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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Dec 28. 2022

묘하게 신경 쓰이는

애매하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나의 문체는 사실 나 스스로가 봐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라는 문체는 나름의 고민 끝에 결정한 문체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가장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이 문체였는데, 어떤 문체를 쓰느냐에 따라 글의 분위기가 바뀌고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무겁게 보인다고 하니까. 결국 지금 사용하는 문체는 내가 원래 사용하는 말투나 어제와는 괴리가 있는 편이지만 평소 정보를 전달하는 글을 쓰고, 글을 쓸 때 조금 더 편하다는 이유로 택하게 되었다.


내 평소의 모습을 아는 지인들이 내 글을 보면 평소와 다른 말투에 오글거린다는 말도 듣지만 나는 나의 문체가 썩 싫지 않다. 평소와 다른, 글을 쓸 때에만 볼 수 있는 문체를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 나의 문체를 고쳐나가며 정말로 나만의 글 형식을 잡아가는 것이 묘하게 기분이 좋다.


나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있는데, 십수 년 전이라면 성공한 사업가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완벽주의는 실현할 능력과 별개로 더 완벽하게 만들려는 성향이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수정(edit)의 수정을 거듭하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여전히 글을 하나 쓸 때마다 묘하게 다른 문체를 사용하곤 한다. 내 머릿속에는 항상 묘하게 신경 쓰이는 기분이 들어있는 것이다.





사실 모든 것이 애매했다

내가 지금 좋아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묘하게 신경 쓰인다는 마음이 시발점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미친 듯이 하고 싶다거나 한 번에 끌려버린 경우가 없었다. '묘하게' + '신경 쓰인다'는 말은 정말 애매함과 애매함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엔 이런 애매한 마음만 갖고 있는 내가 싫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미친 듯이 열광하고 빠져드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이내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내가 타협한 것은 이런 애매한 감정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었다.


애매한 마음으로 시작해 지금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묘하게 신경 쓰이는 정도임에도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시도해보아야 하고 또 도전해야 한다. 사실 '한눈에 반한다'는 말은 사랑을 함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베네핏이지만 '묘하게 신경 쓰인다'는 마음은 사랑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사건이 필요하잖아.


나는 그런 한눈에 반하는 사랑이 아닌 차근차근 알아가는 사랑을 해왔던 것이다.




2022 연말정산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 여전히 애매한 것들 투성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던 것도 새로운 취미로 들인 것들도 모두 묘하게 신경 쓰인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들이었다. 그랬던 것들이 이제 한 해를 마감하기까지 며칠 남지 않은 이 순간에 와보니 나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들이 되었다.


그러니, 2022년을 시작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모든 것이 애매하고 다른 사람에 비해 이도 저도 아니었던 나의 마음으로 인해 이렇게 풍요로운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처음부터 뜨겁고 확실했던 것에 비해 보잘것없어 보였을진 몰라도 더 귀 기울이고 더 바라보았기 때문에 끝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뜨거운 불이 아니라 따뜻한 손난로라는 것을. 작년 겨울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묘하게 신경 쓰이는 감정들을 조금 더 헤아려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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