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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츠네 Aug 19. 2024

슐린 1

그녀의 이름은 슐린. 나의 가장 친한 외국인 친구다. 릴 적부터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옛 헬레니즘 문화처럼 낯선 2개의 세계가 융화되는 그런 경험은 낭만적이지 않은가. 취업을 확정하고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편하게 다닐 때에 외국인 친구만큼은 꼭 사귀고 졸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덤으로 국경 없는 사랑까지 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기대도 있었다. I-friend라는 외국인 학생과의 교류 프로그에 참여했고, 슐린은 그 프로그램으로 만난 중국인 친구. 녀는 예뻤다. 그리고 영어를 잘했다. 나도 제일 자신 있었던 외국어는 영어였다. 릴 적 달달 외웠던 경선식 영단어 덕분. 우리는 영어라는 제3의 언어로 교류할 수 있었다. 때로 "나는 바보입니다." 같은 한국말을 가르치면서. 그녀는 그런 놀림을 꽤 즐겼다. "너는 바보입니다."라고 맞받아치면서.


그녀가 한국에 머물렀던 6개월의 시간 동안 우리가 자주 만났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헤어지기 전에 그녀와 나는 막 유행하기 시작했던 스티커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때로는 그런 사진 한 장이 관계의 끈이 되어주기도 하나보다. 잊을 만할 때면 사진 속 우리가 보였다. 이듬해에 홍콩 여행을 가게 됐는데, 선뜻 그녀가 가이드가 되어준다고 했다. 중국은 땅 덩어리가 광활하다. 그녀가 살았던 항저우 쪽과 홍콩은 거리가 제법 됐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 홍콩 여행을 동행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와 3박 4일 홍콩 여행을 다녀왔다. 6월, 홍콩이 제일 무더운 날씨에 말이다. 정말 속옷이 젖어버리기 십상인 그런 날씨였다. 육수 내듯 땀을 뻘뻘 흘리는 그런 날씨에 디즈니랜드까지 다녀왔다. 그녀는 군말 없이 따라와 줬다. 여행 도중에 작은 다툼도 있었다. 내가 뱉은 'central' 단어 하나에 "Oh, Your english poor" 하는 것 아닌가. 네 발음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데 유치하게 "너는 잘하냐" 같은 작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요즘 세대 말로 하면 긁혔다고 할까. 그러나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께 다녔다. 여행 마지막날 밤에 그녀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사실 학교 다닐 때에 왕따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고. 그래서 자신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쉰짜이, 너와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뻐."

짧은 문장 속에 그녀의 진심이 꾹꾹 담겨 있었다.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고마움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는 그 어느 쪽도 진심을 담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새벽 일찍 귀국 편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잠든 그녀를 두고 먼저 나왔다. 고마웠다는 말과 다음에 한국에 놀러 오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그녀와 나 사이에 로맨스는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의 축에서 가끔 주고받았던 대화는 "How are you?"로 시작해 "Take care of you"로 끝났고 점점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국경 너머의 메시지는 바쁜 현실 속에서 점차 빛을 바랐다.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졌다. 내가 가는 길에 새로운 인연들이 나타났고, 시간이 정해준 상대와 바삐 만났다. 그렇게 슐린이 잊힐 때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쉰짜이, 잘 지내? 나 이번에 부산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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