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0월 <힐 하우스의 유령>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으로 나누어서

by 은하


유령을 보았던 아이들, 유령과 살았던 아이들. 이제 어른이 되었는데도, 악몽은 그들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니, 돌아가야 한다. 아직도 선명한 그 집의 그림자를 향해.


휴는 힐 가문의 사람들이 살던 대저택을 삽니다. 집을 수리하고 차익을 남기기 위해서요. 가족을 데려와 두 달만 살 계획입니다.


계획대로 주인공 다섯 남매는 어린 시절 여름방학 동안 힐 하우스에서 살게 되고, 계획에는 없었던 유령을 봅니다. 그때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성인이 된 그들을 끈질기게 괴롭힙니다.


그들은 어떤 유령을 봤기에 어른이 되고도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을까요? 저택에서는 왜 유령이 나타나는 걸까요? 다섯 남매 중 막내인 넬의 죽음으로 가족들은 다시 힐 하우스를 찾게 됩니다. 드라마는 그간 버려져 있던 저택에서 그들이 과거와 직면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요.


1657b93188718acc8.jpg


힐 하우스의 본래 소유주인 힐 가문 사람들은 참혹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힐 하우스의 관리인은 해가 진 이후에는 저택에 들르지 않습니다. 마크 피셔의 말에 따르면 으스스한 것은 부재의 오류 혹은 존재의 오류로 구성됩니다. 으스스한 감각은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장소에 무언가 존재할 때, 혹은 무언가 있어야만 할 때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으스스한 것은 사람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사라진 풍경에서 보다 쉽게 발견됩니다. 으스스한 감각이 울타리가 있고 누군가가 거주하는 가정적인 공간과 결부되는 일은 드뭅니다. 그렇기에 힐 하우스는 으스스한 공간입니다. 관리인은 어떤 일 때문에 저택을 꺼리는 걸까요? 과연 이곳에는 어떤 존재가 관련되어 있을까요? 저택에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면, 어떤 주체가 기능할까요? 주체가 있기는 할까요?



갇힌 사람들


image.jpg


힐 하우스에는 빨간 방이 저택의 핵심적인 방으로 나옵니다. 힐 하우스에 두 달간 살았던 주인공들에게 빨간 방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왔습니다. 게임을 하는 곳, 춤 연습실, 다과회실, 심지어는 나무 위에 지어진 집으로요.


"언니 말이 맞아. 우린 이 방에 와본 적이 있어. 정말 많이 왔는데 우린 몰랐어. 집은 몸과 같대. 이 방은 이 집의 심장 같은 거야. 아니, 심장이 아니야. 위장이지."


넬리는 독백으로 빨간 방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빨간 방은 힐 하우스의 위장입니다.


주인공 가족이 힐 하우스를 다시 찾은 현재 시점에서 그들은 저택에 갇힙니다. 빨간 방은 닫혀 있고, 마스터 키로도 열리지 않습니다. 망치로 부수려고 해도요. 저택을 빠져나가려면 저 무시무시한 빨간 방, 그러니까 저택의 위장을 든든히 채워줘야 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빨간 방에 이미 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올리비아와 넬입니다.


올리비아는 다섯 남매의 엄마입니다. 과거 시점에서 그는 유령과 함께 환상을 봅니다. 쌍둥이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자살하고 죽는 내용입니다. 그녀는 환상을 미래라고 믿고, 그런 미래를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쌍둥이가 세상으로 나가 고통받는 모습을 두고만 볼 수 없습니다. 당장 손을 써야 해요. 그녀는 쌍둥이를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다 남편인 휴에게 저지당합니다. 그녀는 자살하고 유령이 되어 빨간 방에 갇힙니다.


넬은 올리비아가 걱정한 쌍둥이 중 하나입니다. 과거의 힐 하우스에서 목이 꺾인 여자를 보았고, 성인이 되고도 그 여자의 이미지를 쉽사리 잊지 못합니다. 가위눌림으로 고통받아요. 그러던 중 그녀는 수면 관리사인 아서를 만나 결혼합니다. 한동안은 치료를 받고 고통에서 해방되는 듯하나, 또 목 꺾인 여자를 보고 심각한 가위에 눌립니다. 그녀를 진정시키던 아서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넬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동력 삼아 그녀의 공포가 호발 된 곳으로 가 결판을 짓기로 합니다. 그녀는 저택으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유령에 홀려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녀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목 꺾인 여자는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올리비아와 넬리의 이야기는 미장아빔(mise en abym. 무한 속으로 빠져들기. 어떤 이미지가 무한대적 연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올리비아는 미래를 보고, 미래를 해결하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그녀가 두려워한 미래는 그들에게로 도착하고 맙니다. 넬은 어릴 때부터 시달렸던 악몽이 실은 자신의 모습임을 죽는 순간 깨닫게 됩니다.


기이한 것은 으스스한 것과 대조적으로 존재-어울리지 않는 존재-, 터무니없이 과도한 존재, 형용할 수 없이 우글거리는 것으로 특정 지어집니다. 미장아빔은 기이한 것의 자극을 유발하는데, 자존적인 것과 그러한 것이 존재하게 허용한 뒤에 얽힌 인과관계 양자 때문입니다. 어쩌면 모든 역설은 기이할지도 모릅니다. 우선 이 안타깝고 역설적인 죽음만큼은요.



탈출한 사람들


빨간 방에 갇힌 상태에서 남매들은 꿈을 꿉니다. 꿈속에는 항상 빨간색 물건이 등장합니다. 스티브의 빨간색 카디건, 셜리의 빨간색 드레스, 테오의 파트너가 입은 속옷, 루크의 빨간색 마약….


1657b93177418acc8.jpg


루크는 키가 큰 유령을 봅니다. 마약을 할 때만큼은 유령이 보이지 않아, 그는 마약에 의존하게 됩니다. 뒤늦게 재활 시설에 다녀 보지만 매번 재활에는 실패합니다. 그는 넬이 죽고 난 뒤, 넬은 자살한 게 아니라 저택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복수를 위해 힐 하우스에 불을 지르러 갑니다. 그리고 저택의 힘에 홀려 빨간 방에 들어가 마약을 맞듯 독을 몸에 주사합니다.


엔딩에서 루크는 가족들이 그를 찾으러 와 살아남은 것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사랑은 논리의 포기다. 합리적인 패턴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굴복하거나, 맞서 싸우거나, 그러나 그 중간은 없다. 사랑 없이 우리는 오랜 시간 절대적인 현실 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제정신이 아닌 힐 하우스는 언덕을 등진 채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다. 100년을 서 있었으며 100년을 더 서 있으리라." 아름다운 내레이션과 함께 저택에서 빠져나온 남매들은 루크의 재활 치료를 축하합니다. 하지만 그 장면 속 케이크는 꿈속을 상징하는 빨간색입니다.


우리가 케이크의 색에 주목해서 그들이 힐 하우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해석하면 그들의 이야기는 기이해집니다. 그들은 인과관계가 뒤엉킨 힐 하우스에, 모든 것이 항상 있었던 자리에 있게 됩니다.


In fact, Flanagan even toyed with the idea of putting that Red Room window in the back of the final scene with the family, in which they are gathered around Luke and his two-year sobriety cake but thought it would be “too cruel.”

(출처: https://variety.com/2018/tv/features/haunting-of-hill-house-boss-lost-inspiration-red-room-perspective-1202962481/)


감독은 루크를 축하하는 그 장면의 뒷 벽면에 빨간 방을 뜻하는 창문을 낼지 말지를 고민했지만, 그건 너무 잔인해 넣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의 의도를 따라가 그들이 살아남았다고 가정하면 그들은 으스스한 체험을 한 셈이 됩니다. 정말 빨간 방이 '위장'의 역할을 하는 걸까요? 그들은 단순히 저택과의 소통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요? 글쎄요. 미지의 우주에 대한 고찰이 으스스한 감각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는 바깥 우주를 좌우하는 힘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 너머에 무언가 있기는 한 것일까요. 그리고 거기 어떤 주체가 있다면, 그들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처음 가진 의문을 계속 갖습니다. 그들은 힐 하우스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힐 하우스는 이제 그들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기울어진 결말에서 무게추를 치워 보면, 그들은 아빠인 스티븐을 빨간 방에 두고 나왔습니다. 그것만이 부정 못할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각자의 유령에만 시달릴 뿐 힐 하우스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힐 하우스가 얼굴을 비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힐 하우스는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비칠 얼굴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그곳을 빠져나왔으므로, 힐 하우스는 그들에게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악몽이 될 것입니다.



볼드 처리된 문장은 마크 피셔의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서 거의 그대로 따왔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년 9월 자기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