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토야가 지키는 경기도자박물관
가을이 성큼 다가온 하루, 경기도자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박물관 앞 토야가 언제나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런데 토야가 마스크를 쓰고 있네요. 토야는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의 마스코트로 만들어졌습니다. 생명력을 상징하는 흙과 모든 것을 깨끗이 하는 불의 만남이 도자기이며, 그 도자기의 상징인 토야는 넘치는 생명력으로 절대 코로나19에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박물관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코로나19의 위험과 방역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물관 뒤편으로는 조각공원이 있습니다. 조각공원에는 전통 가마도 있고, 여러 조각품들이 보입니다. 마음이 변덕스러워 갈 때마다 마음을 끄는 작품이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도자기 솟대가 무척 예쁘게 느껴집니다. 솟대 위 새들의 날개는 꽃입니다. 솟대에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날개도 예쁜 꽃이 되었나 봅니다. 꽃 날개를 가진 새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요? 한참 같은 방향을 바라봅니다.
경기도자박물관에는 토기부터 청자, 분청사기, 백자, 현대작가들의 도자기 작품들까지 멋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눈을 아주 즐겁게 만듭니다.
도자기 속 재미난 그림 하나도 발견해서 깔깔깔 웃었습니다. 용은 황제나 왕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왕의 직계 가족의 옷에는 용이 새겨진 용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지위에 따른 차이를 두다 보니 황제는 용의 발톱이 6개인 육조룡, 임금과 왕비는 오조룡, 세자와 세자빈은 사조룡의 용보를 사용했습니다. 조선 후기가 되면 이러한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백자의 용 발톱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이 도자기는 우주 최고의 신에게 바쳐진 것이 아닐까요?
오늘 박물관에서 저에게 가장 큰 목소리를 들려준 도자기들은 굽는 과정에서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그릇들입니다.
많은 양의 그릇을 한꺼번에 만들 때는 가마의 제한된 공간으로 인해 그릇을 포개서 굽습니다. 굽는 도중에 그릇들이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을까 봐 동그랗게 흙을 말아 그 사이에 놓거나 고운 모래를 사이에 뿌렸습니다. 이것을 내화토라고 합니다. '제발 무사히 잘 구워지기를, 그리고 잘 떨어지기를!' 하는 도공의 마음이 내화토를 통해 느껴집니다. 굽는 도중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은 그릇들은 절로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내화토를 사용했을 때는 그릇의 안쪽과 아래쪽에 흔적이 남습니다. 그래서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의 고급 그릇을 만들 때에는 갑발이라는 원통형의 상자를 이용합니다. 그릇을 넣은 갑발을 포개어 가마 안에 넣고 굽습니다. 갑발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릇이 숨바꼭질하듯 숨어있고, 갑발과 함께 무너져 내린 그릇은 두 팔을 벌린 채 견뎌보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하는 듯합니다.
아래 사진의 항아리에는 용의 비늘이 철화 안료로 꿈틀거리며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항아리는 구워지는 과정에서 주저앉아 깨지고 말았습니다. 항아리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구겨진 모습에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구름 속을 놀이터 삼아 여의주를 물고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날아다녔을 용과 그 용의 기상을 담은 항아리와 그 항아리를 사용할 사람을 위한 도공의 마음이 함께 무너졌고, 나머지 조각들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무너진 조각은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요. 가마에서 이 도자기를 끄집어낸 도공은 다시금 흙을 고르고, 형태를 만들고, 초벌을 하고, 용을 그리고, 재벌을 해서 아름답고 멋진 도자기를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진 도자기'라는 과정은 슬픔이나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과정이며 '나아감'의 결과입니다.
여러 지역의 가마터에서 발견된 이 수많은 도자기 조각들은 굽는 과정에서 깨어진 것들입니다. 그 조각들에서 무엇을 느끼는가는 '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