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매일 아침 등굣길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그 누구보다도 새하얀 양말을 신는 것이었다. 새하얀 양말을 신으면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솟구치고 어깨는 드넓은 바다처럼 떡 벌어졌다. 아침 7시, 세상 모든 사람들의 회색빛 발걸음을 뒤로한 채, 나의 새하얀 발걸음은 세상 가벼워 어쩔 줄을 몰랐고 턱은 하늘을, 시선은 또렷이 정면을 향했다. 하루만 지나고 나면 쿰쿰한 발바닥이 까맣게 물들어 있을 것을 알면서도 흰 양말은 나에게 이런 힘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지금 막상 돌이켜보면 왜 그랬을까 싶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어느덧 스물여섯 살. 숨 가쁘게 20대 중턱에 다다른 나이.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의 경조사를 겪으며 넥타이를 매는 나이. 새로운 문을 두들겨 가며 세상에 대한 자신의 꿈을 가늠해보는 나이.
그리고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
청명한 하늘 아래와 흰 양말이 눈부셨던 작년 4월 어느 때였을까. 대학 새내기 시절 좋은 인연으로 만난 학과 선배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낱 평범한 자취방에서 같이 야식을 시켜먹던 선배가 결혼이라니. 솔직하게 설렘보단 어색함의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옷은 무엇을 입어야 하지?
결국 정갈한 이미지를 위해 재킷과 슬랙스, 그리고 구두를 준비했다. 마지막은 언제나 그랬듯 나의 자신감, 흰 양말로 마무리했다.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고.) 그런데 그놈의 새하얀 양말 때문에 결혼식에 다녀온 나는 부끄러움에 어디라도 숨고 싶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왔다.
물론 결혼식에서 모든 예(禮)를 철벽같이 지킬 필요는 없지만 보통 경조사에서는 어두운 계열의 양말을 신는다고 한다. (결혼식에 다녀온 나를 본 어머니께서 푸하하 웃으신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지인 결혼식에 다녀온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당연히 바보 같은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지혜를 터득한 이유 때문일까. 그 이후로 내 낡은 옷장 서랍 안에는 흰 양말보다 검은 양말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런 양말 하나 제때 못 신던 놈이 어느덧 대학교의 최고 학번 선배가 되었고 인턴 면접을 보러 다닌다. 이제야 슬 대학교에서 정말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 작은 발걸음을 떼기가 참 무섭다.
과연 지금이 나에게 맞는 때일까? 지금은 어떤 양말을 신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참 웃긴 것은, 가만히 있어도 나는 알아서 변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다 때가 있다고 말한다. 으레 말씀하시는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게 돼’라는 식의 그 ‘때’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고 언제일까. 도통 그 ‘때’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름의 결론을 내려보았다.
과연 어떨 때 검은 양말을 신어야 할까? 지금 내가 내린 정답은 ‘당장은 몰라도 돼’다.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흐름에 몸을 맡기되 자신의 코어(core)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말씀을 물론 새겨들어야 하지만 또 곧이곧대로 따르라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행동, 가지고 있는 생각, 가고 있는 길을 자연스럽게 가져가되 스스로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흰 양말이 더 좋을지 몰라도 어느 색의 양말을 더 많이 신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 <미생>의 무스펙 고졸 출신 신입사원 장그래가 정확한 ‘때’를 알아 적재적소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는 당장의 실수를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믿으며, 묵묵히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런 자연스러운 '때'를 가장 나답게 받아들였기에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한 번쯤은 마음 편하게 나를 나에게 맡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스물여섯 살 그 애매한 시점 어딘가, 지금에서야 비로소 흰 양말보다 검은 양말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 글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