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글
1. 시민영성이란 무엇인가
‘시민영성’은 종교인의 내면 수양을 시민사회의 공적 삶과 연결짓고자 하는 신앙적 개념이다. 이는 신앙을 단지 사적·개인적 신념에 가두지 않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존적 삶의 태도를 실천하는 데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다. 특히 이 개념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인이 민주 시민으로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과정에서 제안되었다.
2. 문제제기: 신앙의 절대성과 사회적 폭력성
개인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이 사회 속에서 독선적 태도와 배제의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오해나 열정 과잉의 문제가 아니라, 성리학적 위계문화와 문자주의적 신앙 해석이 결합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이기도 하다. 구약의 율법을 그대로 적용하려는 일부 해석은 차별과 혐오를 강화하며, 성경의 권위를 방패로 삼는 폭력으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3. 비타협 공존: 신앙과 공존의 긴장을 잇는 개념
이러한 우려 속에서 제시된 개념이 ‘비타협 공존’이다. 이는 자신의 신념을 희석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가치와 존재를 억지로 꺾거나 배제하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비타협’은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며, ‘공존’은 그 정체성으로 인해 타인을 억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신앙의 깊이가 오히려 더 성숙한 공공성과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4. 예수의 계명과 신앙 해석의 전환
이러한 공존의 원리는 예수의 두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에 담긴 가치의 균형 위에 세워진다.
√ “하나님을 사랑하라” → 정체성의 고수(수직적·우주적 진리의 고수, 신 앞에서 낮아진다.)
√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 배려와 포용의 원칙(수평적·민주적 박애, 인간은 가치 있고 평등하다.)
나는 이중에서 두 번째 계명, 곧 ‘이웃 사랑’이 현대 사회에서 신앙 해석의 윤리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자적 해석보다는 예수의 삶과 태도를 중심에 두는 해석 방식이 요구되며, 이는 차별과 폭력을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구절을 신중히 재해석하려는 신자의 태도와 책임으로 연결된다.
5. 시민영성을 이루는 다섯 가지 영적 덕목
시민영성은 단지 이론적 명제가 아니라, 실천적 영성으로 제안된다. 이를 위해 다음의 다섯 가지 덕목을 제시한다.
① 간곡한 초청: 진리를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리듬과 맥락을 존중하며 조심스럽게 초대하는 태도.
② 무한한 기다림: 거절이나 비동의 앞에서도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기다리는 자세.
③ 신실한 겸손: 자신의 신념조차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성찰하고 갱신하려는 태도.
④ 무조건적 환대: 조건 없이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열린 관계를 지향하는 자세.
⑤ 비폭력: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적·제도적 폭력까지도 삼가며, 타인의 존엄을 지키려는 의지.
이 다섯 가지는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신앙인이 민주 사회 속에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영성적 훈련의 내용이다.
6. 공존의 길로 나아가는 성화의 훈련
결국 시민영성은 종교적 독선과 세속적 무관심 사이에서, 제3의 길을 걷고자 하는 내면적 훈련이다. 신앙은 내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공존은 단순한 이념적 타협이 아니라 인격의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앙인이 시민으로 존재할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리 주장이나 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성찰과 더 오래된 사랑의 기술이다. 그리고 이는 다섯 가지 영적 덕목을 수양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7. 결론: 민주 시민사회의 신앙자, 그 가능성과 책임
‘시민영성’은 민주 사회 속에서 기독교 신앙인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묻는 개념이자, 공존을 위한 신앙의 필수적인 패러다임이다. 신앙의 완성은 타인을 포용하는 시민으로의 성화이다. 동시에 민주사회에서 종교인의 윤리적 존재 방식이다. “비타협 공존”은 신앙을 버리는 것이 아닌,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방식이며, 폭력이나 혐오 대신 기다림과 기도로 응답하는 것이다.
이는 교리를 지키는 것과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가 모순되지 않으며,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시민영성은 신앙과 공공성, 정체성과 공동체, 신념과 공존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이끄는 영성의 길이며, 오늘날 종교인뿐 아니라 시민 전체에게도 유효한 성찰의 언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