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피란> 줄거리
피란민들이 몰려든 성경 도읍은 성벽이 무너지고 존비들이 퍼지며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은 성벽이 붕괴된 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성경 주변을 떠나야만 했다. 존비들은 저주파를 내뿜으며 생존자들을 위협했고, 그들의 움직임은 파괴와 공포를 남겼다. 성경 주변의 피란민들은 군사 거점에서 철저히 통제되며 불안에 떨었다.
군사 거점에서는 군인들이 피란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자유 대신 생존의 투쟁이 이어졌다. 고요섭은 과거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성경으로 돌아가 가족을 찾고자 하는 바람을 품고 있다.
한편, 존비들은 사냥감이 사라지자 서로를 공격하며 자멸해 갔다. 병력 투입을 최소화한 군은 존비들의 자멸을 유도하는 전략을 취했다.
사태가 진정되자 군 내부에서는 권력 다툼이 본격화되었다. 차요섭 중장이 기습적으로 성경 도읍을 장악하며 권력의 주도권을 쥐었고, 각 군벌은 그에 대한 대응을 고민했다. 차요섭은 군사적 성공 이후 권력 장악을 위해 전략을 모색했다. 상황은 이제 존비 사태의 해결이 아닌, 새로운 권력 질서를 둘러싼 다툼으로 전개될 것으로 암시한다.
#1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파괴된 순간, 한때 도시를 지키던 장엄한 벽들은 산산조각이 났고, 열리고 부서진 곳을 통해 보이는 성경은 폐허였다. 긴 어둠 속에서 느리게 꿈틀대는 것들이 세상을 지배하려는 듯 성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성경 도읍의 바깥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은 성벽 너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지켜보며 희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지만,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파괴된 성벽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음에 몇몇 사람들은 이미 짐을 챙겼다.
"이제 더는 머물 수 없어."
고요섭이 저주받은 듯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울림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몇몇 가족들이 침묵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다. 공포가 발목을 잡았는지, 아니면 아직도 성안에 남은 희미한 희망을 버릴 수 없어서인지, 누구도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성경 도읍을 탈출하던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던 것과는 다른 세계에 발을 내딛고 있었다. 성경 안에도, 성경 밖에도 그들이 그리던 세계는 없었다. 성경 안은 죽음의 세계였고, 성경 밖은 죽음에 붙들려 삶을 연명하던 세계였다. 성벽이 아직 남아 있었을 때, 그곳은 최소한 외부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마지막 방어선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방어선은 무너졌고, 존비들이 그들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성을 뒤돌아보며, 여전히 주변을 맴돌며 떠나지 못하는 자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며 끝까지 남았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예전에 깨어졌고, 성 안의 상황은 더 이상 그들이 상상하던 대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존비들은 이미 성문을 넘어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생명과 존엄을 잃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피부는 썩어가고 있었고, 신체는 괴이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끔찍한 소음이 발생했고, 그들의 존재는 모든 생명체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들이 스멀거리며 도시를 잠식해 가는 모습은 생존자들에게 명백한 신호였다. 이곳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곳을 벗어나야 해."
한 여인이 남편의 팔을 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남편은 묵묵히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역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누구도 쉽게 공포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것을 말하는 순간 공포는 돌덩어리처럼 들어찰 것 같았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살아남기 위한 탈출이었다.
밤바람이 차가웠고, 도시의 폐허는 점점 멀어져 갔다. 사람들이 길을 떠나면서 행렬을 이루었다. 발자국 소리조차도 조심스러웠다. 그들이 떠난 도시, 성경 도읍은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얼마 전 그곳에서 바쁘게 살았던 기억만이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 길이 어디로 향할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 없었다.
존비들의 발걸음이 도시 밖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침묵과 폐허만이 남았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리고 비틀거렸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발자국마다 남겨진 자취는 선명했다. 마치 생명이 존재했던 흔적을 지우기라도 하듯, 모든 것을 무의미한 잿더미로 만들었다. 존비들이 지나가는 길목은 생명의 기운이 사라진 황무지가 되었고, 그 황량함은 보는 이들에게도 치명적인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존비들은 영역을 넓혀가며, 세상의 곳곳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차갑고 습한 바람이 불어오며, 땅과 하늘이 모두 근원 모를 저주에 잠식당했다. 그들은 끝없이 퍼져나갔다. 그들의 눈은 생명의 빛을 잃었지만, 그 속에 담긴 끝없는 갈증과 본능적인 욕망만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인간들이 저항하던 시간은 거의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망은 임시방편에 불과했고, 언젠가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존비들은 멈추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세상은 존비들의 무형의 지배 아래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었고, 그들을 막을 수 있는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다.
성경과 그 주변은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성경 도읍은 그저 과거의 유물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을 곳으로 변해버렸다. 그곳에 남은 것은 죽음의 그림자 주변을 끊임없이 배회하는 존비들뿐이었다.
#2
성벽이 무너지고, 잔해 속에서 존비들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순식간에 혼돈에 빠졌고, 사람들은 무질서하게 흩어졌다. 그들이 들었던 것은 비명 소리, 그리고 존비들이 내뿜는 저주파였다. 그 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괴하고도 위협적이었다. 몸속 깊숙이 스며드는 듯한 진동은 무언가가 파괴되거나 부서지듯이, 신경을 한순간에 마비시켰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목을 서서히 조이는 느낌이었다.
고요섭은 간신히 혼돈 속에서 빠져나온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의 몸은 가벼워진 게 아니라 오히려 무거워졌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가 처한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숨이 가빠오고, 온몸의 근육이 저려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의 뒤편,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그들이 다시 다가올 수도 있었다. 저주파가 그에게 닿지 않는 순간엔 살아남은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그것이 진정한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잘 못 느끼는 듯했지만 분명 어딘가 불쾌해지고 소름 끼치는 진동, 저주파가 몸에 닿는 순간을 고요섭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충격적인 순간을 직접 겪은 적이 있었다.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마치 무언가가 강제로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감각. 저주파에 사로잡힌 몸은 점점 둔감해지더니, 이내 신경과 근육이 통제력을 잃었다. 이 감각은 머릿속에서 결코 잊히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 채 존비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졌다.
존비들을 피해 마을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저주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어려웠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이들만이 간신히 그 덫을 피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 다수는 저주파의 덫에 걸려 우울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무력하게 지냈다. 그들의 눈은 여전히 두려움에 휩싸여 있고, 몸은 공포에 휘말려 위기의 순간에도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저주파의 영향력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그들의 의지를 마비시키고, 그들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고요섭은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몸이 본능적으로 떨렸다. 그 감각은 너무도 생생했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는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그 순간의 공포가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손이 떨리면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혼란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들은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두려움이 그들의 입을 막았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 속에서 교차하는 감정은 다름 아닌 기적에 대한 미묘한 인식이었다. 그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들의 생존은 자신이 이룬 성취가 아닌, 단순한 우연에 불과했다. 저주파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그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을 뿐이었다.
그 기적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남겨진 이들에 대한 생각이 그들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저주파에 의해 사라져 간 사람들,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는 자신들. 도망치는 데 성공했지만, 그곳에 남겨진 자들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눈빛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자신의 생존에 대해 안도할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안도는 차가운 공포와 죄책감으로 뒤섞여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였다.
그들은 운 좋게도 저주파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다시는 그곳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억하기 싫었다. 마치 무거운 그림자가 그들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걸음은 다시금 무겁고 더디게 느껴졌다.
고요섭 역시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곳에 남아 있던 친구들은 이미 저주파에 사로잡힌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눈은 공포로 휘둥그레졌고, 사지가 굳은 상태에서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욕설을 퍼붓느라 자신의 위치를 존비들에게 온전히 노출시키면서, 정작 자신의 행동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은 닥칠 운명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대항도, 도망칠 힘도 없었다. 고요섭은 그 광경을 떠올리며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아버렸고, 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살아남아야 해."
고요섭은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존비들이 저주파를 흩뿌리며 그 뒤를 쫓고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등을 찔렀다.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었다.
밤이 깊어지자, 멀리서 보이던 도시는 어둠 속 묻혀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그들이 성경 도읍에서 간신히 빠져나왔을 때, 도시의 잔해는 그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 고요섭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주변의 다른 생존자들을 힐끔 보며, 그들도 자신과 같은 두려움 속에서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이 길이 안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출처를 모를 저주파는 그들을 따라다니고 있었고, 언제든지 그들을 다시 덮칠 수 있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고요섭은 자신에게 말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3
존비들은 산과 강이라는 자연의 벽에 완벽히 가로막혔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갔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듯 그들의 영역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저주파는 여전히 공간을 가득 채우며 퍼져 나갔다. 소리는 공기 중에 퍼져 그들이 기다리는 사냥감을 향해 끝없이 던져졌지만, 그 파동에 반응할 생명체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파동은 아무것도 포획하지 못한 덫처럼 헛되이 허공을 떠돌았다.
존비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그들의 저주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명체들이 있었다. 특히 들짐승들은 어느 순간부터 저주파를 감지한 듯 멀리 피하거나 더 이상 그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타고난 생존 감각이었다. 존비들은 들짐승들을 본능적으로 인지했지만, 그들이 이미 멀리 도망쳤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계속해서 저주파를 발산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먹잇감이 풍부했다. 사람들과 동물들이 뒤섞여 도망치다가 존비들에게 사냥 당했고, 존비들은 쉽게 사냥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들의 굶주림은 한때 채워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냥할 수 있는 생명체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인간들조차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둔감한 인간들만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마저도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결국 존비들은 갈 곳을 잃은 채, 한정된 지역 안에서 무의미하게 맴돌았다. 그들에게 사냥당한 뒤 존비가 된 존재들도 그곳에서 무의미하게 맴돌았다.
존비들의 굶주림은 점점 깊어졌다. 그들은 그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저주파를 계속해서 발산했지만, 먹잇감을 찾지 못하는 그들의 몸짓은 점점 불안정해졌다. 그들이 한정된 영역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자연의 장벽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괴수의 부재가 그들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괴수는 한때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거대한 존재가 그들에게 활로를 뚫어줬을 때, 존비들은 한정된 영역을 넘어서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 나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대한 존재는 어느 순간 사라졌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로 존비들은 방향을 잃고 허둥대었다.
존비들은 자동 반응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다. 그들의 행동은 본능적인 것이었지만, 더 이상 사냥감을 찾는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다. 그들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한정된 영역 안에서만 끝없이 맴돌았다. 그들의 본능은 갈망에 이끌렸지만, 동시에 운명에 의해 갇힌 듯이 움직였다. 그들은 점점 더 굶주려갔지만, 그 갈망을 채우기 위한 방도가 없었다.
존비들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굶주림과 갈망만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새로운 먹이를 찾아 나서지 않고, 자신들이 익숙한 경계 안에서 무한히 맴돌았다.
마치 오래된 시계처럼, 움직임은 규칙적이고 반복적이었다. 먹잇감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무의미한 순환은 점점 더 지독해졌다. 그들의 본능은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무한히 굶주린 상태로 그곳을 배회할 뿐이었다.
존비들은 마치 그들을 한때 해방시켰던 대괴수를 기다리는 듯,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저주파를 내뿜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텅 빈 공허 속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스스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저주파는 하늘을 향해 울리며 끊임없이 뻗어나갔다.
그들이 서 있던 공간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였다. 사방은 산과 강이라는 자연의 장벽에 갇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고, 존비들의 굶주림은 이제 단순한 배고픔을 넘어, 그들의 몸을 잠식해가는 파괴적인 힘으로 변해 있었다. 살이 점점 말라붙고, 그들의 팔다리는 부러진 나무처럼 삐걱거렸다. 그들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저주파는 헛된 메아리처럼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고, 존비들이 저주파를 쏘아대는 하늘은 그들에게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저주파가 퍼질 때마다 공기는 진동했고, 그 소리는 대지 위로 사라져갔다. 그것은 무의미한 울림이었다. 그럼에도 존비들은 저주파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생존하는 방식의 일부이자, 그들의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존비들은 본능적으로 길을 찾아 헤맸지만,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 경계는 그들에게 무의식적인 감옥이 되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끝없이 순환하는 비극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굶주림을 채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들의 움직임은 한때 그들을 이끌었던 본능의 잔재에 불과했고, 그 본능조차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이는 그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끊임없는 고통의 반복일 뿐이었다.
#4
사건 현장에서 도보로 이틀 정도 걸리는 지방도시에 새롭게 세워진 군사 거점은 작은 요새처럼 보였다. 외부로부터의 모든 접촉을 차단하고, 오직 허가받은 사람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거점을 중심으로 높게 세워진 철조망이 사방을 감쌌고, 그 바깥에서 피란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군사 거점은 단순히 보호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통제의 공간이었고, 피란민들은 자신의 신분과 방문 목적을 증명하지 못하면 쉽게 통과할 수 없었다.
군인들은 과중한 업무를 견디며 냉정하게 피란민들을 하나하나 검사했다. 그들은 피란민들을 자신들이 감시해야 할 위험 요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피란민은 보호해야 할 존재라기보다는 잠재적 위험 요인을 내포한 통제 대상이었다. 상황의 긴장감이 군사 거점 주변을 짓누르고 있었다.
"주민증이나 운전면허증, 또는 여권을 보여주십시오."
한 군인이 명령하듯 차갑게 말했다. 그 말 속엔 자비란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어떠한 용서도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명령이 떨어지자, 피란민들은 서둘러 주머니를 뒤적였다.
신분증을 내밀던 손은 떨렸고, 그들의 숨은 가빠왔다. 이 작은 행위조차도 두려움의 중압감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군인들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였고, 피란민들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생사의 기로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은 어쩌면 그들을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을지 모를 곳이었다. 떨리는 손, 말없이 눈치를 보는 모습, 그리고 각자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모두가 같은 불안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공간에서, 피란민들은 철저히 통제되었다.
거점 내부로 들어온 사람들은 말을 잃어버린 듯 침묵하고 있었다. 시선은 대개 바닥을 향하거나 군사 거점의 높디높은 철조망을 올려다보았지만, 그 장벽은 그들에게 자유와 안전 대신 차가운 벽처럼 느껴졌다.
거점 곳곳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배치되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아무런 감정 없이 모두를 감시했다. 군인들의 시선은 끝없이 피란민들을 따라다녔다. 피란민들은 그 시선에 움츠러들었다. 출입구는 철저하게 봉쇄되어 있었고, 그곳을 통과하려면 엄격한 신분 확인을 받아야만 했다. 누구도 무단으로 출입할 수 없었다. 심지어 피란민들은 거의 모두 그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군사 거점은 자급자족하는 작은 계획도시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도시에선 자유롭지 않았다. 사람들은 거점 안에서도 움직일 때마다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작은 행동 하나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의 출신과 여정은 철저히 기록되고 분석되었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자들은 어딘가로 끌려갔다.
그곳으로 끌려간 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피란민들은 그것을 지켜보며 자신도 언제든 그들의 차례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거점은 그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들을 감시하며 필요한 정보들을 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피란민들은 더 이상 스스로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었고, 오직 규율에 따라야만 했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숨죽였다.
경계는 하루가 다르게 강화되었다. 군사 거점의 대장은 늘 주위를 살피며, 피란민들이 몰려오는 광경을 면밀히 감시했다. 그가 보기에 피란민들은 사건의 여파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었다. 사건 현장에 있던 자들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언제든지 위험한 존재로 변모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 요소로 간주되었다. 대장은 그러한 위험을 조금도 놓치지 않기 위해, 경계를 한층 더 강화할 것을 명령했다. 군사 거점의 병사들은 이러한 명령에 따라 피란민들을 더욱 철저히 감시하며 통제했다.
거점 주변에는 촘촘한 바리케이드가 세워졌고, 그 너머로 새롭게 밀려든 피란민들의 무리가 희망을 잃은 채 모여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현실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어느 곳에서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도망칠 곳도 없었다. 군사 거점은 피란민들에게 최후의 피난처이자, 운명의 종착지처럼 보였다. 피란민들은 절망에 빠져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말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바깥에 있는 피란민들은 너무 가깝게 접근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은 곧바로 보고되었다. 사건의 여파를 차단하고,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는 최전선이었다.
군인들은 한시도 방심하지 않았다. 철저한 감시와 통제만이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안전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