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인 듯 보이는 한 사람이 갓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멱살을 잡혀 끌려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위쪽 계단에서는 부채를 든 한 선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음을 띈 채 바라보고 있습니다. 끌고 가는 병졸이 기세 등등하게 주먹을 쥔 채 때리려는 듯 한 손을 들고 있고, 끌려오는 사람은 잔뜩 기가 죽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요?
어른과 아이가 횃불을 들고 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어른은 한 발을 들고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여유를 보이고 있고, 아이는 짐짓 진지합니다. 그 옆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염려하고 있는 한 어른이 "제발 그만 좀 하게나!"라고 말하는 듯 한 손을 내밀어 말리고 있습니다.
한낮에 길에 주저앉아 졸고 있는 저분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아마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것 같네요. 주변에 친구들이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마치 "어허, 이 사람이랑은 창피해서 같이 술을 못 마시겠군!"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건물 위에는 두 아이가 그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 셋은 김홍도가 그린 그림의 일부분입니다. 어떤 그림일까요? <씨름>이나 <타작>과 같은 풍속화일까요?
이 그림은 <평안감사향연도>입니다. 조선 후기 평안도에 감사가 부임하였습니다. 감사는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직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평안감사를 맞이하는 행사는 크고 화려했습니다. 김홍도는 평안감사를 환영하는 그 잔치를 세 장의 그림으로 그려냈습니다. 연광정, 부벽루, 대동강의 세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정말 화려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원된 행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행사를 기록한 그림에 술 마시고 주저앉은 사람, 멱살 잡혀 끌려가는 사람, 불장난하는 사람은 왜 그려진 것일까요?
평안감사가 부임하여 축하하는 행사는 낮에 연광정에서 시작해서 부벽루에서도 열리고, 밤에 대동강에서 뱃놀이로 이어집니다. 연광정과 부벽루를 배경으로 한 그림에는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하던 이 사람들도 밤에는 대동강에 나와 평안감사의 부임을 축하해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신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평안감사의 잔치를 즐기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 보여준 것 이외에도 엿을 파는 아이도 있고, 나무 그늘에서 편안히 누워 이 잔치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모습을 평안감사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평안감사 부임이 혼자만의 즐거움이 아니라 평안도 모든 사람의 즐거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모든 장면을 웃으며 바라봅니다.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볼까요? 지방에 부임한 관리는 왕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평안감사의 시선은 왕의 시선입니다. 즉, 이 그림은 평안감사가 평안도의 모든 백성들에게 좋은 정치를 베풀고 즐거움을 함께 나누라는 왕의 마음을 담은 그림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 3장의 그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로 볼 수 있습니다. 김정희의 <세한도>와 함께 <한겨울 지나 봄 오듯- 세한 평안>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기간은 2021년 4월 4일까지입니다.
그림 속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보러 가시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얼른 가자고 조르는 모습도 보이네요. 여러분들도 가셔서 이 흥겨운 잔치를 함께 해 보세요.
<평안감사향연도>는 미디어아트로 제작되어 화려하게 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