름하고, 역사의 의미를 해석하며, 각 시대의 도전에 응답해 온 흔적들이 축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고정된 교리의 저장소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증언들이 서로 대화하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성서 형성사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성서 자체가 이미 “이전 세대의 신앙에 대한 창조적 해석”의 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현대 기독교가 성서에 충실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문자 하나하나를 역사적 맥락에서 분리하여 절대화하는 태도라기보다는, 성서 자체가 보여 준 신앙의 방식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곧 핵심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와 정직하게 대화하고, 복음의 정신이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육화 될 수 있도록 창조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 전통은 박물관에 보존된 유물이 아니라, 매 세대가 새롭게 그 의미를 발견하고 살아내야 하는 살아 있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 형성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작업이 결코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신실함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