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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시이어질연 Jun 28. 2022

브런치를 시작하며

시연(時蓮)과 글의 인연

문화예술산업에 재직하며 글의 시대의 종말을 말해왔던 나는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브런치를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글과 함께 자라왔다.


적지 않은 시간의 외국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시작한 중학교 시절부터, 백일장 대회는 나에게 합법적인(?) 땡땡이 수단이자 상장과 어른들의 칭찬을 안겨주는 이벤트였다.


그렇게 나의 펜 끝은 외고 입시 자소서와 대입 논술시험까지 이어졌고, 글로써 인생에 꽤 좋은 덕을 본 편에 속하게 되었다.


글의 힘을 믿었던 대학시절, 친구들 몇몇과 음악과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글들은 그저 많은 커뮤니티의 글들 중 하나로 묻혔지만, 사람들의 좋은 반응으로 몇 번의 플랫폼을 옮기며 웹 매거진을 설립하게 된다.


웹 매거진 시절 진행했던 인터뷰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인터뷰. 저 때처럼 다시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후로도 타 매거진의 객원 에디터로서 일하면서 삶에 글을 이어놓았던 나였지만, 글에 대한 현실은 내 믿음과는 달리 꽤 냉정했다.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사람들은 보다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콘텐츠를 찾았고 SNS, 카드 뉴스, vlog 등은 글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해갔다.


"글은 돈이 안돼"


새로운 시장의 강자들 속에서 글은 힘을 잃었다. 설령 남아있는 글 마저도, 짧은 문체와 자극적인 표현으로 간신히 세상에 붙어있을 뿐이었다.


글보다 이미지가 중요해진 사회 속에서 나 역시도 나름의 절충을 찾아보기도 했다 @odiearth


나는 그렇게 결국 글의 손을 놓았다.


이후 음반제작사를 포함한 문화예술산업에서 재직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며, 동시에 글의 시대의 종말을 말했다.


그러나 2022년의 봄, 나는 그동안 버려두었던 글과 재회하게 되었다.


'트렌드가 바뀌어 다시 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어서' 혹은 '글에 대한 스스로의 사랑을 놓을 수가 없어서'와 같은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른 글로 풀어볼 예정이지만, 여러모로 이유로 나는 법학과 일반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법학과 일반대학원의 특성상 마주해야 하는 것은 엄청난 양의 판례와 논문, 그리고 스스로 써 내려가야 하는 여러 형태의 글들이다.


글과의 어색한 재회를 하면서 사색한 것은 글이 가진 본질이었다. 혹자는 다른 접근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내가 깨달은 글의 본질은 곧 ‘전달’이다. 사실의 전달, 감정의 전달, 지식의 전달, 사상의 전달, 그리고 심미의 전달까지도.


우리는 정보의 과다 속에 살고 있다. 나 하나의 취향과 사고를 갖추기에도 버거운 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자꾸만 전달하고자 하는 글이란 녀석은 피곤하고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글은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말로, 글의 시대의 종말을 논했던 나를 반박하고자 한다. 더 이상 사람들이 글을 찾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도 글은 살아남을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이지, 수신하는 자의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 역시 글이 된다. 관객 없는 공터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방 한구석 홀로 눈물을 삼키는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듯이, 글 역시 종말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난 다시금 글을 써보려고 한다.


어쩌면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 될 수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전하고 싶은 흥미로운 사실, 세상에 소리치고 싶은 소리를 글로 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대학원생이 되며 글의 생존을 논하게 된 나는 참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앞으로 필자 시연(時蓮)의 전달이 맘에 들기를 바란다. (사실 맘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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