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닮은 우주
안녕 J,
네가 우주나 외계인 따위에 관심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그래서 구구절절, 남들이 보면 뜬구름 잡는다 할 소리들을 함께 늘어놓고 싶어졌어.
어때?
J,
넌 우주의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아?
난 말야, 우주가 사람 같아서 좋아. 물론 내가 언젠가 사람이 너무 싫다고 말했던 거 기억하고 있어.
그치만 난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싫은 거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니까 사람이 싫은 거라구.
어쨌든.
우주가 왜 사람 같냐 하면,
(미친 소리 같겠지만...)
탄생과 죽음이 있고, 서로가 없인 존재할 수 없는 행성들이 있고, 스스로를 태워 반짝이는 별들이 있고, 어둠까지 삼키는 분노가 있고, 그러나 또 알고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함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밀이 많아, 우주는.
그건 정말 사람 같지 않아, J?
사람들은 사람다운 존중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비밀을 만들잖아. 완전한 아이러니야.
당연히 나도 그런 아이러니로부터 결코 결백하다고는 할 수 없어. 사람은 정말 비밀 없인 살 수 없으니까. 때문에 J, 너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저 조용히 눈 감을게. 일종의 인류애랄까 하는 마음으로.
그치만 우주의 비밀은 파헤치기 딱 좋아. 이건 사람의 비밀과는 조금 다른 점이네.
파헤칠수록 그 비밀은 신비스러움을 더해가다 결국 시작점에 다다라서야 우주의 전부를 알게 되겠지.
우리는 그 시작점에 다다를 수 있을까, J.
아니면,
우주의 존재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거라는, 이런 가정조차도 인간으로서 오만한 것일까?
너를 기다리며 기차를 하나 둘 보냈던 그 시간 동안의 햇볕이 괴롭지 않고 따뜻했던 건
네가 어디에선가 출발하여 언젠간은 나에게로 도착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치만 우주 속에서 흐르는 우리는
그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르니까,
혹자는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그런 행위조차도 창조에 대한 오만함이라 이르니까,
가끔은 우리가 삶 속에서 괴로운 거 아닐까?
J, 그러니 나와 함께 여행하자.
같이 우주를 떠돌며 우리의 시작과 끝을 그려보자.
육첩방 안에서도 우리는 우주를 상상하고 담아내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카이퍼벨트 속 귀여운 왜소행성들도 오르트구름 속 빛나는 혜성들들도 와닿게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