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익, 영의정 6번의 전대미문 기록의 비밀 두 번째
임금이 신하에게 집을 지어주겠다고 하자 신하가 사양합니다.
다시 한번 임금이 집을 지어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자 그 신하는 아예 고향을 떠나 멀리 가버리겠다고 거절합니다. 임금은 지어준다고 하고 신하는 한사코 거절하는 이런 이상한 모습은 계속 반복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리고 이 일의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누가 이길까?
이 일은 지금으로부터 380여 년 전인 1630년 벌어진 인조 임금과 이원익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이원익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선조, 광해군과 인조 세 임금에 걸쳐 재상을 지낸 인물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명의 장군 이여송과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인조는 이원익이 1623년 77세의 나이로 관직에서 은퇴하자 잔치를 베풀고, ‘궤장’을 내려주었습니다.
이원익이 벼슬에서 물러나 오리동에 살 때 하루는 이원익의 안부가 궁금한 인조가 승지를 보내 살펴보게 했습니다. 이원익의 집을 보고 온 승지가 인조에게 이원익이 비바람이 들어오는 무너져가는 작은 집에 살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 두 칸 초가가 겨우 무릎을 들일 수 있는데 낮고 좁아서 모양을 이루지 못하며 무너지고 허술하여 비바람을 가리지 못합니다."
인조는 40여 년이나 재상을 지낸 이원익은 모든 관료의 스승으로 본받아야 할 인물인데 그의 집이 허술해서야 되겠냐며 집을 지어주겠다고 한 것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원익은 자신의 집을 짓는데 백성들을 동원하여 고생시켜서는 안 된다며 단칼에 거절합니다.
다시 인조가 집을 지어준다고 하고 이불을 내리자 이원익은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려고 준비합니다.
그래서 인조가 다시 승지를 보냅니다
" 이렇게 청렴한 검소한 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일이다. 집을 짓는 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고향을 떠나면 내 마음이 불안할 것이지 사양하지 말고 받아달라"
그래도 이원익은 거절합니다.
"듣자 하니 명나라와 청나라의 군사가 평안도에 자주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런 불안한 시기에 신하의 집을 짓는다면 백성들의 불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자, 다시 인조가 승지를 보냅니다.
“백성들은 당신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으므로 기꺼이 집을 짓는 일에 참여할 것이오. 또한 내가 청렴한 신하에게 집을 내리는 것을 보고 다른 관료들도 많은 것을 느낄 것이니 거절하지 마시오.”
결국 이원익은 임금의 청을 받아들여 완성된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인조가 현판을 내려 주었는데 그 이름이 관감당입니다. 관감당이란 신하와 백성들에게 이원익의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 자세를 “보고 느끼게 하고자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입니다.
인조반정을 비롯한 정치 격변기에 세 임금의 영의정, 그것도 6번의 기록을 세운 이원익.
이 정도 하려면 재상 40년 해도 초가삼간이 아닌 초가 두 칸에 비바람을 막지 못하는 집에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임금님과도 꼿꼿이 배틀하면서요.
"자꾸 집 지어준다고 하면 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