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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Sep 03. 2023

내려놓는데 오래 걸렸어

Chat GPT가 시키는 대로 : 신발

<Chat GPT가 시키는 대로>는 하루에 한 편, AI가 정해준 주제로 글을 쓰는 작은 시도입니다.
AI의 발전으로 AI가 쓴 책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저 또한 이 흐름에 올라타고자 합니다만, 글을 써내려 가는 즐거움은 빼앗기고 싶지 않기에 시작해 보았습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았나. 느릿느릿 행동은 굼뜨고 뚱뚱한데 항상 비슷한 몇 가지 옷만 돌려 입는, 학창 시절 반에 꼭 한 명쯤 있던 친구. 나는 그런 학생이었다. 옷보다 게임이나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군대라는 곳을 가기 전까지는 그래왔다. 남자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군대에 가서 얻는 것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지역 안의 같은 동네.

대부분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

학교나 동네 등으로 인해 얼추 비슷해진 가정환경과 경제력.


태어난 이래로 근 20년 간 우리는 '얼추 비슷한' 사람들끼리 무리 지어 살게 된다. 성격도 외모도 다르지만 결국 큰 틀 안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려 지낸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군대에 가게 되는 순간 모든 울타리가 사라진다. 의미 없는 수준의 몇 가지 허들만 넘고 나면, 사실상 남자라는 성별 외에 모든 것이 무작위로 뽑힌 사람들끼리 같은 공간 안에 모인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은 부지기수,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 온몸이 문신으로 가득한 사람, 부모님이 세기도 힘든 돈을 보유한 사람 등 내 상식의 안에선 존재하지 않던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그간 쌓아온 가치관도 흔들리고 바뀌는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내가 그 경우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군생활 동안 살도 빠지게 되고, 어울리던 사람들이 달라지니 패션이니 하는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도 20년을 멈춰 있던 패션 센스가 살이 조금 빠진다고 갑자기 늘어나진 않으니 인터넷에 '옷 잘 입는 법' 따위를 검색했었다.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문구가 바로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었다.


신발만 잘 신어도 어느 정도 옷을 잘 입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였는데 썩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당시의 패션계는 말 그대로 스니커즈 시장이 급부상하던 시기였다. 조던의 역주행이나 칸예의 YEEZY 뿐 아니라 뉴발란스, 오프화이트와 나이키의 콜라보 등 지금에 와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신발들이 줄줄이 등장하던 시기였으니까. 하여튼 그 말에 꽂혔던 나는 되는대로 신발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더는 둘 곳이 없을 만큼 늘어난 신발만큼 내 자부심도 올라갔으나 퍽 오래가지는 못했다.

첫 번째로, 인플루언서라도 된 양 패션에 예민하고 트렌드에 발 빠른 것은 역시 나와 맞지 않았다. 그럴 성격도 되지 못할뿐더러 센스도 부족했다.

두 번째로, 즐겁지 않았다. 무언가에 쫓기듯 사고, 모으고, 찾아봐야 했을 뿐 그 일련의 과정은 나에게 학창 시절의 성적표, 직장생활의 인사고과만큼이나 나를 옥죄여 왔다.


그렇다고 내려놓긴 싫었다. 아니 내려놓을 수 없었다. 기껏 모은 신발을 버린다는 것은 다시 학창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라면 모를까, 세상물정 다 아는 지금에 와서야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지켜내려 했다. 그럴수록 나를 좀먹는 줄도 모르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냐 하면 아쉽게도 그런 건 없다. 대부분의 현실이 그렇듯 드라마처럼 엄청난 변화가 있거나 운명적인 상황이 찾아오진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게 싫었다. 자연스레 내려놓다 보니 어느샌가 매일 신는 신발 몇 켤레만이 남았다.


확실한 건 이제야 내 신발을 찾은 듯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애써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었던 지난 수년 동안을 보상받는 듯, 애써 꾸미지 않고, 애써 나를 속이지 않는 지금이 가장 멋진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더 빛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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