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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Feb 04. 2024

우리나라에는 지구를 위한 세제가 없다

 남편이 세탁 세제 사야 한다며

원래 쓰던 세제는 비싸바꾸자고 한다.


 결혼하면서 둘의 살림 합쳤을 때,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소다로만 빨던 나의 방식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세제를 사자고 했었다. 땀이 많은 남편이 자연스레 빨래 담당이 되었기에 담당자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야 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세제 중에서 가장 친환경스러웠던 세제인 N*를 추천했다.


 캐나다 브랜드인 N*친환경 성분인 건 물론이고 세제통도 플라스틱이 아닌 알루미늄통에, 가루 세제라 액체 세제보다 방부제가 필요 없는 세제였다. 그리고 인체 무해와 세척력으로만 홍보하는 다른 세제와는 달리 넬리는 얼마큼 지구 환경에 무해한지에 대한 것도 주요 마케팅 포인트였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삶을 강조한”이라는 N*의 마케팅 문구를 보여주며 남편을 설득하였고 합의 하에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사용하였다.


 결혼 전,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소다로만 빨래했던 내 입장에선 웬만한 세탁 세제의 세척력이면 충분했다. 얼룩이 티 나는 흰 빨래 같은 경우는 따로 모았다가 과탄산소다를 추가하면 하얘지기 때문에 남편도 별 불만이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긴축 재정을 이유로 비싼 친환경 세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빨래 담당자의 의견이었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덜컥 일반 세제로 바꿀 순 없었다. 이제 우리나라 세제 중에도 진정한 친환경 세제가 생겼으리라 기대하며 국내산 친환경 세제를 찾아보았다.

 

 실망이었다. 여전히 세척력과 인체 무해 수준의 친환경일 뿐 지구를 위 진정한 친환경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기껏해야 식물성 성분을 썼다는 것일 뿐이었다. 코로나 겪으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지만 관심만 많아졌을 뿐일까.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구나는 생각에 실망스러웠다.


 다른 친환경 세제를 찾아야 했다. 문득 독일 브랜드 F**가 떠올랐다. 예전에 식기세척기세제 고르다가 F**가 친환경 브랜드라는 것이 기억나 제품 설명을 살펴봤다. 100% 재활용 플라스틱이 눈에 띄었다. 이럴 수가! 100% 재활용 플라스틱이라니! 알루미늄도 썩는 데 500년이 걸리지만 플라스틱보다는 재활용률이 높다는 장점 때문에 N*를 선호했었는데 F**는 100%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세제통을 만든다는 것이다.


 네이버와 구글에 “F** ESG”로 검색했다. 그 기업의 경영 방식까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ESG 사업기회를 발굴하는 업무로 전환하면서 시장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하루에도 몇 개의 기업에 대해 “OOO ESG”로 검색한다. 게임업계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어떤 변화를 준비하는지, 건설업계는 얼마큼 ESG 경영에 관심을 두는지, 표면적으로만 하는지, 경영 방식에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등을 뉴스와 지속가능보고서를 읽으면서 살펴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사려는 물건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 기업은 친환경 경영을 진심으로 하는지가 궁금해졌다. 


 찾았다! 너로 정했어! 신나서 관련 뉴스 링크와 함께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꼼꼼한 남편은 신이 난 나의 카톡에 찬물을 끼얹었다. N**와 F**의 전체금액이 아닌 회당 비용을 계산하면 결국 N**가 F**보다 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고하라며 일반적인 세제 요금을 알려줬다. 거의 1/3 수준이다. 베이킹소다보다도 싸다.



 하지만 나는 환경주의자로서 아무리 긴축재정이라도 이런 일반세제를 선택할 수 없었다. 다른 비용을 아끼더라도 친환경 세제를 사용하고 싶었다. 마구마구 뒤지니 코스트코에서 3L x 2 대용량으로 사면  N**보다 싸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주 주말에 코스트코에 갔다. 코스트코에 있는 F**는 종이 박스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만 포장되어 있었고 쓸데없는 사은품도 없었다. ( F** 상품 중에 플라스틱 수세미를 사은품으로 주는데 친환경 세제를 팔면서 왜 플라스틱 수세미를 끼어 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반세제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N**보다는 싸고 친환경 세제이니 나와 남편의 합의점에 도달했다. 다만, 3L짜리라 세탁할 때마다 무거운 세제통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남편의 노고가 있기에 가능했다. 심심한 고마움을 표한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건 긴축 재정이라고 고른 세제 때문에 코스트코에 갔는데 우린 화려한 고기 코너에서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진정한 환경주의자는 채식인데, 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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