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질 때가 있다. 딱히 어떤 계기가 있거나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니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 또 어떨 땐 10년도 더 된 일이 떠올라 우울하거나 괴로울 때도 있다. 가끔.. 아주 가끔은 너무 행복해 미칠 지경일 때도 있다.
그런 날엔 운이 없게도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남편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 이유 없는 짜증을 받아내야 할 수도 있고 기분이 고양되어 에너지가 넘치는 나를 살살 달래어 가라앉혀야 할 수도 있다.
같이 데이트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분명, 나는 데이트라는 말에 바보 같은 함박웃음을 지을 정도로 기분이 좋고 설레었는데 "빨리 가자!"라는 남편의 말에 갑자기 토라져서는 나도 모르게 "나 안 갈래."를 외칠 때도 있다. 그 날 입은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인지 아니면 남편이 무슨 잘못을 한 건지는 몰라도 변덕이 죽 끓듯 한 날이 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오랜 기간 나를 지켜봐 왔던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직업이 네 남편이다."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가 대단하다는 우회적인 표현이다.
어느 날, 우리 남편이 평소와 다르게 곤히 잠을 잔 적이 있었다. 숨소리가 나긋나긋한 게 나는 그가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가 보다 생각했다. 살포시 그를 안아주며 그 행복한 꿈이 깨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큰 소리로 집이 떠나가라 화를 냈다. 은연중에 발현된 그의 잠꼬대였다. 나는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재미있는 건, 우리 남편도 본인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잠에서 깼다.
나와 다르게 우리 남편은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속으로 삭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우리 남편의 그런 성향을 큰 소리로 잠꼬대를 한 날이 돼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날, 그가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그렇게 큰 소리로 화를 냈는지는 잠이 깨자 꿈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로에게서 잊혔다. 비록 나는 그가 나에게 화를 냈을 수도 있겠다 하고 괜히 찔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리 부부가 싸우는 날은 그리 흔치 않다. 같이 산 날이 길어지면서 우리가 서로에 대한 애정이 쌓인 만큼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혹은 우리 남편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노력한 날에는 이상하게 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할 때 자신의 프레임에 상대방을 맞추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 또는 생각에 따라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는 대부분 미궁에 빠진다. 그리고 큰 오해라는 블랙홀에 빠져 자기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부부는 속에 있는 말을 쉽게 꺼낸다. 오해로 생긴 미움은 서로에게 솔직해질 때 비로소 풀어질 수 있는데 부부는 이런 진솔함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있듯이 부부는 싸움을 하여도 화합하기 쉽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기 마련이다.
"당신이 바라는 모든 일을 하거나 당신이 바라는 모든 존재가 되진 못할 거야. 당신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우리가 자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를 서로 용기 있게 얘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될 수는 있다고 믿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침묵과 거짓말인데, 그건 사랑의 진짜 적이잖아."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부부싸움의 미학은 상대방에게 용기 있게 자신을 내보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남자의 집은 아내다"
-탈무드
나는 우리 남편에게 가장 따뜻한 집이 되고 싶다. 부부싸움으로 사랑하는 그가 추운 집에서 살게 할 수는 없다. 오늘도 내가 먼저 그에게 솔직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