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그리고 조금만 양보하기
나는 회사를 그만 둔 백수이긴 하지만 남편이 출근을 위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같이 일어난다. 남편이 샤워를 하는 동안 나는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요리 솜씨가 없어서 간단한 음식만 준비한다. 남편이 나보다 요리를 더 잘 하는 것은 우리 시어머니께는 비밀이다.
항상 시부모님댁에 들르면 시어머니는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주시고 말미에는 꼭 레시피를 내게 읊어 주신다. 시어머니는 내가 부엌을 책임지는 여자로 남편보다는 잘 할 거라 믿기 때문이신 것 같다. 나는 잘 알아 듣는 척 웃으며 '아~ 정말요? 알겠습니다. 한번 해봐야 겠어요.'라고 항상 대답하지만 결국 그 레시피를 습득해서 실천하는 사람은 우리 남편이다. 그래도 계란말이 만큼은 내가 우리 남편보다는 한 수 위다.
남편이 식사 후 출근 준비를 하면 나는 식탁을 치우고 설겆이를 뚝딱 한 후 창문을 열어 살랑살랑 신선한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환기를 시킨다. 그리고 청소기를 돌린다. 아침잠이 많은 남편은 서툰 솜씨지만 본인을 위해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내가 예쁜가보다. 출근하기까지 연신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백수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에는 모든 시간이 나에게 맞춰져 있었다. 출근부터 퇴근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평일의 모든 시간은 내 차지였다. 그런데 일이 없는 요즘 나의 모든 시간은 남편에게 맞춰져 있다. 남편이 퇴근해서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가 내 하루의 마무리가 된다. 그러다보니 남편이 늦는 날이면 나도 잠을 잘 수가 없다.
하루는 전 날 늦게까지 야근한 남편을 기다리느라 잠을 설쳐 뜬 눈으로 밤을 센 적이 있다. 남편이 일어날 시간이 다 되서야 선 잠을 잘 수가 있었는데 그걸 모르는 남편은 습관처럼 아침이 되자 나도 같이 깨웠다.
그날은 너무 힘들어서 못일어나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눈을 계속 감고 있었는데 우리 남편은 내 맘도 모르고 매몰차게 나를 깨웠다. 졸리다는 잠 투정도 해보았지만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금새 잠이 깼다.
결혼하고 우리 둘이 같이 맞이했던 첫 날은 설렘보다는 낯설음이 컸다. 우리 엄마는 야채 위주의 저염식을 자주 하셨었고 나는 아침에 입맛이 거의 없어서 웬만하면 시리얼이나 야채 샐러드 등 간단한 음식을 자주 먹었었다.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는 전라도가 고향이신 시아버지의 입맛에 맞춰 간을 강하게 하시고 아무리 이른 새벽이라 하여도 가족들이 따뜻한 밥을 먹고 출근 할 수 있도록 매번 새밥을 지어 주셨다고 한다. 그 덕에 우리 남편은 아침은 꼭 한식을 먹어야 한다.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뜻한 밥에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매콤한 김치찌개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후딱 비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보니 입맛도 식성도 제각각이다.
그 낯선 첫 날이 지나고나서 우리 남편은 생존을 위해 저녁시간에 다음날 아침에 먹을 식사를 미리 준비해 놓기 시작했다. 나는 일찍자고 일찍일어나는 편이어서 아침에 먼저 일어나서 남편이 만들어 놓은 국이나 찌개를 따뜻하게 데워 다른 반찬과 같이 준비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참 독립적으로 키우셨다. 공부나 내 미래에 대해 일절 관여를 하지 않으셨고 자유롭게 키우셨다. 반면에 우리 시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기대가 크셨던 것 같다. 어릴 적 학원부터 커 갈 때에도 이런 저런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내게 전화나 문자를 자주 하지 않으신다. 연락이 없으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며 어련히 잘 지내겠거니 하신다. 우리 시어머니는 전화와 문자를 매우 자주 하신다. 살뜰히 안부를 물으시고 비오는 날이면 우산 꼭 챙기라 하시고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마스크를 꼭 쓰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신다. 그런 시어머니를 우리 남편은 꼭 빼닮았다. 출근하면 출근했다고 커피마시면 커피 마신다고 점심 먹으면 점심 먹는다고 퇴근하면 퇴근한다고 전화와 문자를 꼬박꼬박 한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할 때면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가 만만찮다.
처음에는 이런 남편과 시어머니가 참 힘들었다. 나는 다 큰 어른인데 왜 이렇게 걱정을 많이 하는 걸까!? 귀찮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여 대부분 두 사람의 잔소리가 한 쪽 귀에서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우리 남편과 시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임을 느낀다. 가끔은 내가 먼저 문자나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이것저것 챙기기도 한다.
오랜만에 남편과 연애했던 시절 사진을 찾아봤다. 그리고 최근에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니 함께한 세월만큼 우리는 참 닮아있었다. 같이 그리고 조금씩 양보하다보니 우리는 어느새 얼굴까지 서로 닮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