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밤은 노래한다>는 일제강점기의 <민생단 사건>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민생단 사건>은 1930년대 초반 중국 공산당이 간도 일대에서 일본인 첩자를 찾아낸다는 명분으로 조선인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500명 이상 학살한 사건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일본의 측량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일본에 협력적이었으나 조선인이기에 위험한 용정으로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정희를 만나 사랑을 하면서 완벽한 세상을 느낀다.
그렇지... 사랑을 하면 세상은 완벽해진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리고 그 세상보다 사랑하는 이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날 끌려간 일본의 헌병대. 그곳에서 '내가 살아온 세계 또는 사랑한 여자, 세계'가 완벽하게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는 너무나 낯선 이가 되고, 그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서 그것을 잊기 위해 난 아편에 빠진다. 아편에 빠져 현실을 잊는다. 잘 나가는 일본 회사, 조선인은 딱 한 명 밖에 존재하지 않아서, 그래서 더 자랑스럽던 회사에서 해고당해도 '나'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그녀가 일본군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첩자이며, 그래서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사랑과 절망, 충만함과 상실감에 몸이 떨린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전에 없이 더 또렷해진다는 건 바로 그때 알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대체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아름다움도 그리운 단 하나의 얼굴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의 언어는 매우 서정적이며 아름답다.
정희를 잃은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귀머거리, 벙어리 흉내를 내며 사진관에 취직해 인화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세상을 향해 말하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그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머무는 집에서 일하는 여자아이 '여옥'을 만나며 조금씩 변해간다.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노름빚으로 팔리는 신세나 지주의 첩이나 술집 여자가 되는 것이 삶일 수밖에 없는 용정의 여자아이 '여옥'은 야학을 통해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였다. 그래서 얼어붙은 '나'의 마음을 조금씩 녹여간다. 여옥과 어떤 형태의 관계를 맺게 될까?
청진이 고향이라던 사람, 북간도 아이들에게 늘 바다 얘기를 들려주던 사람. 그때까지 누구도 여옥이의 애기를 그토록 귀를 기울여 들어준 사람은 없었다. 그때까지 누구도 여옥의 얼굴과 몸을 그토록 뚫어져라 쳐다본 사람은 없었다. 그 시선과 귀 기울임 속에서 여옥이는 비로소 자신도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혁명의 도리를 깨치게 됐다. 새로운 계급의 새로운 인생관이란 다른 사람을 향한 시선과 귀 기울임에 있다는 사실을 깨치게 되었다.
여전히 힘든 하루하루지만 '나'처럼 자신이 사랑한 사람, '나'를 소중하게 만들어 준 사람을 잃은 여옥이와 가까워진다. 여옥이를 통해 조금씩 상처를 치유받는다. 아직 가슴에는 가득 분노가 들어차 있지만, 조금씩 틈이 열린다.
사랑으로 입은 상처는 사랑으로만 치유가 가능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계속 불안감이 드는 것은 작가가 이들에게 어떤 시련을 더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옥이 언니의 혼례식에 가는 길, 계속 만나게 되는 일본군 트럭과 만주국 병사들과의 만남이 자꾸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짧게, 그리고 길게 모두 세 번의 비가 내린 금요일과 일요일 사이. 길게 드리운 구름장 뒤에서 종이로 만든 것처럼 투명할 정도로 창백한 만월이 다시 이지러지기 시작한 열엿새의 낮과 밤. 세상의 모든 버드나무 가지들이 내게 말을 걸었던 48시간. 심장에 돋아난 귓바퀴가 어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던 말들에 귀를 기울이던 마지막 토요일 저녁.
끝으로 세차게 소나기가 내렸고, 그 비를 고스란히 맞은 여옥이가 지난가을 해란강변 버드나무의 사연과 내게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던 한 사내의 일들과 자신이 변절한 게 아닐까 의심하다가 결국 변절하게 된 또 다른 사내의 운명이 어지럽게 씌어진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옥과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바랬던 나. 하지만, 여옥 언니의 혼례식을 핑계로 유격대에게 물품을 전달하는 사진관 사람들과 유정촌에 갔다가 일본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는다. 살아남은 사람은 나와 여옥. 여옥은 총상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나는 유격대에 끌려간다. 오히려 살아남아서 일본군의 첩자로 오해받는다. 그리고, 처형당하기 직전 중국 공산당과 조선공산당의 알력 다툼 사이에서 살아남아 공산당원으로서의 훈련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계속되는 일본군의 공격으로 박도만과 '나'는 민생단 간첩으로 오해받다 다시 처형당하는 위기에 처한다. 박도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함을 보인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살아남은 후 나는 박도만에게 묻는다. 세상은 너무나 잔인하며, 죄 없는 사람이 이렇게 죽어가는데, 인간에게 미래가 남아있냐고. 박도만의 대답이 너무가 강렬하다.
신념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고 한다. 작가는 이렇게 강한 인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이오. 그게 힘이라오. 물론 나 역시 사람을 죽인 뒤에 톨스토이의 책을 버렸소. 결국 잔혹함마저도 진리의 한 부분이라고 인정하게 된 것이오.
<중략>
나는 오늘 죽을 수도 있었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내가 민생단 간첩으로 오해받아 죽든,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인도주의가 진리라면 인도주의 역시 개개인에게는 잔혹함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한도 분노도 없소. 나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분노할 뿐이오. 인간은 진리 속에 있을 때 인간일 뿐이오. 그리고 진리 속에 있을 때 인가는 변화할 뿐이오. 인간이 변화하는 한, 세계는 바뀌게 되오.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는 고정의 존재가 된다는 것. 다만 이 역사 단계에서 더 이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 죽음은 그 정도로만 아쉬울 뿐이오. 내가 죽음으로서 세계가 조금 변한다면 그 이상 아쉬움은 없소
책을 읽으며 계속 불안했다.
틈틈이 민생단 사건에 대해 찾아봤었는데, 작가가 결론을 어떻게 내릴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결론은 여기에 적지 않겠지만, 작품의 마지막은 다시 '내'가 정희의 편지를 받은, 그러니까 모든 사건이 시작되는 1932년 9월 용정으로 돌아가 정희의 편지를 받는다. 작품 내내 정희의 시각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 내내 '나'는 사랑했으나 그 사랑은 만들어진 가짜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편지도 몇 번이나 제일 첫 부분의 몇 문장만 보여줬으니..
하지만 제일 마지막은 편지의 모든 부분을 보여줬다.
그리고 정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속에 찍힌 그 모든 것들은 내가 더없이 아끼는 보물이었고,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게 보물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단 한 사람뿐이었어요. 내가 원할 때마다 지치지 않고 함께 그 보물을 봐줄 사람이었죠. 한 때는 이 세상 전부를 원했지만. 이젠, 겨우 그 정도. 이제 내가 아는 세계의, 그러니까 거의 전부.
그럴 알겠어요.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러기에 말했잖아요. 지금까지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그러니까 당신과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이대로 계속 이런 사랑을 하면 다 타서 재가 되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사랑을 해봤다는 소리다.
나는 내 신념으로 권위주의를 가진 '어르신'들과 인생을 다 걸고 싸워본 적이 있고 지금도 그렇다. 물론 그 신념 때문에 힘들 때도 많다.
이 소설을 마지막 장을 읽으며, 정희의 편지를 읽으며, 내가 소설을 쓴다면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