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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공간 Sep 12. 2023

우린 모두 마음속은 어린이예요.

나의 어린 시절

평범한, 그렇다고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24살 그냥 사람


부모님께서 오빠를 낳고 6년 후 애타게 기다린 후 2000년 2월 20일에 저는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딸을 원하셨으니, 얼마나 소중하게 키워주셨는지 몰라요. 어렸을 때 저는 정말 조용하고 말썽 부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혼자 밥도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정말 효녀였데요. 하지만 몸과 마음이 커가면서 사춘기 때는 부모님 마음도 아프게 하고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저의 성장과정은 차근차근 말해줄게요.


 갓난아기 때부터 유치원 시절을 회상해 보면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요. 문득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정도예요. 오빠랑 장난감으로 싸우고 아빠한테 엄청 혼나서 둘 다 마당에서 벌서 있었던 기억뿐이에요.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같이 떠나보는 거 어때요? 여러분들은 초등학교 때 어떤 추억이 가득했나요?

저는 책 읽는 것을 엄청 엄청 싫어한 아이였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근데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거에 재미를 붙였다니 사실 저도 엄청 신기해요. 방학 때는 일기를 쓰잖아요? 일기도 다 밀려서 개학 전날에 엄마한테 혼나고 눈물을 흘리면서 썼어요. 엄마께서는 학구열이 불타오르셨는지 어렸을 때부터 영어학원, 논술학원 등등 보내셨어요. 혼자 버스 타고 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시험 보고 들어가는 영어학원에 보내셨는데 학원은 저에게 참 버거웠습니다. 10살짜리 아이가 버겁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면 이루어 말로 표현할 수 없네요.

class 별로 나뉘어서 수업을 하는 데 숙제도 많고 외국인 선생님과의 수업도 있었어요. 완벽주의 성격에다가 꼼꼼해서 숙제를 끝내는데 5시간이 걸리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그 나이에 엉엉 울면서 학원 다니기 싫다고 말씀드려 그만두었답니다. 고학년이 되니 공부할 것도 많아져서 수학학원까지 다니기 시작했어요. 소금물 공식 아세요? 중학교 선행을 했는데 저는 지금까지도 소금물 공식을 봐도 모르겠어요. 진짜 어렵고 많이 틀려서 머릿속에서 각인됐어요. 그래도 학원을 보낸 게 의미가 컸는지 초등학교 때 영어를 잡아두니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까지 도움이 되더라고요. 맨날 학교-학원-집이어서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놀지 못했어요. 학원 차량이 오기 전까지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그네 탄 그 정도예요.

   그 시절에는 바빴던 초등학생으로 자라왔어요.


<내 꿈은 피아니스트였어!>

 제 꿈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것을 좋아했고 초등학교 수업시간에도 책상을 건반으로 생각하고 그 위에다가 맨날 연습했어요. 선생님께 혼도 나면서 피아노를 좋아하는 아이로 불렸답니다.

   7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첫 번째 피아노 학원은 가정집에 피아노 세대 정도 있고 나이대가 어느 정도 있으신 선생님께서 차근차근 알려주셨어요. 이때 기본기가 탄탄하게 쌓인 거 같아요. 하농을 엄청 좋아해서 하루종일 하농만 연습한 거 있죠? 선생님께서 이제 학원을 그만 운영하신다고 하여 초등학교 근처 피아노 학원으로 5년 정도 다닌 거 같아요. 처음 들어갔을 때 한두 살 적은 동생들이 저보다 진도도 빠르고 잘 쳐서 속상했던 마음이 컸어요.


“나도 빨리 따라잡아야겠다, 나도 상을 타고 싶다” 이 생각으로 학원에 30분 더 남아서 연습하고 이때부터 욕심이란 걸 경험할 수 있었어요. 저의 노력을 열심히 봐주셨는지 피아노 대회에 나가보자고 제안도 해주셔서 3등이 적힌 트로피도 받아왔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한 노래에 꽂히면 10번, 100번 질릴 때까지 듣는데 어렸을 때도 이루마 님의 river flows in you곡만 무조건 3번씩 이상은 연주했어요.


 선생님께서 이사를 가신다고 하셔서 피아노 학원을 다시 알아봐야 했습니다.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유명한 학원이 있었는데 기존 학원에 다녔던 친구들도 다 그곳으로 간다고 하여 저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등록했어요.

 이때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이름은 예음 피아노 학원이었어요. 선생님께서는 칭찬해 주실 때는 아낌없이 해주셨는데 화내실 때는 호랑이 선생님처럼 정말 무섭게 다그쳤어요. 모든 아이들이 원장선생님을 무서워했지만 저는 무서움 속에 다정함을 느꼈는지 잘 따르고 연습을 꾸준히 했어요. 피아노 대회는 모두 다 참여할 수 있지만 사실 원장선생님께서 레슨도 해주셔야 하고 이 아이가 상을 탈 수 있을지의 가능성도 필요하다 생각해요. "도현아, 대회 경험도 있고 이번에도 피아노대회에 나가볼래? 하지만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씀해 주셨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해요. 제 자신이 대견했는지 친구들에게도 "나 이번에도 피아노 대회에 나가!"이렇게 자랑하고 다녔네요. 대회에 준비하기 위해 매번 피아노를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하고 혼나기도 하면서 잘 마무리하여 학년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무대에서 모두 다 숨죽이며 조용한 가운데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나의 연주를 들려주고 박수갈채를 보내주는 그 느낌이 참 뭐랄까? 이 순간만큼은 세상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구나...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좋습니다.

 중학교에 진학을 하였고 또한 1년에 한 번씩 교내합창대회를 주최했는데 반주자로도 활약하며 참 다양한 경험들을 쌓았고 피아노를 치는 순간순간들이 즐거웠어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국영수 학원에 집중하면서 피아노 학원을 병행하기 힘들었습니다. 중학교 때 '전교 5등'까지 하며 부모님께서는 점점 공부 쪽으로 길을 뻗길 원하셨고 중학교 3학년 때 저는 피아노학원을 접어야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서는 점점 피아노로 다시 전공을 쌓고 싶다, 예체능 쪽으로 가고 싶다 하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참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다시 피아노를 하고 싶은 마음을 계속 입 밖으로 꺼내질 못한 채 대학입시 준비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항상 삶에 대한 회의감과 우울감이 들 때마다 수백만 번씩 "내가 예술 중학교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고 1이었을 때도 늦지 않았는데,,,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다고 말해볼걸" 이렇게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삶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20-22살이었고 저의 몸과 마음상태가 아프기 시작하다 보니 엄마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TV를 보고 있는 와중에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나왔는데 엄마께서 "피아노 연주하면서 선생님이나 그쪽 관련된 일을 했더라면 도현이가 많이 아프지 않았을 텐데"라고 건넨 말을 듣고 방안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다 보니 새로운 꿈도 생기면서 어린 유년기 시절의 제 자신을 이제 감싸주면서 보내주었어요. 제 상황을 비추어보았을 때 다시 돌이키기에는 늦었기 때문에 모두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선택을 통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못해도 괜찮아요.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꿈도 새로이 희망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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