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by 랄라라


여행 네번째 날이다. 멕시코시티와 리마를 경유하여 쿠스코를 왔기 때문에 사실상 여행의 첫날이다.


쿠스코는 해발 3360m에 건설된 잉카제국의 수도이다. 잉카제국의 지배자 파차쿠텍이 건설한 도이다. 잉카인들은 하늘은 독수리, 땅은 퓨마, 땅 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었는데, 쿠스코는 퓨마의 모습을 따랐다고 한다. 퓨마의 머리 부분은 종교의 중심으로 필요시 요새로 사용했던 삭사이와만, 퓨마의 꼬리는 인공수로가 끝나고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인 푸마추판이다. 태양 신전 코리칸차는 퓨마의 허리, 제사를 지내던 무언카파타 대광장은 퓨마의 심장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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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쿠스코로 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고산병이다. 쿠스코가 워낙 지대가 높아 고생을 많이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점프를 해봤더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 전날 도착한터라 새벽 일찍 일정이 시작되기전 숙소를 빠져나왔다. 어느 도시에 가던지 새벽에 뛰는 습관이 있긴 때문이다. 지도를 확인하고 어제 잠깐 본 아르마스 광장의 대성당, 코리칸차, 12각돌, 고대 거리를 살펴보고, 쿠스코의 산길을 올라 삭사와이만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중간중간 뛰어봤는데 심장이 답답함을 느껴서 뛸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마추픽추를 가며 가이드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여기 온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뛸 수는 없단다. 또, 낮은 곳인 리마에 다녀오면 고산병 증세가 어느 정도 시간 있다가 사라진단다. 마추픽추를 다녀오는 시간을 합쳐서 6일 정도 머무니 마지막 날엔 어느정도 뛸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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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에 쿠스코대성당에서 미사가 있어 들어갔다. 쿠스코 대성당은 잉카의 위리코차 신전이 세웠졌던 자리를 스페인 침략자들이 부수고 지은 것이다. 대성당에는 원주민을 닮은 검은 예수상이 유명하다. 1650년 쿠스코에 큰 지진이 있었을 때 성모 마리아와 산티아고에게 기도해도 지진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잉카의 후예가 검은 얼굴의 예수상을 만들어 기도하니 지진이 멈췄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검은 얼굴의 예수를 숭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검은 얼굴의 예수는 안짱다리에 인디언의 고유 의상인 치마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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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성당에 가장 유명한 그림은 ‘최후의 만찬’이다. 빵과 포도주 대신 잉카원주민의 전통요리인 쿠이(기니피그요리)와 치차가 요리로 나와있으며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얼굴 대신 피사로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밝으며 하늘이 너무 예뻤다. 산책을 나온 일행을 만났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 잉카제국의 정교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잉카의 돌담을 함께 봤다. 조그만 틈새도 없이 정교하게 쌓아올린 이 방법은 세계유산 화성을 쌓을 때 사용한 그랭이법이다. 빈틈없이 맞추기 위해 돌을 깎아 맞추는 방법으로 잉카 돌담에서는 12개의 각을 가지고 있는 각돌이 12각돌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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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맛있게 먹고 코리칸차 신전으로 갔다. 코리칸차는 잉카시대의 태양의 신전이다. 잉카인들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태양을 숭배했으므로 잉카인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다. 코리칸차는 퓨마의 꼬리부분에 건설되었다. 잉카인들은 이 신전을 지을 때 어떤 접착제도 사용하지 않고 매우 정교하게 돌을 깎아 큐브처럼 돌을 끼워맞추어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돌을 깎아 만든 벽임에도 종이 한 장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빈틈이 없다. 돌 모양을 보니 마치 우리나라의 목조건축물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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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신을 위한 화려하게 지어진 코리칸차는 실내와 실외의 많은 부분을 금으로 장식하였다. 바깥 벽 전체를 황금으로 둘렀으며, 금과 은으로 만든 꽃병과 가구를 사용했고, 선대 황제들의 미라를 꺼내 황금마스크와 순금 망토를 입혔다고 한다. 코리는 황금이라는 뜻이고, 칸차는 장소라는 뜻이니 코리칸차는 황금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코리칸차의 내부 뜰 안에는 태양의 신이 목이 마르면 내려와서 물을 마셨다는 우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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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스페인 군대가 침략하여 황제 이타우알파를 포로로 잡고 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였다. 스페인의 피사로는 “당신이 이 방을 가득 채울만큼 황금을 준다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라고 하였다. 이타우알파는 그 말을 믿고 황금을 내어주기로 하였다. 스페인군대는 코리칸차의 벽에서 닥치는 대로 황금을 뜯어내었으며, 황금동상 등 금으로 만든 물건들을 약탈하였다. 이 때 황금은 무게만 6톤이 넘었고, 이 황금이 유럽으로 들어가면서 유럽은 금값이 폭락하고 인플레이션이 생겼다고 한다. 코리칸차는 스페인 군대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기단부는 남아있었다. 후에 유럽풍의 새로운 건물들을 지었는데 유럽인이 지은 성당은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무너져내리기를 반복했지만 코리칸차의 기단부는 굳건하게 계속 서있다고 하니 당시 잉카인들의 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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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칸차의 기단위에 세운 성당이 산토도밍고 교회다. 잉카인들의 가장 신성한 장소였던 코리칸차를 파괴한 위에 스페인은 카톨릭 교회를 세운 것이다. 산토도밍고 교회를 짓기 위해 군사시설이었던 삭사와이만의 엄청난 큰 돌을 사용하였다. 이 돌을 나르기 위해 잉카인들을 노예처럼 부렸다. 이 돌을 나르는 과정은 피라미드을 돌을 옮기거나 고인돌의 돌을 옮기는 것처럼 통나무 위에 돌을 얹어 끌고 왔다고 하는데..삭사와이만이 거리는 멀지 않으나 가파른 산 위에 위치하고 있어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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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스광장에 있는 라 콤파냐 데 헤수스 교회를 갔다. 이 교회는 잉카제국의 우아이나 카팍이 지내던 궁전 자리에 지어진 교회다. 2층에서는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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