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영의 <페인트>
있을 법하지만 있어서는 안 될 미래, 이희영의 소설 <페인트>가 그리는 세계다.
표지의 아이 그림과 NC센터, 준 203이나 제누 301이라는 명칭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형 로봇이 활동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는 공상과학영화를 상상하게 했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내용은 무거웠다.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저출산 시대.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펼쳐도 소용이 없자 정부가 아이를 데려와 직접 키우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가디라는 전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규칙적인 생활과 지덕체를 고루 발전시키는 '이상적인' 교육과 보육을 받는다. 그들은 국가의 아이들(nation's children)이라고 불린다. 정부는 어느 정도 자란 아이들이 다시 가정에서 입양되어 자라기를 원한다. 입양해가는 부모들에게 양육 수당 및 연금 등의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혜택만을 노리고 아이들을 입양해가서 학대하는 부모들이 생기자 싫은 것과 잘못된 것을 말할 수 있는 열세 살 이상의 아이들만 부모를 면접하고 입양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꾼다.
아이들의 안전한 입양을 위해 건강검진 및 심리검사는 물론이고, 반드시 부모 면접(parenet's interview)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있다. 부모 면접은 아이와 예비 부모가 만나는 과정인데 영어 발음이 비슷한 은어로 '페인트 하러 간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회에 나가서도 NC 출신은 차별대우를 받기 때문에 자신의 색깔을 부모라는 다른 색깔로 덮어버리고 싶어서 그런 말을 사용하는지 모른다.
아이를 입양하는 부모에게도 선택권이 있지만, 아이에게도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를 입양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다르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다는' 말로 포장되는 NC센터의 아이들 상황이 지독스럽게 슬프다. 이 아이들은 흔히 공상과학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유전자를 조합하여 배양해 태어난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국가가 키운 것이다. 부모에게서 버려진 아이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라는 사회의 인식은 이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이 아이들은 센터에 들어온 '달'에서 이름을 따온다. 1월에 센터에 들어온 아이는 남자는 제누, 여자는 제니다. 7월에 들어온 아이들은 주노와 줄리다. 그리고 들어온 순서대로 숫자가 붙는다. 준 406은 6월에 센터에 들어온 406번째 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남자아이들도 여자아이들도 준과 주니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사랑해서 아이를 가졌지만 키울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아 아이를 국가에 맡긴 경우보다 여름휴가철에 임신해서 낳은 아이들이 이곳에 온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NC의 아이들이 센터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19세까지이다. 19세가 되어도 입양되지 못하면 센터를 나와 자립해야 한다. 입양이 되는 경우 NC에 있었던 모든 기록이 지워지지만, 입양이 되지 않고 자립하게 된다면 그 기록이 지워지지 않아 사회의 차별을 받게 된다.
제누 301은 곧 열여덟이 되는 아이다. 그는 여러 예비 부모들을 만났지만 마음을 주지 못한다. 단지 아이를 '연금과 양육수당'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다 하나와 해오름이라는 한 부부를 만난다.
하나와 해오름은 명령이 아닌 질문과 반성을 할 수 있는 부모였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일어나는 마찰로 어려움을 겪게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나와 해오름은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두 사람은 사실 부모 준비가 끝난 사람들이었다.
부모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나를 포함하여 많은 부모들이 '마음과 마음 사이의 마찰'을 단지 자신이 옳다는 아집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질문과 반성', 아이를 위한다면서 아이를 위해 스스로에게, 아이에게 질문을 해봤던가? 완성과 완전은 가능하지 않으나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를 힘들게 만드는 것인가?
하지만 제누 301은 준비된 하나와 해오름을 부모로 선택하지 않는다.
"너희가 센터를 떠나 좋은 부모와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지금의 시스템이 나쁘다고만 생각지 않는다. 너희는 사회를 알아가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너희들을 지켜 줄 울타리가 필요하다"
"울타리 밖으로 벗어난 양은 늑대에게 잡아먹히죠. 하지만 더 맛있는 풀을 발견할 수도 있어요"
그는 어렵고 힘들어도 '잘 닦인 고속도로'를 놔두고 '좁고 험한 길'을 선택하여 그 길을 넓고 평평한 길로 바꾸기를 선택한 것이다. 당당히 차별받으며, 그 차별을 깨부수기로 결심한 것이다. 변화와 발전이란 그런 것이다. 단순히 과거와 다른 것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변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것과 부딪쳐 깨지며 자신을 변화시켜 기존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자신의 자리를 새로움에 내어주는 것이 변화와 발전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무엇보다 소재도 신선하고 결말도 구태의연하지 않아 절로 '재밌다'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