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나라의 달항아리가 최고야!
'제국'
제국이라는 의미는 일반적인 나라와 다르다. 아주 거대한 나라. 여러 나라를 복속시킴으로써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고 막대한 인력과 돈을 이용하여 문화와 경제가 발달한 곳.
우리는 제국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곳을 떠올릴 때 주고 중국과 로마를 떠올린다.
중국. 여러 번 가봤지만 규모에서 기가 질린다. 만리장성, 이화원, 명 13 릉, 진시황릉 등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자금성 보화전 운룡대석조를 봤을 때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답 도라고 하는 궁궐 전각으로 가진 전 봉황이 새겨져 있는 돌. 자금성 보화전의 ‘답도’ 격인 운룡대석조는 두께 1,7m, 길이 17m, 무게 200톤의 돌로 만들어졌다. 여러 개를 잘라 붙인 게 아니라 돌 하나다. 명나라가 새긴 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윗부분을 갈아내고 다시 새겼다고 하니 300톤이 넘는 돌이었다. 이 돌을 산에서 자금성까지 옮기기 위해 2만 명의 사람이 500m마다 우물을 파서 겨울에 그 물을 얼려 빙판을 만든 다음 옮겼다고 한다. 이 얼음길에 돌을 올려놓고 옮기는데 5만 명의 사람과 천마리의 노새가 사용되었다니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그게 궁궐 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돌 하나다.
난 그것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 일반 백성들의 세금을 단지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백성들을 쥐어짜서 그 위엄을 드러내느라 나라가 아무리 강성해도 300년을 못 가는 나라. 황제국으로서의 위엄. 조선이라는 나라는 최소한 임금들이 죽을 때 유언처럼 말한다. 내 무덤에 왕으로서의 격식을 차리느라 이것저것 꾸미면 백성들이 힘드니 간소하게 하라고. 백성들이 경복궁 담벼락에 벽을 대고 집을 지어도 신하들이 목소리를 맞추어 자신들의 잘못이나 백성들의 삶의 어려움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몇 번이고 왕에게 말하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문화유산이 규모적으로 보면 남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그것이 못내 자랑스럽다. 우리나라의 백자는 담백하고 화려함이 없다. 조선이 사대부는 화려하게 만들면 사치임으로, 지도자의 사치는 백성들을 힘들게 한다고 하여 화려함을 경계했다. 그래서 투박한 그릇을 사용했다.
오얀따이땀보에서 태양의 신전 규모를 보며 잉카제국이 만든 마추픽추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했다. 조상 덕에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나라 페루. 하지만, 문화유산을 볼수록 그 시대의 일반 잉카인들은, 그들의 복속국은 얼마나 살기 힘들었을까를 생각한다. 규모가 크면 클수록,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백성들을 더 쥐어짠 것이 아닌가? 새롭게 발견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마추픽추는 해발 2430m 산맥의 정상에 위치한 도시이다. 와이나픽추에서 이야기했지만 늙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파차쿠티 황제가 건설한 요새라고 추정한다. 1450년 무렵에 지어진 마추픽추는 스페인 침략 때 발견되지 않고 잊혔다가 1911년 황금의 도시를 찾으려는 미국의 탐험가 하이럼 빙엄에 의해 1911년 발견되었다.
농업지역과 신전 지역이 있으며, 인신공양을 한 흔적도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이유는 ‘인류 건축 기술의 걸작이자, 잉카문명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입구에서 얼마 가지 않아 눈 앞에 마추픽추가 나타났다. 안개에 가려진 채로. 하지만 아주 가끔씩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는 열심히 사진 찍고, 구름에 가리면 잉카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걷히면 사진 찍고의 연속이었다.
30퍼센트도 채 복원이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워낙 ‘숨겨진 비밀의 도시’라는 이름답게 그냥 구름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할 때마다 셔터를 누르며 감탄했을 뿐.. 세부적인 모습을 그렇게 보지는 못했다.
신전이든 농경지든 해시계든 그 모든 것들이 구름이 걷힐 때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경탄스럽기는 했다.
내려와서 다시 쿠스코로 돌아왔다.
쿠스코로 돌아오는 길.. 페루 레일로 다시 오얀따이땀보로 오는 풍경은 인디애나존스나 쥬라기공원과 같은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