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 5일차. 맞추픽추로 가기위해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이라는 성계투어를 신청하여 떠났다. 이 투어는 파란색 우루밤바 강을 따라서 여러 잉카들의 유적들이 모여 있는 계곡을 따라 여행하는 것이다. 친체로, 모라이, 살리네라스, 오얀따이땀보를 거쳐 마추픽추가 있는 아구아스칼레엔테스까지 가는 일정이다.
오후에 도착한 오얀따이땀보.
오얀따이는 잉카 장군의 이름이고 땀보는 잉카어로 잉카의 주요지점에 세워진 숙소, 창고, 요새 등의 기능을 지닌 곳을 말한다. 오얀따이 장군의 요새라는 의미인데 로마제국이 9km마다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었듯이 잉카제국의 역과 같은 도시이다. 이 곳은 스페인 정복자들과 전쟁에서 3년이나 버텨낸 도시이며, 잉카가 고구려의 살수대첩처럼 막아두었던 강물을 열어 유일한 승리를 거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계단식 유적지이다. 경사 45도쯤 되는 300계단(약 150m)은 계단 하나하나가 사람 키보다 높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기어서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가면 태양의 신전이 나온다. 태양의 신전은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42톤의 돌을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려 정교하게 쌓았다.
이런 유적지는 많다. 중국 자금성 해자를 쌓기 위해 파낸 흙을 쌓았더니 유일하게 자금성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산이 된 경산이 그러하고, 수백년의 기간에 걸쳐 지어지는 이탈리아의 성당들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규모의 건축물들을 바라보며 감탄보다는 그 당시 백성들의 어려움이 먼저 떠올려진다. 철을 사용하지 않았던 잉카제국이 수십톤의 돌을 캐내어 정교하게 쌓은 일이란 얼마나 고된 노동이 필요한 일인가? 그 노동은 고스란히 잉카의 일반 주민들이 겪어야하는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본다면 아픔의 역사며, 수없이 많은 고통을 딛고 만들어진 유적지이다.
그래서 마추픽추를 들어가기 전 가장 잉카제국적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지 오얀따이땀보에서 조선을 개국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던 정도전이 떠올랐다.
정도전은 새로운 수도 한양을 설계하면서 어떻게 해야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잘 할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
근정전이니 사정전이니 하는 이름도 왕의 권리가 아니라 왕의 의무로서 백성들을 위해 '근면하게 정치를 하고', '생각을 하면서 정치를 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은 왕인 이성계에게도 대면하여 이야기한다.
“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 그 가치가 있다.”
잉카의 오얀따이땀보에서 정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리더가 어떤 생각을 가져야하는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