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행동 유도 플랫폼 디자인 작업기 | 한승희
“그린피스 광고(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북극곰 너무 불쌍해 보여”
“아프리카에서는 굶주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니 충격적이야”
“코로나가 심해져서 어르신들이 끼니를 못 챙길 정도네”
우리는 질병, 자연재해 등 불어나는 사회문제에 동정은 있으나 왜 행동하지 못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신뢰할 수 없어서, 많은 금액이 필요할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기부를 망설이곤 합니다. 혹은 지속되지 못하죠.
X PLEAT는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많은 SK(주) C&C와 함께 기부가 활성화되기 위해 사용자에게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작은 활동도 선한 가치로 인정하며, 지속적인 행동으로 만들어진 나의 선한 영향력이 사회에 환원될 수 있는 서비스를 설계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하여 아이데이션을 거쳐 디자인 에센스(컬러, 아이콘, 일러스트 등)를 도출하고 건강한 기부 서비스 플랫폼을 구현해냈죠. 험난하고 강렬했던 프로젝트에서 디자이너가 피, 땀, 눈물을 흘렸던 여정에 관해 나눠보려고 합니다.
출발 전, 우리는 지금 어디일까?
먼저 ‘선한 행동 유도 플랫폼’이라는 우리의 목적지는 명확했습니다. 우리만의 관점으로 풀어나가기 전, 현재 대중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기부 서비스들의 표현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기부 서비스들은 대부분 도움이 필요한 대상을 동정의 대상이나 약자, 피해자로 묘사합니다. 자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이미지, 감성적인 언어, 안정적인 색감 등을 사용하여 따뜻한 감성만을 연출하고 있죠. 일반화된 표현 방법은 약자에 대한 이미지를 한정시키며 시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하게끔 합니다. 이러한 편견에 익숙해진다면 지속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빈곤 포르노’ 같은 전통적 기부 유도 방식을 지양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구현해내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만의 방향을 공고히 다져보기 위하여 다른 서비스들을 면밀히 분석해보았습니다. 먼저, SK 기업과 관련된 서비스, 경쟁/유관 서비스, 플랫폼 서비스 등 데스크 리서치를 진행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이미지 심상을 파악하려 했죠. 디자이너들은 각자 빠르게 리서치를 진행한 후 의견을 공유해보았습니다.
“따뜻한 레드와 오렌지 컬러를 적극 사용하고 있는 SK 기업 서비스는 비주얼 모티프와 같은 그들만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네요.”
“전통적인 기부 서비스는 구호성 메시지와 핸드 드로잉 등의 감성적인 표현 방법을 사용하여 연민을 느끼게 하는 친숙한 이미지로 접근하고 있어요.”
“명확한 타겟팅과 전문성을 띠고 있는 서비스는 심벌과 언어를 활용하여 직관적으로 서비스 가치를 전달하고 있어요. 주로 강한 채도의 색상으로 그들만의 차별화된 컬러 스킴을 구성하고 있네요.”
“플랫폼 지향 있는 서비스는 대체로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중립적이어야 할 정보들을 친근하고 쉽게 전달하고 있고요.”
그리고 향후 실행할 수 있는 범위를 고려하여 아래와 같은 3가지 방향성의 챌린지를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1. SK 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그 가치를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과 수위는?
2. 서비스의 가치, 기부의 긍정적 인상을 어떻게 표현할까? 기성 기부 서비스와의 차별화된 접근 방법은?
3. 플랫폼으로서의 중립성, 어떻게 하면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 내는 이미지를 디자인할 수 있을까?
확실한 방향을 정의하기 전 우리가 기대하는 서비스 인상과 사용자가 선호하는 무드 간의 매칭 정도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무드 보드 작성 후 기부 경험이 있는 사용자 중 조사 대상에 적합한 5명을 선정하여 사용자 조사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디자인 스타일에 대한 선호와 사용자가 수용 가능한 범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죠.
먼저 작성한 챌린지를 기준으로 키워드와 이미지를 자유롭게 풀어보는 미니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도출된 수많은 키워드들을 분류해보고 디자인 스타일링을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핸드드로잉, 둥근 쉐입, 포근한 색상의 A 타입, 명료한 쉐잎과 컬러, 정보 구성으로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는 B 타입, 빅 타이포와 액티비티한 모티브로 동적이고 활기찬 C 타입 이렇게 3가지의 무드 보드를 작성하였습니다.
“A와 C 타입은 기부가 일상 속 가까이에 있고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전달할 수 있는 타입이죠.”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기존에 형성된 기부의 이미지와 다소 거리감이 있어 유저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의문이네요.”
“B 타입의 경우 이미지와 정보 전달이 중립적이고 명료하게 표현되었는데, 그만큼 익숙하고 친숙한 기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용자는 어떤 서비스 인상을 기대하는지 궁금하고 우리도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서비스를 이끌어야 할지 고민이네요.”
디자이너는 각자 아웃풋에 대한 예상과 기대를 가지고 작성한 키워드와 무드 보드와의 적합성, 선호하는 이미지 심상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사용자 조사 결과 ‘즐거운’, ‘쉬운’, ‘명료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B 타입의 선호도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사용된 이미지로 인해 ‘함께하는’, ‘따뜻한’, ‘부담 없는’과 같은 심상이 전달되었다고 나타났습니다.
디자인은 정답은 없기 때문에 설계하는 과정에서 목표와 방향을 완벽하게 일치시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용자 조사 결과 B 타입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디자인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명백한 데이터이기도 하죠. 하지만 피험자의 보이스를 다시 한번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기로 했습니다.
“B 타입 이미지와 같이 사람들은 안정되고 따뜻한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B 타입 이미지가 크게 제시되어 인지하기 좋네요.”
“B 타입의 경우 전체적인 무드보다 이미지로 인해 ‘함께하는’, ‘따뜻한’, ‘부담 없는’ 키워드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피험자들은 전체적인 무드보다도 시각 요소 중 하나인 이미지에 집중했습니다. 명료하고 따뜻한 심상을 전달하는 이미지는 B 타입을 선택한 강력한 요인이었던 거죠. 이에 B 타입에 대한 선호는 익숙한 시각요소로 인한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때문에 선한 행동을 유도하는 플랫폼의 방향성과 UX 전략에 기인하여 무드 보드 B 타입과 C 타입의 긍정요소를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핵심가치를 흐리게 하지 않도록 한 번 더 검증하고 우리의 직감을 확인해 나가야 합니다. 앞서 말한 UX 전략과 디자인 챌린지가 일맥상통할 수 있도록 키워드를 작성하고 시각적 정체성을 구체화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사용자 니즈에 기반한 이미지의 교차점을 확인하여 진정성이 드러나는 ‘명료함’, 함께 만들어 가는 ‘활기’, 긍정적 변화가 느껴지는 ‘따뜻함’을 키워드로 선정하였고, 이에 따른 디자인 원칙을 작성하였습니다.
디자인 원칙을 기준으로 두 타입의 드래프트 디자인으로 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사용자가 참여한 선한 활동들이 활기차고 포용적인 인터랙션으로 표현될 수 있는 시각 요소를 점검하기 위함이었죠. 오렌지 닷을 메타포로 하여 다양하고 차분한 서브 컬러와 함께 활발하게 반응하는 인터랙션을 구성한 A 타입과 개개인의 가치가 더해지고 곱해지는 선한 영향력이 포근하게 변화하는 인터랙션을 구성한 B 타입을 작성했습니다.
“A 타입은 사용자가 활동할수록 적극적인 움직임이 표현되어 활발한 시각적 변화가 확실하게 느껴지네요.”
“B 타입은 사용자의 활동이 색상으로 서서히 표현되는 듯하네요. 포근한 변화에서 따뜻함이 느껴져요.”
‘좋아요’와 같은 작은 기능들이 소비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며 나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돌아올 수 있는 용도로 표현되길 바랐습니다. 이에 사용자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닷, 쌓이고 모여 커지는 선한 영향력을 표현한 A 타입의 시각 요소들이 더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드래프트 디자인 A 타입의 '선한 활동에 반응하는 액티비티한 오렌지 닷'을 메타포로 하여 디자인에 적용되는 분위기를 디테일하게 정의하고 확장시켜나갔습니다.
우선 서비스의 활기가 느껴지도록 오렌지 컬러, 차분한 파스텔컬러를 조합하여 컬러 스킴을 구성하였습니다. 기본 조형 요소인 원과 라인을 활용하여 밝은 오렌지 컬러의 닷이 변화에 함께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을 이끌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단순하면서 강렬한 빅 타이포로 데이터 정보를 강조하여 확실하고 액티비티하게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사용자의 모든 행동들이 서비스 내 새로운 사회적 자아와 영향력이 만들어지는 데 기반이 되며 동기부여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이에 작은 행동(소식 받기, 공감하기, 댓글 쓰기, 공유하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닷들이 쌓이고 모여들어 활기를 띠는 선한 영향력으로 표현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오렌지 닷'과 아우를 수 있는 위트 있는 아이콘, 일러스트 소스를 제작하여 활동 보상으로 선명해지는 사회적 자아와 칭찬 스티커로 성취감과 지속적인 참여 동기를 갖도록 유도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용자의 참여에 따라 반응하는 인터랙션을 곳곳에 삽입하여 서비스의 차별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만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며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도구인 디자인 시스템을 정의하고 구축하였습니다. 명확한 비주얼 요소들과 컴포넌트들의 일관된 관계를 제공하며 마침내 건강한 기부 서비스를 구현해낼 수 있었죠.
머나먼 여정을 돌아보며..
‘남다른 시야를 가져야 하는 디자이너’의 압박을 받지만 나도 모르게 사회가 규정지은 이미지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경계하고 남다른 통찰을 끌어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말 들어본 적 있지 않나요?
단순한 시각 요소 하나로 디자이너 관점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 퍼포먼스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럼 우리는 ‘다름’을 영리하게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도면밀하게 전략 세우기, 새로운 인사이트 찾기, 트렌드 파악하기… 등 다양한 방법들을 적용해볼 수 있죠.
하지만 본 프로젝트를 통해 무엇보다 디자이너의 ‘확신’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가는 길이 안정적이지 않아도 확신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점검하며 보완해 나간다면 우리만의 정의를 구축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된 것이죠.
머나먼 여정에서의 X PLEAT의 생생한 경험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회복 탄력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