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찰하고, 질문하고, 연결하는 실무자의 인사이트 기록
- 관찰하고, 질문하고, 연결하는 실무자의 인사이트 기록
『영감노트』는 일상 속에서 인사(HR)의 본질과 방향을 고민해보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바쁜 실무 속에서도 잠시 멈춰 생각해보는 이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인사이트로 닿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제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시선도 언제든 환영합니다.
한 HR 세미나에서 들었던 업무 자동화 사례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특히 한 스타트업이 최신 협업툴을 도입해 반복적인 HR 업무를 자동화하고, 업무 효율을 크게 끌어올린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요.
‘우리 회사도 저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 회사는 관리직만 약 5,000명, 기능직까지 합치면 2만 명에 달하는 큰 조직입니다. 규모가 크고, 이미 운영 중인 업무 시스템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협업툴 도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슬랙이나 노션 같은 협업툴은 없고,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와 팀즈만 사용하며, 모든 파일은 이메일로 주고받는 환경이라 업무 자동화 장벽은 더욱 높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 기존 환경에서 적용 가능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개선으로 가장 빠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 저는 ‘신규 입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신규 입사자의 몰입을 돕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온보딩’이라고 봤습니다.
우리 회사의 글로벌 공통 온라인 온보딩 교육은 총 6개월에 걸쳐 진행되며, 9시간 53분 분량의 필수 교육 콘텐츠와 직무별 추가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조직에서 제가 글로벌 HRD팀의 유일한 실무자인 상황, 그리고 매일 수많은 입사자와 퇴사자가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신규 입사자 한 명 한 명의 온보딩 과정을 세심하게 관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입사 시기도 제각각이고, 해외 법인이 50곳이 넘으며 언어도 다양하다 보니, 매달 수작업으로 안내 메일을 보내고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한 달에 한 번 신규 입사자들을 모아 온보딩 교육 안내 메일을 발송하는 정도에 그쳤고, 입사 첫날에 제때 안내 메일을 보내는 건 여러 이유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온보딩 완료율은 23%에 불과했었습니다. 당시 이직 초기였던 저는 이 수치를 보고 반드시 개선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세미나에서 들은 ‘자동화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죠.
온보딩 기간이 긴 만큼, 입사 첫날부터 1주차, 1개월, 3개월, 6개월 시점에 리마인드 메일이 자동으로 발송된다면 관리 부담은 줄이고 효과는 높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입사 첫날부터 6개월까지, 각 시점별로 자동 리마인드 메일을 보내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우리 회사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엑셀과 아웃룩뿐이라는 점이었죠. 그리하여, 제가 선택한 방법은 엑셀 VBA로 나만의 RPA를 직접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간단히 생각했습니다. “VBA로 메일만 보내면 되겠네?”
그런데 Outlook 연동부터 난관이 시작됐습니다. 보안 설정 때문에 코드가 멈추고, 첨부파일이 깨지고, 메일 서식은 제멋대로 변하기 일쑤였습니다.
하루가 디버그라는 단어와 함께 사라지고, 다음 날은 갑자기 코드가 잘 돌아가다가도, 그 다음 주에는 런타임 에러 438이라는 메시지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죠.
중간중간 ‘내가 이 코드를 완성해서 실행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지금 이 작업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문제를 고치고 해결하며 완성해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코딩 과정이 생각보다 흥미롭고, 도전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기초 코드를 완성한 뒤에는 몇 가지 추가 기능도 구현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죠.
물론 그 욕심으로 인해 주말 하루를 통째로 날린 적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메일 본문에 이모지를 넣어 가독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아무런 경험이 없던 저에게는 이모지 삽입조차 상당한 난관이었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코드. 아래는 실제 완성본의 일부입니다. 코딩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 코드를 실행하면,
엑셀에서 신규 입사자 목록을 읽고
아웃룩을 열어
시점에 맞는 안내 메일을 자동으로 발송합니다.
그리고 이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4개월이 지난 지금, 온보딩 완료율은 36%로 상승했습니다. 온보딩 기간이 6개월인 만큼, 아직 입사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인원이 많아 완전한 완료가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불과 4개월 만에 13%p 오른 성과는 꽤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이 제게 가르쳐준 건, HR의 몰입 설계는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비전 발표나 대규모 워크숍보다, 일상의 운영 과정에서 느껴지는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오히려 더 깊은 몰입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몰입은 매일의 디테일에서 자란다. 그 디테일은 ‘툴’이 아니라, 조직이 보내는 신호로서 기능한다."
작은 순간을 설계하는 HR의 손길이, 수천 명의 구성원에게 ‘회사에서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요.
온보딩 교육을 도입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교육이 제대로 이수되도록 관리하는 일입니다.
복리후생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제도가 정확히 안내되고, 불편 없이 쓰이도록 운영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종종 ‘새로운 제도’를 고민하지만, 실은 기존 제도를 ‘살리는 것’이 더 효과적인 개입일지도 모릅니다.
그 시작은 화려한 플랫폼이 아니라, 그저 엑셀 한 줄, 메일 한 통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몰입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단순한 구호나 한두 번의 큰 행사에서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도착하는 작은 개입들로부터 말입니다.
“HR은 실행하는 조직이다. 말이 아니라 운영으로, 제도가 아니라 경험으로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