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 괴담 + SF소설 추천
저는 중언부언하거나 의뭉스러움을 남기고 떠나가는 괴담을 좋아해요. 보통 이런 괴담은 인터넷 등지에서 몇 줄짜리로 등장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 뒤 뒷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 사라져요. 완결된 이야기로 보기엔 미흡하죠.
2ch에 올라온 『고베시 북구에 있는 집 한 채 필요 없어? · 세 가지 조건』을 예로 들고 싶어요. https://blog.naver.com/saaya1217/220605957986에 전문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고베시 북구에 있는 집 한 채 필요 없어?
단 조건이 있는데
1. 반드시 받을 것
2. 3일 이상 집을 비우지 않는다.
3. 죽을 때까지 산다.
이 세 가지만 지켜준다면 땅 채로 넘겨줄게.
(..)
사건 같은 건 없어. 단점이라든가,
산에서 밤에 뭔가가 와.
너무 무서워.
슬퍼.
나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어떠신가요? 완결되지 않은 듯 느껴지고, 짧죠. 뒷 이야기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 공백은 미신으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필요한 틈이겠지요.
언젠가 차도하 시인이 트위터에 괴담을 읽으며 시 쓰는 법을 익혔다는 말을 했는데, (지금은 원문이 남아 있지 않네요. 좋은 시는 괴담과 닮아 있다? 시는 괴담처럼 써야 한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괴담의 어떤 부분을 시에 적용시켰는지 단번에 알아들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괴담이든 시든 그곳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낯설고 으스스한 세상의 이면, 또는 다른 세계의 등장, 다른 세계의 존재 자체를 암시하니까요. 그래서 착란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차도하 시인의 말을 접한 뒤, 이영주 시인의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을 읽으면서는 괴담과 시의 연관성을 확신했는데요. 이 시집이 조명하는 한결같은 혼란과 공포도 나누고 싶어서 같이 소개합니다. 꼭 연작 소설처럼 느껴지는 시집이에요.
▶ 책 소개 바로 가기: http://moonji.com/book/20550/
SF 단편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어슐러 르 귄의 「세상의 생일」에 실린 <카르히데에서 성년이 되기>를 골랐어요.
<카르히데에서 성년이 되기>에는 제목대로 카르히데에서 성년을 맞이하는 주인공이 나와요. 카르히데는 행성 게센에 있는 나라입니다. 게센인들은 지구인의 관점에선 특이하게도 평소에 무성의 존재로 살아가다, 케메르 기간(생식을 하는 기간)에만 성별과 그에 부합하는 성기를 얻어요. 성별은 바뀌기도 하고, 하나의 파트너에 정착하기도, 그러지 않기도 해요. 이 단편은 미성년 캐릭터들이 성장을 하며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노골적으로 그린 소설이에요. 성년식을 맞이하기 전의 그들은 섹스를 흉내 내며 더럽다고 낄낄거리기도, 서로에게 성적인 호감을 느끼면서도 속에서 폭주하는 감정을 정의 내리지 못해 심술을 부리기도 합니다.
「어둠의 왼손」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에요. 「어둠의 왼손」에서는 무성의 존재인 게센인이 남성처럼 묘사되어, 페미니스트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어요. 듀나는 그 뒤에 출간된 <카르히데에서 성년이 되기>를 보고, 「어둠의 왼손」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이 모두 옳았다고 인정하는 답변서에 가까우며, 조금 더 무리해서 본다면 비판가들과 함께 쓴 공동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캐릭터들의 밭은 숨으로 뜨거워진 이 소설을 가만 보고 있노라면, 상업지-소꿉친구-순애보-청춘-야망가 도식에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만족스러운 섹스로의 이행을 보고 있자면… 이렇게나 욕망에 충실한 소설이 페미니스트들과 르 귄의 합작이라니 싶어 당황스럽습니다. 더러운 것들 보고 산 저만 식은땀 흘리는 거죠.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 페미니스트 소설가로서의 어슐러 르 귄 http://news.bookdb.co.kr/bdb/Column.do?_method=ColumnDetail&sc.webzNo=31635&Nnews#https://dthumb-phinf.pstatic.net/?src="http://bimage.interpark.com/milti/renewPark/evtboard/20180131184105428.jpg"&type=ff500_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