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명재상, 흰색 매니큐어를 하고 사진을 찍다

이원익, 영의정 6번의 전대미문의 기록의 비밀 첫 번째

by 랄라라

조선시대 최고의 재상은 누굴까?

황희, 맹사성을 주로 떠올릴 것이며, 하륜이나 채제공을 떠올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으나 나에겐 단연 오리 이원익이다.


조선의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 안으며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대쪽 같은 성품으로 귀양살이를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영의정이란 어떤 벼슬인가? 일인지하 만인지상! 왕 아래 최고의 관리로 모든 관리의 정점이자 으뜸이다. 선조가 임진왜란을 극복하기 위해 영의정으로 선택한 인물, 그 선조의 신하들을 싹 다 바꾸며 왕위에 오른 광해군이 영의정으로 선택한 인물, 그 광해군을 쫓아내고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된 인조가 영의정으로 선택한 인물이 이원익이다. 선조와 광해군, 인조까지 모두 이원익이라는 신하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일을 잘해서이다.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이원익만한 사람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인조는 나이가 많았던 81세의 이원익에게 벼슬을 내리며 이를 해달라고 한 기록이 있다.


그 이원익의 첫 번째 이야기.

흔히 관리들이 지방의 관직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그 지역의 관리와 백성들이 돈을 모아 '영세불망비(영원토록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아 세운 비석)', '송덕비(공덕을 기리어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세우는 비석)', '공덕비(공덕을 기리기 위해 그 행적을 새겨서 세운 비석)', '선정비(바른 정치를 베푼 관리의 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을 세우곤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흔히'다. 조선 팔도 곳곳에 이 송덕비가 없는 곳이 없다. 조선에 그렇게 발에 차일 만큼 많은 관리들이 '백성들이 스스로 그 관리의 덕을 기리기 위해 돈을 모아 송덕비를 세울 만큼' 많았겠는가? 백성들이 기꺼이 송덕비를 세울만한 관리가 있었는가 하면 부정부패를 일삼던 관리가 자신의 위장을 위해 백성들을 시켜 억지로 세우는 경우도 많았다.

화면 캡처 2021-01-18 091155.jpg
화면 캡처 2021-01-18 091556.jpg
20181105114234_qvpqihqf.jpg
각 지자체는 향토문화유산 관리를 위해 송덕비를 한 곳에 모아두기도 한다. 공산성/화성박물관/영남유교문화진흥원


더 심한 것이 생사당이다. 생사당은 살아있는 사람의 사당이다. 원래 사당이라는 것은 돌아가신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그런데 지방의 관리의 선정을 기린다는 이유로 하급관리들이 백성들에게 건립 비용을 거두어 살아있는 사람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낸 것이 생사당이다.


이원익의 이야기를 한다면서 송덕비와 생사당을 이야기 한 이유!


이원익은 1587년 안주목사로 부임해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전염병과 흉년이 겹쳐 마을이 사라질 상황에 부임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구하고 양잠을 가르쳐 경제를 활성화하였으며, 군 복무 기간을 줄여 생산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였다. 이러한 뛰어난 실무능력을 인정받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 관찰사가 되어 선조를 호위하고, 군사를 모았으며, 군사 지휘관을 길렀다. 의병장과 교류하여 그들을 지원하였으며, 이순신이 죽음의 위기에 섰을 때 권율과 함께 적극 변호하여 목숨을 보존할 수 있게 하였다. 1599년에 평양성 전투를 승리하면서 그 공으로 영의정이 되어 평안도 관찰사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이때 평양의 관리들이 세운 것이 이원익의 초상화를 그려 모신 이원익 생사당이다.


임진왜란의 어려운 시기에 지어진 생사당을 우린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평양 하급관리들의 잘못된 폐습일 수도 있고, 그만큼 이원익의 덕이 높았을 수도 있다. 여하튼 부정부패한 관리와 달리 이원익은 자신의 생사당이 세워졌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2편에 적을 예정인 관감당 이야기에서는 이원익이 얼마나 사상 최강의 청백리였는지를 알 수 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원익이 사람을 보내 생사당을 허물고, 초상화만 가져오도록 하였으니 말이다.

아래 초상화가 이원익 생사당에 있던 초상화로 48세의 이원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681eef8f1536175700430.jpeg
사본 -681eef8f1536175700430.jpg
이원익초상화/충현박물관

이 그림에서 특이한 점 하나! 이원익의 손을 보면 흰색 매니큐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원익 선생님은 폼생폼사의 패션리더였을까?

흰색 매니큐어를 왜 했을까?

조선시대 선비들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교양이 있었다. 그중 활쏘기나 그림, 악기 연주는 필수였는데, 주로 선비들이 즐긴 악기는 거문고였다. 그런데 거문고를 연주하다 보니 손톱이 계속 부러지는 것이다. 그래서 거문고를 켤 때 손톱이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약품을 바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손톱 이야기를 왜 하냐고?


이 그림이 있는 충현박물관은 이원익이 살던 종갓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곳이다. 이 충현박물관은 대부분의 유물이 한자로 된 책이다. 아이들과 함께 충현박물관에 갔을 때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까? 오늘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워크시트(활동지)와 함께 박물관 활동에서 중요한 체험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한다.

활동지든 체험활동이든 박물관에서 아이들과의 활동은 친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잘 지켜야 한다. 너무 낯설면 잘 받아들일 수 없고, 너무 익숙하면 재미가 없다. 낯선 경험을 제공하면서도 그 경험이 평상시 자신이 경험을 상기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활동이라고 할 수 있고, 유의미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초상화를 볼 때 그 초상화를 바라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눌 수 있을까?

애초에 초상화라는 것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말이다. 그래서 이 초상화와 관련하여 두 가지의 체험활동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이 초상화를 가지고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문제를 제시한다.

"세계적인 도둑 다 훔쳐가 조선시대의 초상화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곳곳의 박물관에서 초상화를 훔쳐왔습니다. 그는 가짜 초상화를 만들어 바꿔치기를 함으로써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다훔쳐가 그린 이원익 초상화의 가짜 복제본 사진을 미리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복제본은 몇 군데 다른 점이 있다고 합니다. 다훔쳐가 바꿔치기를 할 수 없도록 다른 점을 찾아주세요"

681eef8f1536175700430.jpeg
다훔쳐이원익.jpg

혹시 틀린 그림 찾기를 좋아하거나 시간이 되시는 분은 찾아보자.

예전 파일이 없어 오랜만에 포토샵을 만지니 잘 모르겠다.

아이들에겐 다른 점이 몇 개라고 이약기 하지 않는다.

그럼 계속 찾으려고 이 앞을 떠나지 않는다.

원래 아이들은 실제 초상화와 살짝 바꾼 그림을 비교하면서 보는 거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사진 2개를 보고 찾아보도록 하자.

왼쪽이 원본, 오른쪽이 복제복이다.

참고로 다른 점은 10개다.


이 다훔쳐 문제의 매력은 이 문제가 없다면 2초도 보지 않을 이 그림을 아이들이 몇 분이고 세부적인 부분 하나하나까지 5분이고 10분이고 자세히 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 선생님, 이 초상화, 좀 멋진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초상화 옷에는 학이 두 마리 그려져 있는데 왜 이 그림에는 한 마리가 그려져 있나요?" " 손톱이 왜 하얗지요?"


문화유산과 친해지기는 오래 보고, 자세히 봐야 한다.

자연스럽게 놀이처럼 오래보고 자세히 보게 하는 다훔쳐다.

자세히 보면서 손톱이 왜 하얀색인지, 이원익의 이 초상화가 그려지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간다.


밖에는 이원익 선생님이 거문고를 연주하던 탄금암이 있다.

준비한 거문고를 가지고 가 탄금암에 앉아 거문고를 튕겨보는 연출을 해본다.

유적지의 매력이다. 시간만 다를 뿐이다. 이원익이 앉아 거문고를 켜던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앉아 거문고를 켠다. 이때 사진을 찍어주되 폴라로이드로 찍어 바로 가질 수 있도록 한다. 그래야 그 감흥이 더욱 크다.


사진_0_4.jpg
chunghyun3009_0422.jpg
교사연수/아이들과 박물관에서 놀자 사진


그다음 이야기는 다음 편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열 개의 벼루에 구멍을 내고 천 개의 붓을 닳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