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그레코<오르가스백작의 매장>과 김홍도의<송하맹호도>

내가 좋아하는 호랑이 그림은 까치호랑이!

by 랄라라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며 김홍도의 그림이 생각난 이유는?


2016년 내가 속해있는 모임 <모아재>에서 17일 동안의 스페인 여행을 했다. 모임의 성격상 유적지, 미술관과 박물관을 주로 다녔다. 프라도미술관, 국립소피아왕비예술센터, 호안미로미술관, 피카소미술관 등의 미술관, 그라나다대성당, 세비야대성당, 말라가대성당, 바르셀로나대성당, 사그리다파밀리아 등의 성당, 알함브라, 몬세라트 등의 유적지를 다녀왔다. 미술관을 많이 다니다 보니 미술을 잘 모르는 나라도 마지막 여행지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 경향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카탈루냐 미술관에서는 그림 옆에 있는 설명을 보지 않더라도 이 그림은 누구의 작품이고 어떤 색채와 경향을 가지고 있는지 모임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벨라스케스, 고야, 호안미로, 엘그리코, 피카소, 살바도르달리 등 많은 화가들의 작품들이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행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곳을 말하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우디를 말하겠지만, 나에게는 몬세라트 성당의 검은성모상이다. 몬세라트산 자체가 주는 느낌도 있고 검은 성모상이 주는 묘한 감동이 있었다. 몬세라트의 검은성모상은 교황 레오 13세가 성모의 재림을 인정하고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많은 신자들과 관광객이 찾아와서 기도를 드리는 곳이다.


사진 054.jpg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몬세라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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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66.jpg 검은성모상을 보러 온 사람들은 유리관 속 성모상의 손을 만질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말하라면 톨레도의 산토 토메성당에서 본 엘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오주석 선생님이 '한국의 미 특강'에서 말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속 호랑이가 떠올랐다.

14세기 오르가스 지역의 영주 돈 곤살로 루이스는 영지에서 걷어들이는 세금의 일부를 산토 토메 성당에 기부를 하였으며 유언으로 계속 기부를 하도록 하였다. 그가 죽은 뒤 후손들이 성당에 대한 기부를 중지하려고 하자 성당과 후손 사이에 소송이 이어졌다. 그 소송은 성당의 승리로 끝났다. 성당은 돈 곤살로 루이스의 선행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엘그레코에게 작품을 의뢰하여 그리게 되는데, 그 작품이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다. 성 스테파노 주제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부축을 받아 안장되고 있는 오르가스 백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림의 상단부에 있는 심판자 예수의 발 밑에는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은 성모마리아를 볼 수 있는데, 이 마리아만 보더라도 이 그림이 엘그레코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왜 난 이 그림을 보며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떠올렸는지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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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전 의식과 냄비근성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이 여러 가지가 생겼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인 엽전 의식과 냄비근성이다.

먼저 엽전 의식이란 말은 개화기 무렵 사용하기에 좋은 화폐인 종이돈이 새로 나왔는데도, 우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종이돈에 익숙해지지 않고, 옛날에 쓰던 엽전을 그냥 쓰기를 고집했다고 하는 데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즉 엽전 의식이란 말은 낡고 불편한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고 바뀌지 않으려고 했던 우리나라 사람을 낮추어서 빗대어 쓰던 말이었다.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씌운 대표적인 식민사관 중의 하나이다. 일본이 얼마나 이런 인식을 뿌리 깊게 세뇌시켰느냐 하는 것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면 된다.


"여러분은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두 질문에 대해 '불국사와 석굴암'을 떠올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위의 질문에 우리나라 국민의 8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불국사와 석굴암' 또는 성덕대왕신종,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떠올린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문화유산들이 가지는 가치들은 충분히 그럴만하다. 하지만, 고려와 조선의 문화유산도 얼마든지 많은데 그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국시대의 문화유산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이 식민교육을 하면서 대표적으로 말한 것 중 하나가 문화정체론이다. "너희 나라는 삼국시대까지는, 그래, 정말 잘 나가던 나라였어. 문화도 뛰어났고 위대한 인물들도 많았어. 하지만, 거기까지야. 고려시대 때는 내내 중국의 침략을 받아 피폐한 삶과 문화가 퇴보했으며, 그러다 몽골의 지배를 받았어. 조선시대에는 신분제도를 엄격하게 하여 인재들을 제대로 등용하지 못하고 소수 지배층들은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비방하고 싸우느라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백성들은 내내 살기가 힘들었어."

이 식민사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자.


냄비근성이란 무엇인가? 냄비의 음식이 금방 끓고 금방 식는 것처럼 모든 일을 빨리 처리하느라 제대로 하지 않는 성향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냄비근성에 대해 일본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성향을 '무엇이든 시간을 들여 검토하고 점검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과연 그러할까? 일본이 가진 '섬나라 민족'특유의 조급함을 생각한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된장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 발효하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성향과 며칠 만에 발효시켜 먹는 낫또 문화를 가진 일본인들의 성향을 생각해보자. 괜히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 돼지우리에 일본 사람, 한국사람, 중국사람을 넣었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일본 사람이 튀어나왔다. 잠시 후에 한국 사람이 나왔다. 며칠이 지나 뭔가 큰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는데, 바로 돼지였다"


화성성역의궤와 승정원일기를 통해 본 조선인의 성향


수원화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데에는 '화성성역의궤'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화성성역의궤에는 각 건물별로 큰 못, 중간 못, 작은 못을 몇 개를 사용하였고, 그 무게와 가격이 얼마였는지, 일꾼들의 이름과 급여가 얼마였는지까지도 상세하게 나와있다.

승정원일기는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과 같은 승정원에서 작성한 기록물로 왕의 행적, 왕과 신하의 대화뿐 아니라 날씨나 왕의 진료에 관련한 것, 왕에게 올라온 여러 상소들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다.

화성성역의궤나 승정원일기를 통해 이렇게 자세히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참고하기 위해서다. 왕이나 관리들은 어떠한 일을 처리할 때 실수를 하기도 하고, 잘못을 하기도 한다. 그 실수와 잘못을 줄이는 방법이 무엇일까?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잘잘못을 기록하여 그다음 일을 할 때 참고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세하게 기록하는 나라가 엽전 의식과 냄비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체를 보지 못하고 아주 부분적인 내용을 가지고 과대 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57988f58222791c1d9eededd2a883c9.jpg 승정원일기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보자! 정말 정성스럽게 잘 그린 그림이다. 잘 그렸을 뿐 아니라 자세하게 그렸다. 김홍도가 이렇게 호랑이를 그린 이유는 '주역'을 보면 호랑이는 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큰 덕을 지닌 사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으로 한국, 일본, 중국이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특별전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적이 있다. 한국의 호랑이 그림 40종, 일본 호랑이 그림 40종, 중국 호랑이 그림 40종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일본의 도쿄 국립박물관, 중국의 국가박물관이 내어놓았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와 죽하맹호도였다.


2018012600126_0 (1).jpg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와 미루이마오교의 '바람을 일으키는 호랑이의 포효'

'한국의 미'특강을 쓴 오주석 선생님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제가 15cm도 되지 않는, 호랑이의 머리 부분만을 확대했는데 이렇게 실바늘 같은 선을 수천번이나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이건 숫제 집에서 쓰는 반짇고리 속의 제일 가는 바늘보다도 더 가는 획입니다.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화가는 지금 우리 세상에 없습니다. 웬만한 화가는 저 다리 한 짝만 그려보라고 해도 혀를 내두를 것입니다. 이런 묘사력은 뭐랄까, 그림 그리기 이전에 정신 수양의 문제 같은 것이 전제되어 있어야 가능합니다. <중략> 흔히 "한국 사람은 일하는 게 대충대충이야'하는 얘기, 어려서부터 많이 들으셨죠? 이렇듯 섬세하기 그지없는 그림을 그리고 감상했던 사람들이 대충대충 이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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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 선생님의 말씀에 너무나 공감한다. 하지만, 오주석 선생님이 이 글을 2020년에 쓰셨다면 조금 다르게 쓰셨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역사나 문화는 시대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중요한 시대가 있다면, 서양의 각종 문물이 청나라를 통해 들어오고 지식인들이 그것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나뉠 때의 왕이었던 정조대왕의 리더십이 중요하게 여기지는 시대가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야 하는 시대가 있는 반면, 우리 문화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그래서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데?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는 명품이다.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전시에 나온 105건의 작품 중 나머지 103건의 작품을 바라본 시간보다 송하맹호도와 죽하맹호도의 두 작품을 본 시간이 훨씬 길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보면 볼수록 호랑이의 용맹한 기상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화가는 지금 우리 세상에 없습니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었다. 너무 국수주의적인 태도 같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 그림만큼 정성스럽다, 자세히 그렸다, 세밀하다를 느낄 수 있는 그림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기에 반박할 수은 없었다.

그러다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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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상으로는 자세히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르가스 백작이 입고 있는 갑옷에 비친 풍경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갑옷의 비친 풍경이 갑옷의 굴곡을 따라 다양한 각도로 그려졌는데 그 그림의 세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제야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그림이 가지는 자세함과 서양 그림이 가지는 그림의 자세함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어서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건 전혀 다른 종류의 자세함이었다. 그래서 스페인 톨레도 산토 토메 성당에서 엘그레코의 그림을 보며 계속 감탄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툭 하고 튀어나온 말"역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최고야!"


그래도 까치호랑이 그림이 좋지! 이게 무슨 소리냐고?


위에 실컷 김홍도의 호랑이가 좋다고 했지만, 사실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은 민화인 호작도, 즉 까치호랑이 그림이다.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는 무섭게 그려져 있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럽거나 다정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한 편에 그려진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상징이며, 호랑이는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질병과 재해를 막아주는 상징이다. 또한 소나무는 1월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 셋을 다 그린 호작도는 새해를 맞아 기쁜 소식만이 들리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다. 새해 첫날에 문이나 벽에 호작도를 걸어놓는 이유다.

코로나 19로 많은 힘든 일이 있었던 2020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아래 그림의 호랑이가 2021년에는 모든 나쁜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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