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결과는 분명했다. 가끔은 삶이 우리 자신을 기만해도 되는데, 성적이 너무 정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점수는 무슨 억하심정이라고 내게 주셨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거의 백지를
그것도 시험 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출하고 나간
괘씸죄에도 걸린 게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시험 시간이 절반쯤 지났을 때였는지도 모른다.
그때 제일 먼저 강의실을 나갔던 것 같다.
강사의 시선이 등 뒤를 지그시 따라오는 듯했지만,
그 눈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치 잊고 싶은 옛 연인의 이름처럼
한동안 성적표에 완고하게 남아서는
나를 괴롭혔다.
여름 학기 때
그러니까 이제는 도스가 아니라 윈도우로
공부하게 되었을 때
학점을 갈아 끼우는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주홍글씨처럼 남아 있었다.
반드시 재수강을 해야만 하는 점수인 F도 아닌 채로
재수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수 중 최하점을 준 것이다.
나는 거대한 잘못을 한 것만 같았다.
‘D-’.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분이 그런데 뭔가
찍-
가슴에 생채기가 그어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어려운 순간에 신을 찾는다지만, 그 시절
큰 차이가 없음에도
하기야 D학점에서 +나 –나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럼에도 사람 기분이 그렇기에,
그래도
성적표에서 작은 십자가 하나라도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저 ‘D+’
C학점을 예상했다가 계속 계단에서 덜컹거리며
미끄러져 내렸다.
그 과목을 철회할 수도 없고, 구제할 수도 없는
그 악명 높은 D-.
강사가 '다음엔 잘하라'며 내게 엿을 쥐어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작은 조롱 같았다.
갈아 끼우기 외에는 답이 없었다. 몇 해 뒤 여름학기에 나와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