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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공간 Sep 15. 2023

23살, BIG5 병원 면접을 불참하고 제주도에 가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 한 첫 번째 선택

 제목 그대로 BIG5 병원 면접 하루 전날을 남겨두고 비행기 티켓을 끊고 제주도에서 3박 4일간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 4년간의 많은 고민들을 글로 간결히 풀어내기에는 참 어렵네요. 세부적인 디테일이나 공부/취업/여러 경험은 이후의 글에 찬찬히 작성하겠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 방향을 주체적으로 정하지 못한 아이.

나의 꿈은 무엇일까?

자퇴와 휴학을 계속하고 싶어서

맨날 밤마다 울던 대학생.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야?

돈, 미래, 다른 진로 모든 게 두려워.


  이 다섯 문장으로 저의 대학시절 4년간을 표현할 수 있겠네요. 저는 간호학과를 졸업했고 학과 특성상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는 제가 유일했어요. 간호학과의 친구들을 보면 거의 90프로는 자신이 원하거나 오래전부터 간호사를 꿈꾸는 친구들이 진학을 했고 5프로는 성적에 맞추어, 저는 부모님의 권유로 입학을 했습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도 부모님과 잦은 마찰과 갈등 속에서 계속 부딪혀왔고 제가 추구하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 스스로에게 없어서 그 싸움에 패배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안정적인 직장이 중요하다고 하셨고 간호사 면허증만 있으면 나중에 먹고살 수 있다, 또한 친척 중에서도 간호사가 있었기 때문에 압박을 조금 더 하셨어요. 대학 시절은 재밌던 추억도 있지만 거의 모든 것이 불행했던 것 같아요. 그 이유는 4년 간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주변사람들이 물어봅니다. 너 그렇게 간호사 하기 싫은데 왜 공부해? 하지 마!


  간호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공부를 놓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수석졸업, 학생회 3년, 사회봉사, 토익 850점, 학술동아리회장, 근로장학생 등 다양한 대학 경험을 했네요. 저는 모든 선택을 확실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성격입니다. '결정, 선택'에는 항상 '불확실성, 두려움'이 가장 제 머릿속을 채우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기 위한 수단인지 자그마한 일들도 책임감을 가져요.

 또한, 학생의 본분은 공부죠. 꿈의 길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수업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시간과 돈낭비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퇴와 휴학도 다 강력히 안된다는 부모님의 입장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성적이라도 받고 졸업하자! 였어요.

 열심히 하는 모습과 우수한 학점을 보여드리면 다른 진로를 해보고 싶다 할 때 반대를 덜 하시질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바보 같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저를 지키기  위한 작은 결정이었습니다.

 간호학과 4년은 아시다시피 힘듭니다. 포기하고 싶고 지친 순간이 찾아올 땐 숨을 고르고 다시 최선을 다 해 임했습니다. 이후 매 학기마다 장학금을 수여하고 추천을 통해 좋을 기회까지 얻으며 교수님께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내가 판을 바꿀 수 없다면 일단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그것은 밑거름이 되고 오히려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

[계속되는 반복.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나]

 간호학과의 취업은 보통 4학년 때 시작합니다. 4학년 때, 하나둘씩 병원에서 공고를 내고 그에 맞추어 자소서, 인적성 검사, 필기, 면접 등 취업을 준비합니다. 병원에 합격한 상황에서 간호사 국가고시를 보고 바로 내년에 병원에 입사하는 루트예요.

 

  모든 상황에 열심히 하는 저였죠. 그러다 보니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병원에 갈 수 있는 스펙이 저절로 쌓이게 됐어요. 동기나 선배들은 참 부럽다고, 멋지다, 나도 가고 싶은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고통스러웠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 안은 이미 썩어가고 있었죠. 일단은 친구들이 취업을 하니까 big 5 병원에 자소서를 넣었고 덜컥 시험까지 붙어 면접만 남겨두고 있었어요.


간호사를 안 하고 싶긴 한데 ,,,  그렇다고 병원을 안 가는 것이 맞을까?

간호사라는 일이 무서워서 못하는 것일까?

임상에 가지 않으면 친구들과 교수님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추어질까?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그랬다. 면접일이 다가올수록 계속 뫼비우스의 띠처럼 고민의 고민만 거듭했다. 단 한순간도 마음이 편하질 않았던 나.


도현아, 그냥 다 내려놓고 아무 생각하지 말자.

23살 내가 처음으로, 내 인생에서 한 스스로의 선택은 면접을 불참하고 제주도로 떠난 것이다.


[그래, 천천히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 보자. 두려움도 걱정도 잠시만 내려놓자]


 제주도로 떠나는 날은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모든 게 설레었다. 혼자 여행이라니, 비행기도 오랜만에 타보고, 수학여행 이후로 제주도는 5년 만에 가보는 것이었다. 제주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고 동쪽/서쪽/남쪽 표현하는 것도 새삼 처음 알았다. 여행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자는 곳만 예약해 두었다. 7월 더운 여름에 혼자 떠난 여행은 참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햇볕이 내리쬐어 땀이 흘러도 1시간 반을 계속 걸으면서도 계속 미소를 지었다. 제주의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눈물도 흘렸다. 자연에 잠기고 새로운 환경, 새로운 공기,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니 내가 정말 작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깨달음을 얻었다. 면접을 안 가서 어떡하지라는 걱정 따윈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안아주고 감싸주었다. 처음 본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세요. 지금도 멋지지만 나중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될 거 같아요." 진심이 담긴 말을 건네주었다. 나의 고민을 진정히 들어주셨고 조언들을 귀담아 들었다. 또한 다른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세상이 참 넓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찬찬히 여행이 끝나면 살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음의 치유를 통해 진정한 나를 돌아본 여행이다. 더 열심히 살고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고 참 좋은 자극을 잔뜩 받아한 층 단단해진 나를 찾을 수 있었다.


  한 걸음 뒷걸음쳐보세요. 괜찮아요,
내가 놓치고 간 부분들, 내가 보지 못한 부분들을  알 수 있어요. 그것은 오히려 더 넓은 시야를 바라보게 만들어요.



#간호사 #간호학과 #간호학생 #대학병원 #제주도여행 #면접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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