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보는 건 어때?!
이번 새해에도 동네 인근의 산을 올랐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1월 1일의 해를 보며 세상의 온갖 정기(?)를 흡수하고 새해를 활기차게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웬걸? 바로 어젯밤 12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설레는 타종까지 보며 새벽 1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으니 컨디션이 좋을 리가 있나. 오히려 아침에 일어날 때의 그 찌뿌둥함은 마치 월요병보다 더 심한 듯했다.
“그래도 새해인데 일출은 봐야지. 뜨겁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기분 좋게 시작해보는 거야!”
사람들은, 특히 1월 1일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당연한 말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시작이라는 개념은 중요한 진리이자 이치고,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나 또한 굳게 믿으며 살아왔기에 더욱 공감한다. 위대한 명언 중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뜬다’. 적어도 1월 1일, 오늘만큼은 주위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하루를 보내리라.
하지만 사고는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가장 큰 이벤트(?)는 등산 중 어두운 시야로 인해 그만 돌부리에 발목이 접질린 것이었다. 정말 난감했다. 앞으로 20분만 더 오르면 정상인데… 에잇, 오늘 왜 이렇게 일진이 안 좋지? 욱신거리는 발목 통증을 참고 등산로 근처 자그맣게 마련된 쉼터를 찾았다. 하늘을 보니 다른 날보다 유난히 새까만 새벽이었다.
1월 1일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상이 불과 몇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과 쉼터에 앉아 있는 나를 두고 쌩쌩 지나쳐버리는 등산객들이 그렇게 눈에 밟혔다. 무의식적으로 경쟁에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늘에게 얄팍한 원망도 했다.
결국 2020년 새해는 오르다 말은 어중간한 등산로에서 맞이했다. 세상 모두에게 그토록 의미 있는 새해는 결국 떠올라 온 세상을 밝게 비추었고, 동시에 나의 말할 수 없는 비참함도 함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좋지 않은 출발을 한 것만 같았고 앞으로의 내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발목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 시각 SNS에서는 각양각색의 새해맞이 인사가 넘쳐나고 있었다. 그 작은 기계 창 안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꽃길만 걸어요’ 등과 같은 행복의 말이 가득했지만, 그 밖의 풍경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바스러진 낙엽만 즐비했고 작은 한숨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그 와중에 까악- 까악- 까마귀 소리가 극에 달한 숲 속 고요함을 조금이나마 깨 주어 되려 고맙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사람들은 언제나 해가 뜨고 진다고 말하지, 달이 뜨고 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나머지 반’도 시작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
‘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뜬다’라지만 ‘그래도 지금은 오늘의 달이 떠 있다’라는 것.
비록 올해의 일출은 못 봤지만 그래도 올해의 첫 달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귀신같이 발목 통증은 가라앉았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었다.
혹시 이 중, 2교대 근무로 새해를 회사에서 맞이한 사람이 있다면, 혹은 밤새 아이가 아파 뜬눈으로 지새운 사람이 있다면, 혹은 새해 아침부터 가족 혹은 연인과 싸운 사람이 있다면…
괜히 기분 나빠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겐 아직 남은 하루가 있고, 앞으로의 날에 더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작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더라도 만회할 시간은 충분하고 새해를 즐길 날은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오늘 밤 새해, 아니 새달을 제대로 맞이해보려고 한다.
- 글인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