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피란> 줄거리
피란민들이 몰려든 성경 도읍은 성벽이 무너지고 존비들이 퍼지며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은 성벽이 붕괴된 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성경 주변을 떠나야만 했다. 존비들은 저주파를 내뿜으며 생존자들을 위협했고, 그들의 움직임은 파괴와 공포를 남겼다. 성경 주변의 피란민들은 군사 거점에서 철저히 통제되며 불안에 떨었다.
군사 거점에서는 군인들이 피란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자유 대신 생존의 투쟁이 이어졌다. 고요섭은 과거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성경으로 돌아가 가족을 찾고자 하는 바람을 품고 있다.
한편, 존비들은 사냥감이 사라지자 서로를 공격하며 자멸해 갔다. 병력 투입을 최소화한 군은 존비들의 자멸을 유도하는 전략을 취했다.
사태가 진정되자 군 내부에서는 권력 다툼이 본격화되었다. 차요섭 중장이 기습적으로 성경 도읍을 장악하며 권력의 주도권을 쥐었고, 각 군벌은 그에 대한 대응을 고민했다. 차요섭은 군사적 성공 이후 권력 장악을 위해 전략을 모색했다. 상황은 이제 존비 사태의 해결이 아닌, 새로운 권력 질서를 둘러싼 다툼으로 전개될 것으로 암시한다.
#5
피란민들은 군사 거점 앞에 서서, 자신의 운명을 지켜보는 듯한 군인들의 차가운 시선을 맞이했다. 철조망이 그들 앞에 높이 세워져 있었고, 그 너머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매일 검문이 끝나고 허가가 떨어진 피란민을 제외하면, 남은 이들은 철조망 바깥 지역인 역병의 영역으로 불리는 곳에 남겨졌다. 그다음 날에 다시 검문이 시작될 때까지. 피난처를 찾아 목숨을 걸고 달려왔지만,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고요한 절망이었다. 피란민들의 발끝에서 시작된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고,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에 가로막힌 채 어디에도 머물지 못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이미 멈추어 있었고, 더 이상 도망칠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군인들은 총을 손에 쥔 채,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란민들을 스캔하듯이 응시했고, 그들 속에 있는 어떠한 위협 요소라도 감지하려는 듯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들의 몸은 피로에 지쳐 있었지만, 정신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피란민들 중 일부는 군인들에게 절박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이곳이 그들에게 안전을 제공해주길 바랐지만, 그들 앞에 놓인 바리케이드와 그 너머의 군인들은 장벽처럼 무심하게 서 있었고, 철조망은 피란민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차단하고 있었다.
바깥에 남겨진 피란민들은 점차 침묵 속에 잠겼다. 그들의 발걸음은 묶였고, 자유의 길은 닫혀버렸다. 안전하지 못한 곳에 버려진 듯했다. 다음날 전에 무슨 일이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 피란민들 중에는 한때 타인을 가두었던 자들도 있었다. 역병이 급속도로 퍼질 때,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감염자를 가두고 그들의 안전을 위해 방어선을 세웠었다. 그들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었고, 그 선택을 통해 목숨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의 업보처럼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왔다. 그때는 남을 감시하고 가두었지만, 이제 그들은 그 자리에 자신들이 서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과거 그들이 던졌던 시선은 이제 군인들의 시선이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왔고, 그 차가운 눈빛은 과거의 자신들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군인들이 던지는 날카로운 눈빛 속에서, 피란민들 일부는 자신들이 한때 누군가를 가둔 바로 그 감옥에 스스로 갇혀버린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들의 선택은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 행동이 자신들에게 올가미가 된 것이다. 예전에는 역병을 막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정당화했겠지만, 반대의 처지가 되자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다.
안에 먼저 들어갔든 바깥에서 기약 없이 대기하고 있든 피난민들은 다시 한번 자신이 안전한 존재임을 증명해야만 했다. 신분을 확인받고, 그들의 과거와 행동을 면밀히 조사받았다. 그 증명의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생존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에 휩싸였다.
피란민들 중 많은 이들은 과거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관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과거에 감금되었다가 운 좋게 도망친 자들조차 다시금 새로운 감옥으로 들어가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끝없이 자신이 안전한 존재임을 입증해야 했다.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심판의 무대에 서 있는 죄수 같았다.
그 가운데 고요섭은 다른 피란민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과거에 존비와 맞섰던 경험을 조사 과정에 성심껏 진술했다. 그가 제공한 정보는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라, 사교의 수행원으로서 알게 된 내부 정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진술은 군대가 존비에 대한 대처 방식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 덕분에 고요섭은 다른 피란민들보다 일찍 수용소를 떠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가 얻은 '자유'는 결코 가볍지 않았고, 오히려 쓴맛이 느껴지는 자유였다.
고요섭은 수용소를 벗어났지만, 가족들은 곁에 없었다. 그들은 이미 존비로 변해버렸고, 고요섭은 그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그들이 인간성을 상실한 채 존비로 변해버린 잔상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그의 삶은 더 이상 과거의 따뜻함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어디로 가든, 마음속에 남은 것은 깊은 상실감이었다. 그는 새롭게 살아가야 할 거처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지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그가 외적으로는 사람들과 적응하려 애썼지만, 내면에는 복잡한 감정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얼마 전의 슬픔과 새로운 공동체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서로 충돌했다.
물론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집단에 동화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더 이상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절감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지닌 진짜 무게는 가족을 잃은 슬픔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은, 그가 한때 이 재앙의 시작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교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 안에서 침묵한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초래됐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고요섭은 외적으로는 수용소에서 빠져나온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내면에서는 여전히 재앙의 한 부분을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선택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가족을 잃은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늘 자문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스스로 자유롭게 되지는 못했고, 어디로 가든지 그가 지닌 책임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고요섭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든, 그가 느끼는 내면의 무게는 언제나 그와 함께 있었다. 비록 외적으로는 사회에 적응해 보이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었지만, 결코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이 사태에 연루된 책임이 남아 있었고, 그 무게는 평생 동안 그를 짓누를 것이었다.
그는 군대의 일을 최대한 도왔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성경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자기 가족을 찾고 싶었다. 온전한 치료법은 모르더라도 향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가족과 함께 행복을 되찾고 싶었다. 끝내는 사교의 연루자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할지라도.
#6
군인들은 끊임없이 정찰 드론을 하늘로 띄워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의 눈은 그들이 직접 접근하기 힘든 위험 지역을 감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존비들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에는 드론이 필수적이었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그들의 움직임은 점점 혼란스럽고 불규칙해지고 있었다.
드론은 존비들이 닿지 않는 하늘을 비행하며, 지상의 존비들을 계속해서 관찰했다. 그러나 그 조용한 움직임도 이내 존비들의 주목을 끌었다. 드론의 미세한 소음이 공기 중에 퍼지자, 아래에 있던 존비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눈은 비어 있었지만, 그들은 드론을 사냥감이라고 인식한 듯,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존비들은 하늘을 향해 저주파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들의 소리 없는 공격이 마치 공기 중을 뒤흔드는 파동처럼 드론을 향해 쏘아졌다. 그러나 드론은 무인 비행체일 뿐이었다. 저주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허공 속으로 의미 없이 텅 빈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아무리 본능적으로 움직여도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드론은 그들이 무의미한 반응을 보일 때도 여전히 차분하게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높은 고도에서 안전하게 존비들의 동향을 지켜보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모든 데이터를 기록하고 전송했다. 하늘 위에서 움직이는 드론은 철저하게 효율적인 관찰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존비들의 반응은 의미 없고 헛된 공격이었지만, 그로 인해 군인들은 그들의 민감한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론이 수집한 영상은 존비들의 마지막 생존 본능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사냥할 대상이 없어지자, 서로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화면에 포착된 장면은 피와 살이 뒤엉키는 혼란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맹렬한 본능에 휘말린 채, 같은 무리를 파괴하고 있었다. 굶주림의 압박은 그들을 끝없는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고, 그 결과는 잔인한 자기 파괴였다.
처음에 그들은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사냥감이 자취를 감추자,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존비들은 서로를 향해 공격했다.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고 갈라진 손톱을 마구 휘둘렀고, 싸움에 진 존비들의 피와 살은 끝없는 갈망 속에 사라져갔다. 단순한 충돌이 아닌, 생존 본능의 최후였다. 존비들은 서로를 물어뜯고 갈가리 찢으며, 생존 본능에 따라 자기 파멸의 길을 걸어갔다.
군인들은 그 장면을 드론의 화면을 통해 바라보며, 어쩌면 모든 게 예전처럼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갖기 시작했다. 그동안 존비들이 스스로 멸망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제어할 효과적인 방법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존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그들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었다. 존비들이 쏟아낸 굶주림의 끝은 무한한 파괴가 아닌, 자멸이었다.
드론이 보여주는 광경은, 스스로의 존재를 파괴하는 종말의 전조처럼 보였다. 마지막에 남은 존비 역시 홀로 외딴 곳에 고립된 채로 버둥대다가 잘린 다리를 뜯어먹으며 며칠을 버텼다. 그러다가 끝내는 자기 자신의 남은 살점을 제물로 삼았다.
지상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군인들은 진입을 망설이고 있었다. 드론이 제공한 자료는 존비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었다. 군인들은 이 정보를 기반으로 최소한의 위험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다.
이미 몇몇 부대는 존비의 반응 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투입된 상태였다. 그들은 존비들과 직접 대치하지 않고, 대신 존비들을 외딴 곳으로 유도해 제거하거나, 주변의 동선을 조심스럽게 파악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들은 존비들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해 조심스럽게 이동했으며, 사람들이 있는 지역으로 존비들이 이동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드론이 일부러 자기 위치를 요란하게 드러내면서 존비를 다른 쪽으로 유인하기도 했다. 잘못된 자극 하나가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알았기에, 군인들은 되도록 신중하게 행동했다.
드론의 정보에 의존하는 군인들은 지형과 존비들의 위치를 기반으로 경로를 조정하며 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드론이 탐지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었다. 존비들의 활동 반경이 예측 불가하고,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정확한 경로를 설정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출현이 언제든 작전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었다.
군인들은 드론을 통해 존비들이 드물게 나타나는 안전 구역을 찾아냈다. 그들은 낙하 작전을 통해 해당 지역에 부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방법조차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고, 드론의 정보만으로는 완벽한 안전 보장이 불가능했다. 그들은 매 순간 존비들이 갑자기 나타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럽게 작전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부대원들은 각자 임무에 충실히 임하며, 드론이 제공하는 정보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경로를 수정해 나갔다. 드론이 포착하지 못한 위험 요소가 잠재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늘 경계하고 있었으며, 최소한의 희생으로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한편,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존비들의 광경은 점점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채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군데에 고립된 무리가 그랬는데, 그 범위가 확산되고 있었다. 그들은 무작정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 끝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로 이어졌다.
공중에서 본 그 장면은 파국의 무리가 종말을 향해 치닫는 모습이었으며, 바람에 불같이 이는 산불과도 같았다. 질서 없이 움직이는 군상이었으며, 더 이상 외부의 적을 상대하지 않고 내부에서 파멸하고 있었다. 생존의 본능이었으나, 공멸을 향한 싸움이었다. 본능에 이끌린 그들은 무작정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고 있었고, 끝없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부수며 자멸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이 사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외부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 파국을 자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도태한 존비들이 어김없이 자기 자신을 뜯어먹어야 했다. 역한 것을 참고 자신의 죽은 살점을 억지로 먹으면서 구토했다. 기능이 정지할 때까지 자신의 살점과 내장을 뜯어먹었다. 가장 끝까지 버텨내며 승자가 된다고 해서 종국에는 다를 것이 없었다.
더 이상의 개입이 무의미할 정도로, 그들은 서로를 파괴하며 자연스레 소멸의 길로 가고 있었다.
#7
성경 도읍을 둘러싼 사태는 석 달 만에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성 안에서 밀려나온 존비들은 도시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감염시키고 난 후, 더 이상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자신의 지역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능적인 사냥의 갈증에 의해 움직였지만, 사냥감이 점점 줄어들고 굶주림이 깊어지자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들의 살점을 물어뜯으며, 서서히 기능을 상실해 갔다. 결국 주변에는 기능이 정지된 존비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그들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고, 몇몇 남은 존비들만이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남은 살점으로 겨우 기능을 연장하고 있었다. 죽은 채로 움직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의미를 찾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움직이니까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들 역시 곧 완전히 정지할 것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병력을 직접 투입하지 않은 전략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병력을 퇴각시킴으로써 오히려 존비들이 고립된 채 스스로 자멸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군인들이 성경 부근으로 진입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러운 멸망의 길로 이끌었고, 그 덕분에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군인들이 성경 부근으로 직접 개입했다면, 존비들에게 새로운 사냥감이 되었을 것이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대신 드론 같은 원격 장비를 사용해 존비들의 관심을 성 주변으로 묶어 두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멀리 이동하지 못하고, 서서히 파멸의 길을 걸었다. 존비들은 계속해서 근처를 배회하며 사냥감을 찾았지만, 먹을 것이 없는 환경에서 점차 쇠약해졌다. 이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병력을 투입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고, 존비들은 자연스러운 고립과 자멸의 과정으로 빠져들었다.
이렇게 성경 도읍 주변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멀리 이동하지 못한 존비들은 자신의 본능에 갇혀 스스로 파멸했고, 결국 이들의 몰락은 병력 투입 없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존비들이 스스로 자멸하면서, 비로소 병력을 투입해 사태를 완전히 마무리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논의가 군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성경 도읍으로의 진입이 언제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이번 사태를 성공적으로 진압한 공을 누가 세웠는지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었다. 진압 작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오히려 누가 더 큰 공로를 인정받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각 부대는 자신들의 공로를 주장하려고 했고, 이러한 경쟁은 곧 누가 새로운 질서를 주도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권력 다툼으로 이어졌다.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존비를 상대하는 것보다 권력을 장악할 준비가 더 중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군부 내부에서는 차후에 누가 사태를 마무리하고,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진행되었지만, 모두가 자신의 입지를 고려하며 행동했다. 공로를 누가 차지할지를 놓고 벌어진 논쟁은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권력 다툼의 시작을 의미했다.
존비들의 자멸로 인해 실질적인 위협이 사라졌지만, 군 내부에서는 그 이후의 권력 구조가 더욱 중요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각 세력은 자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새로운 권력 질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를 저울질하며 논의에 집중했다.
이처럼 복잡한 논의와 토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행동이 빠른 자도 있었다. 육군 중장 차요섭은 야간을 틈타 전격적으로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성경 도읍을 장악했다. 차요섭은 이미 지상 병력 중 전통적으로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는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고, 이 부대는 정부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가장 강력한 병력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물론 군벌 차요섭의 힘은 단순한 군사력이 아니라, 빠른 결단력과 기동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차요섭의 움직임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가 야간을 선택한 것은 경쟁자들의 방어를 최소화하고, 기습적인 전략으로 성경 도읍을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정찰 드론을 통해 사태를 주시하던 다른 부대들은 그의 진격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대응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요섭이 이미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상황에서, 다른 군벌들은 그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혼란에 빠졌다.
각 군벌은 차요섭의 성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두고 고심했다. 그의 빠른 움직임에 대해 공공연히 비난할지, 아니면 그의 전략적 승리를 인정하고 동맹을 맺을지 각자의 입장에서 복잡한 계산을 시작했다. 일단 그를 비난하는 것이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또한, 차요섭의 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더 나은 위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함부로 차요섭과 대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논의를 하는 동안에도, 차요섭은 전략적 우위를 바탕으로 더욱 강력한 위치를 구축해갔다. 그의 기민한 행동은 단순히 성경 도읍을 장악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다른 군벌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중요한 신호였다. 그가 내린 결단력은 다른 군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입장을 재고하도록 강요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군 전력 역시 군부의 다툼 속에서 눈치 싸움을 벌였다. 어디에 붙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나아가 출세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공군은 어느 쪽이 군 장악의 열쇠가 될지 고심 중이었다. 차요섭을 비롯한 모든 군벌이 공군 전력 없이는 완전한 군 장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공군도 육군의 협조 없이는 실질적인 지배가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차요섭은 러닝메이트를 찾기 위해 골몰했지만, 이는 이미 ‘존비 사태의 진압’ 사안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군인들의 관심은 군사적 성공 후의 권력 장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사태는 이제 누가 권력을 장악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사로 넘어가버렸다.
♬ 에필로그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실에 있었다. 한동안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아무도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방호복을 입은 이들이 내게 들어와서는 약물을 투여하고, 상태를 관리했다. 나는 말할 수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짓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어딘가 붕 뜬 느낌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1인 격리실에서 다시 일반실로 옮겨질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대개는 1인실과 같은 격리실에 있었고, 병세가 호전된 뒤에도 정신과 의사의 상담부터 다양한 치료를 받았다. 그것이 무슨 치료인지 설명을 들은 것도 같은데, 조금만 지나면 기억이 증발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뉴스를 보지는 않았다. 종종 바깥에서 연이은 비명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보이던 간호사가 보이지 않기도 하였다. 그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감각이 망가진 듯했고, 다른 세계와 이 세계에 걸친 채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그러다 마치 바닥이 사라져 끝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몸이 내려앉기도 했다. 오랜 만에 병실을 나왔다가 우연히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보는 영화를 무심히 보았다. 그저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 <부산행>에선 죽은 자들이 기차 안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환청처럼 누군가 내게 묻기도 했다.
“제가 누군 줄 알겠어요? 환자분, 제가 누구죠?”
순간 나는 그를 떠올렸다. 정말로 그가 나타났다. 나인 줄 알라고 했던 그가...
숨이 탁 터졌을 때 혼미한 정신이 돌아오면서, 비로소 그가 내 담당의라는 것을 알았다. 김요섭, 의사의 이름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프고 슬픈 한 시절의 잊혀지고 싶은 꿈이거나.
“환자분, 아직 환자분 성함이 기억나지 않나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환자분 성함은...”
‘잠깐, 잠깐, 지금은 알고 싶지 않습니다.’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계속 알려드렸는데도 그런 마음이 드나요? 나 자신이 나라는 걸 아는 게 두려운가요?”
마치 마음속으로 생각한 내 말을 의사가 읽은 듯이 반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 내 마음을 아는지 정색을 하며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묻고 싶은 마음은 메아리처럼 울리며 다른 음성과 겹쳤고, 다시 보니, 의사인 줄 알았던 사람은 간호사였다.
“정녕 나인 줄 모르겠더냐? 요섭아.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였더냐.”
젊은 여간호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중년 사내의 목소리로 겹쳐 들렸다. 멀리서 응급환자를 옮기는 의사가 계속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깨어 있어요. 주무시면 안 돼요. 눈 감지 말아요.”
여간호사는 나를 자애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응급하지 않은 어떤 사람을 대하듯. 그 눈빛 속으로 그의 얼굴이 비쳤다. 오래 전 그의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