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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민주주의: 올바른 민주주의 공기론을 향하여

개요글 & 시민영성

by 희원이
종교와 민주주의: 올바른 민주주의 공기론을 향하여


1. 문제 제기: 종교와 민주주의의 긴장

한국 사회에서 특정 종교 세력의 반민주적 행태가 반복적으로 목격된다. 국민 일부가 종교에 삶을 전적으로 위탁하면서, 종교가 세속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민주주의는 위협받는다.

정치인 역시 표를 의식해 종교 개혁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민주 시민이 스스로 삶을 위무할 수 있는 문화적·복지적 기반을 강화하지 않으면, 종교적 의존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2. 국교론의 위험과 민주주의 공기론

일부는 ‘올바른 민주주의 국교론’을 통해 방향성을 분명히 하려 하지만, 이는 곧 교조화의 위험을 낳는다.

극단적 정치세력이 국교론을 왜곡하면, 유사 종교화를 통해 극우적 정치 권력을 구축할 개연성도 크다.

따라서 국교론은 철회하고, 기존대로 “민주주의 공기론”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주의는 특정 교리나 제도를 국교처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모든 시민이 누리는 보편 질서로 자리해야 한다.


3. 올바른 민주주의의 원칙

‘올바른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보편성: 보편타당하게 검증되어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체제

- 선진성: 현대적이고 발전된 민주적 가치를 반영

- 인문성: 인간 존엄과 공동체적 삶을 존중

따라서 올바른 민주주의는 종교에 직·간접적 혜택을 주는 정책을 반대하며, 종교가 민주주의 원칙 아래 스스로 구성되도록 요구한다. 국교는 절대 있을 수 없다.


3-1. 종교의 잠재적 위험성과 역사적 교훈

- 종교는 언제든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주님이 오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서 기다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님이 오기 전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인간에게 어울리는 체제는 공화주의이자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평등하다. 그리고 어떠한 장벽이 없는 채로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 그렇게 법 없이도 사는 신실한 존재들을 상정하기에 공화주의이자 민주주의가 마지막 시험대인 셈이다. 그 전의 번영신학은 폭넓은 기회를 주려는 중간 단계이고, 종교국가라는 방식으로 강제하기도 하여 그 수를 늘렸으나,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결말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교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인위적으로 뜻을 이루려 할 때 종교는 하나님이 원하시던 공화주의-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

- 페인(Thomas Paine)이 강조했듯, 미국 민주주의는 종교적 교조가 아니라 시민적 공화주의에 기초한다.

- 성경을 보면 원래 주셨던 체제와 달리, 선진국처럼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사울을 주었으나,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다윗으로 대체하였다. 이는 권력을 맡은 자라도 제사장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는 교훈이다. 차선책으로 왕의 표본을 다윗으로 보여주셨다고 한다. 즉,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바람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부자연스럽다. 인간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려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4. 번영신학의 왜곡과 쇠퇴신학의 가능성

- 번영신학은 미국식 왜곡이다. 청교도주의를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한 결과, 신앙을 번영과 동일시하였다. 이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종교적 도구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오히려 신앙과 사회 모두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 반대로, 참된 신앙은 권력을 움켜쥐는 데 있지 않고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것에 있다. 이를 ‘쇠퇴신학’이라 부를 수 있다.

- 역설적이지만, 쇠퇴신학이 진정으로 실천될 때 막을 수 없는 진짜 번영이 불길처럼 일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의 예견처럼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원하는 신실한 신자를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사이비도 있게 되는데, 여기서 그 뜻은 ‘부자는 천국에 들지 못한다, 진정으로 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남을 너 자신처럼 아낄 수 있는가? 오로지 하나님의 뜻으로 행할 수 있는가?’ 할 때 정말 그럴 수 있는 자는 미치지 않고서야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공지진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자도 천국에 들 수 있다고 뇌내망상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과정으로는 있을 수 있지만(번영신학), 그건 진짜 시험을 위한 준비 단계라고 본다. ‘너는 나를 믿고 쇠퇴할 수 있느냐? 그 모든 힘을 나에게도 주지 말고 세상에 주어라. 그것은 나에게 주는 것과 같다.’

-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종교도 일종의 장사이기에, 권력을 내려놓는 실천은 극히 어려우며 소수만이 지켜낼 수 있다.

-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풍요로운 상황에서 시험은 더욱 커진다. 번영의 순간에 쇠퇴를 묻는다. 이찬수 목사가 번영의 순간에 모두에게 나누어주는 화두를 붙든 것도 하나님의 질문을 받은 것이라 믿는다.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질문에 대해 목사님만의 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너는 나를 믿고 쇠퇴할 수 있느냐? 그 모든 힘을 나에게도 주지 말고 세상에 주어라. 그것은 나에게 주는 것과 같다.’ 성경 논리에 따르면 진짜 신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5. 결론: 민주주의와 종교의 바람직한 관계

- 종교는 억압되지 않아야 하지만, 권장되거나 특혜를 받아서도 안 된다.

- 민주 시민이 자기 삶을 위무할 수 있는 기반은 종교가 아니라, 문화·복지 제도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

- 민주주의는 공기처럼 보편적이고 인문적인 질서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러나 종교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때때로 단호해야 한다. 종교는 민주 시민의 정신을 위협하는 독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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