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상대를 이해하는 극한점이다. "
(팔만대장경)
수십 년간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사랑을 하고 결혼이란 새로운 삶의 여정을 함께 할 때에는 달콤한 행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내가 우주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우리 남편을 이해하고 나와 다름을 쿨하게 인정하기까지 우리는 여러 전장을 같이 누볐다. 그리고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극한점에 이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었다.
나와 남편이 거쳐온 수많은 전쟁터 중 식성을 극복하는 일은 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시작은 우리가 각자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서로의 긴장감을 타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우리 엄마는 최신 유행하는 식재료에 무척이나 밝으시다. 아침저녁으로 주부들이 자주 청취하는 프로그램은 다 섭렵하시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건강 정보 프로그램은 바쁘더라도 꼭 챙겨 보신다. 이런 프로그램에는 전 세계의 슈퍼푸드란 슈퍼푸드는 다 나온다. 그 어려운 이름들도 척척 외우시고 몸의 어딘가 불편하다고 얘기하면 그곳에 좋은 음식도 꽤 정확하게 추천해 주신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그 날 배운 새로운 건강한 식재료는 한 번쯤은 활용하여 저녁 메뉴에 선보이신다.
우리 엄마가 만드는 집밥은 톡톡 튀는 팝핑 캔디 같다. 항상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저염식으로 한식을 주로 하시지만 낯선 외국의 슈퍼푸드가 첨가된 우리 엄마의 집밥은 왠지 모르게 개성이 뚜렷하다. 나는 나름 이런 엄마의 음식을 좋아한다.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음식은 아닐지라도 가족의 건강을 지극히 염려한 엄마의 사랑이 가득한 정성스러운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크다.
남편이 처음 우리 집에 인사 왔을 때었다. 우리 엄마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이것저것 준비하셨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더니 바쁜 엄마를 보니 내심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런 엄마의 정성을 보며 나는 우리 남편이 예비 사위로서 장모님의 밥 한 그릇쯤은 거뜬히 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날은 우리 엄마가 상다리가 휠만큼 상 한 가득 음식을 차리셨다. 잔치 음식이란 음식은 죄다 모아 줄지어 상을 가득 채웠는데 모든 음식이 각종 재료들로 과하리 만큼 화려했다. 밥에는 백미와 현미, 렌틸 콩 등 여러 종류의 잡곡이 무성했고 정성 들여 푹 고운 소갈비에는 전복과 은행에 각종 야채가 즐비했다. 상큼하고 아삭한 오이 무침과 홍어 무침 그리고 마치 사계절을 표현한 듯한 잡채뿐만 아니라 다양한 양념으로 버무린 나물들이 꽉 차 있었다. 엄마는 예비 사위를 배려해서 평소보다 간을 조금 세게 했다. 이 정도면 우리 남편도 잘 먹겠거니 했는데 웬걸, 밥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전라도가 고향이신 시아버지의 식성 때문에 서울 출신이신 시어머니의 음식은 감칠맛과 간이 세다. 하지만 꼭 필요한 재료만 넣으시기 때문에 단아한 매력과 함께 적재적소에 알맞게 쓰인 각종 양념은 어우러진 진한 맛을 낸다. 평소 쌀밥이나 백미에 약간의 현미나 흑미가 들어간 밥을 주로 먹었던 남편에게 우리 엄마의 잡곡밥은 한 숟가락만 먹어도 배가 불러오는 신기한 맛이었나 보다. 밥 반 그릇을 먹더니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이를 못 먹는 남편은 오이가 들어간 오이무침과 홍어 무침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서운한 나머지 내가 어떻게 한 그릇도 못 먹냐고 뾰로통하며 핀잔을 줬더니 우리 엄마는 처음이라 낯설어서 그럴 수 있다며 남편 편을 들어주었다. 결국 대부분의 음식이 덩그러니 상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날의 기억은 내 가슴속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며 뚜렷이 새겨졌다. 그리고 남편의 귀에 피가 나도록 한 그릇도 못 비운 걸 두고두고 나무랐다.
우리 집에 다녀온 후 나는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옛날에는 귀한 손님이 오면 갓 지은 흰쌀밥으로 대접했다고 하시며 시어머니는 고슬고슬 백옥 같은 쌀밥을 지어서 주셨다. 담백하고 시원한 소고기 뭇국에 조기구이, 달짝지근한 불고기와 다양한 집 반찬을 곁들어 한 상을 차려주셨다. 시부모님 앞이라 긴장한 탓인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기도 했지만 다양한 잡곡이 들어간 밥만 먹어왔던 터라 흰쌀밥으로는 포만감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시부모님 집을 나오자마자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후딱 해치웠다. 그런 모습을 본 우리 남편도 어이가 없었던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예할 때는 몰랐던 서로 다른 식성을 낯설어하며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우리 엄마 음식 중에는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 남은 전을 넣고 자작자작하게 끓인 김치찌개가 있다. 매콤한 김치 국물에다 기름에 부친 전을 넣으면 그 국물이 전에 깊게 스며들어 짭조름한 맛이 적당히 밴다. 그 전을 김치랑 밥 위에 얹어서 먹으면 명절 내내 기름진 뱃속이 중화되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맞이했던 명절날, 시어머니께서는 정성스럽게 남은 명절 음식을 한 아름 싸주셨다. 둘이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지만 그 정성을 생각하면 버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다 먹기 위해 우리 엄마가 자주 해주셨던 것처럼 전을 넣은 김치찌개를 먹자고 남편한테 제안했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음식을 먹을 때 그 고유의 맛을 해치는 쓸데없는 재료를 우리 남편은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에게 이런 스타일의 음식은 잡탕에 불과하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매우 섭섭하여 잠자리에 들 때까지 무언의 시위를 혼자 이어갔다.
식성의 차이로 생기는 사소한 다툼은 우리의 일상에서 비일비재했다. 단순히 라면을 끓일 때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라면에 다진 마늘과 깻잎, 청양고추, 파 그리고 계란을 넣어 먹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라면에는 그냥 파와 계란만 넣어 먹는 걸 좋아한다. 나는 콩나물이 들어간 시원한 김칫국을 좋아하는데 우리 남편은 구수한 된장국을 더 좋아한다.
가끔은 나와는 다른 남편 때문에 삐지기도 하고 또 가끔은 남편을 위해 양보하며 남편이 먹고 싶은 대로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러자 평행선만을 달릴 것 같았던 둘의 식성도 시간이 지나니 점점 하나의 선으로 포개져갔다.
오늘 오랜만에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에 시어머니는 우리 둘의 건강을 걱정하셨다. 그리고 두 손 가득 싸오신 음식을 식탁에 위에 올려놓으셨다. 우리 남편은 오이라면 질색을 하는데 시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오이지와 오이소박이를 만들어서 가져오셨다. 나는 속으로 내일 아침에 오이지를 참기름에 무쳐서 밥이랑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잘 익은 열무김치 한 통이 보였다. 나와 남편은 서로 눈을 쳐다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렇게 얘기했다.
" 소면으로 열무국수 해 먹자!!"
서로 다른 식성은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서로 섞이고 희석되어 둘 만의 레시피로 버무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