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 & 콜라주
※ 콜라주 재료
→ [삼행시]야릇한 침묵
→ [삼행시]찬 호떡과 와플이어도 좋으니
→ [삼행시]예지력과 지식
야릇한 침묵이란 건 생각보다 무겁지 않아요. 그저, 묵묵히 견디며 내가 하려던 일을 하고, 조금만 바쁘게 움직이면 되는 거거든요. 생각해 보면, 얼굴에 면도기를 대지 않은 지도 꽤 됐어요. 마스크를 쓴 채로 외출할 때가 많아지고,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니 굳이 깔끔한 얼굴을 만들 필요도 없더라고요.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서리를 맞거나 습기로 옷이 젖는 일도 없어졌어요. 관을 짜맞추는 일처럼,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었죠. 오래 기다려야 할 무언가가 있긴 했지만, 정확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는 몰랐어요.
그래도 견뎠어요. 생이라는 게,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외로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저 야릇한 느낌이 남아 있었거든요.
거리를 지날 때면 늘 뭔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요.
“찬 호떡과 와플이어도 좋으니, 뱃속이 든든해야 싸울 수도 있는 법”이라며 누군가가 나를 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달까요. 미리 결제한 대로 선착순으로 가서 동호회 이름을 대면 먹을 수 있었죠. 마치 하나님이 살짝 지나가며 흘린 말처럼요.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호떡과 와플을 양껏 먹을 수 있는 그 소박한 행복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거리 위에서 그런 작은 기쁨을 발견한 날이면,
마치 하나님이 다녀가신 것 같은 기분이 들죠. 꼭 라만차의 돈키호테처럼, 뜬금없이 나타나 내게 작고 이상한 기적을 선물해 준 느낌이랄까요.
예지력이 있다면 좋을까요? 어떤 날에는 그랬으면 싶어요. 내일 주자가 도루를 할지 알 수 있다면,
그날 경기가 조금 덜 긴장될지도 모르죠.
일주일 후에 살이 붙을지 빠질지 알았다면 그 주에는 더 철저히 식단을 관리했을 것 같고요.
하지만, 그게 꼭 도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미리 알더라도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있고, 막상 알아도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죠.
렘브란트의 그림이 얼마에 팔릴지 미리 안다고 내 인생이 크게 바뀔 것 같진 않아요. 제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있고, 제가 주도할 수 있는 일도 있겠지만, 어떤 일은 그 범위를 벗어나 있으니까요. 아무리 애를 써도,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고, 알고도 맞아야 할 일들도 있었던 거죠.
때로는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즐길 수 있었던 일들도 많잖아요.
물론, 요즘엔 몰랐기 때문에 한탄스러운 일투성이지만요.
필립 안젤모가 판테라 팀을 망쳐 놓았다는 이야기도 그렇죠. 그런 논란과 사과, 해명이 어지럽게 얽힌 사건들, 어쩌면 몰랐다면 덜 피곤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결국엔 알게 되고 말죠. 그리고 알게 된 이상,
그 사실이 나를 조금씩 바꿔놓는 것 같아요.
책을 덮고 보니 배가 고팠어요.
하지만 그 책이 13일의 금요일의 연쇄살인마 제이슨에 대한 이야기였던가,
아니면 오래전에 사라진 어느 역사적 사건에 관한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그런 건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모를 미래까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는 그 사실만 남았어요.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미지의 순간과 닿아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나의 하루도 그렇듯이요.
오늘은 이렇게 끝났네요.
내일은 또 어떤 야릇한 침묵과 속삭임이 나를 기다릴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