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거예요? / 붉게 맺힌 피가 빛에 젖어 파랬다

소설

by 희원이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종훈은 메가데스 음반이 우주 것임을, 정확히 자신이 선물받았지만 깜빡 잊고 챙기지 못했던 그 CD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장형에게서 그때 우주가 했던 말을 전해들으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다시 몸이 너무 가려워서 마구 긁는다. 가열차게. 무언가 흔적이 진하게 남아버리듯.





♬ 이거 우주 거예요?

사장형은 결국 메가데스가 앰프를 이겨먹었다면서 역시 우주 물건답다고 했다.

“우주가 준 물건이에요?”

“응, 아는 사람한테 선물로 줬는데 놓고 갔다는 거야. 그래서 그냥 카페에서 쓰라며 주었지. 메가데스 말이야. 이제는 소용없게 된 CD라면서 CD곽은 없고 CD만 있으니 카페에 있는 빈 CD곽 아무 곳에나 꽂아 넣으라면서 줬었지, 아마. 그런데 기어이 메가데스가 사고를 치는구먼.”

사장형은 옛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메가데스…… 우주가 좋아했었죠.”

그때 부산으로 떠나기 전에 그녀와 함께 들었던 메가데스를 떠올렸다. 당시 깜빡 잊고 선물 받은 CD를 우주의 플레이어에 놓고 떠나버린 것도 떠올랐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야말로 우주다운 반발이 아니고 또 무엇일까?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면서 자기만 놓아두고 우리끼리 술 마신다고 투덜댈 듯했다.

“그나저나 너 떠나고는 연락 한 번 없다고 우주가 많이 섭섭해했어. 무정한 자식, 여자 좀 잘 챙겨?”

“예?”

사장은 웃으면서 “너네 사귀던 거 아니었어?”라고 오히려 되물었다. ‘하기야 어쩌면 내가 좋아한 것일 수는 있겠죠.’라고 생각하며 우주의 짝사랑은 사장형이었다고 발설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우주와 사장형과 있었던 날을 날짜까지 기억하지만, 사장형은 그 일까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되게 섭섭해 보이던데.”

사장형은 말을 이었다.

“우주가 아마 그랬지? 그냥 아는 사람이었을 뿐이에요. 지금 연락도 없어요.”

우주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말보로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았다. 불꽃이 격렬하게 태어났다. 불똥이 전사한 수만큼 내 몸은 그것의 흔적으로 무거워질 것이다.

나는 뭔가 아쉽고 씁쓸했지만 동시에 기쁘면서 사장형에게 위안을 받은 듯했다. 그래서 잠시 웃었다. 아까 전엔 눈물 한두 방울 찔끔 짜다가 지금은 웃고 있는, 똥구멍에 털 난 원숭이처럼 감정선의 굴곡이 심했다. 술에 취하면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편인데 뺨을 어루만지면서 실실 웃는 모습이 친구들에게도 가관이었던 모양이다. 친구 중 몇이 옆을 지나면서 위로 반 장난 반으로 내게 괜찮으냐고 물어봐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놔둬. 이왕 이렇게 된 거 손님도 나가시니 다른 곳으로 옮겨서 소주나 한잔 하자.”

사장형은 오디오 장비를 붙들고 있는 녀석들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며 내일 고치면 된다고 덧붙였다. 내가 해야 할 대답을 사장이 가로챈 것이 아님을 깨닫고 묘하게 상황의 아귀가 딱 맞는 게 신기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맥주 한 모금까지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병을 들고 맥주가 튀어나오는 구멍을 입과 일치시킨 후 ‘꿀꺽’ 소리를 내고 ‘울컥’하는 느낌을 삼키고는 레드락 병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웃다가 다시 우울한 느낌이 스치는 굴곡이 예전보다 심했다. 목젖이 여전히 미세하게 떨렸다.





♬ 붉게 맺힌 피가 빛에 젖어 파랬다

영화 블루는 막바지를 향해 나아갔다. 그럴수록 소리 없이 감정의 질감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참 장중하게 울려 퍼질 사운드트랙도 없고 블루 안에 울리던 메가톤급 매미 소리도 사라졌다. 그러자 카페 안의 미묘한 감정호르몬들이 모조리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스크린에서 우울한 사랑을 껴안고 아파하던 줄리에뜨 비노쉬는 자신의 가치를 되찾는 길을 선택하고는 영화의 문을 닫고 있었다.

분명 자유를 위한 교향곡이든 우울한 사랑을 위한 교향곡이든 파괴를 위한 교향곡이든 카페 안을 채워야 할 소리가 사라지자, 퍽퍽하게 메말라 버린 파란 빛 무덤에 갇힌 듯했다.

손님들은 본능적으로 나가야 할 때를 알아차렸는지 한둘씩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애인으로 보이던 마지막 손님 둘이 계산대로 다가섰다. 그들은 우주와 내가 4년 전에 블루를 보던 2인용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스크린을 정면의 적당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였는데 그들은 소리가 나오지도 않는 블루를 제법 그럴듯하게 감상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기어이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본 후에야 자리를 떴다.

남자가 밍밍한 분위기의 카페를 빠져나가기 위해 계산대에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수현은 카드를 받아서 결제를 위해 카드판독기에 카드를 긁었다. 기계가 영수증을 뽑느라 찍찍거렸다.

“뭣들 해. 뒤풀이 가자.”

상민이 사장형의 말에 동의하자 계산을 마치고 막 마지막 손님을 내보낸 수현이 결산을 하고 빨리 치우자며 상민의 말에 동의했다. 일일 호프를 주관한 운영진 5명과 나까지 6명이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


손님이 다 나간 뒤로 아이들은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나 역시 거들었고 웬만큼 정리가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뒤풀이를 가려면 정신부터 차려야 한다는 생각에 미쳤고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우주는 원래 블루를 좋아했던 것일까, 레드를 좋아했던 것일까. 분명 블루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녀의 모든 것은 레드를 닮았다. 혹시 둘 다 원래부터 좋아했던 것일까, 아니면 둘 다 좋아하지 않았는데 흔적처럼 그녀에게 남은 것일까.

내 머릿속은 잠시 하나의 색깔로만 들어찼다.

‘블루.’

그리고 다른 색상이 끼어들었다.

‘레드.’

우주가 우리에게 준 선물인 것 같다.

그녀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 같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것을 남겼다. 여러 갈래의 빛이 마치 하나인 양 무더기로 쏟아져 내렸다.

화장실 문틈으로 빛이 무너져 파란 여운을 남겼다. 우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거대한 코스모스에 속해있던 작은 별들이 궤도를 이탈해서 구슬처럼 바닥을 굴러다녔다. 파란 구슬들은 맑게 퍼져 곧 싱그러운 습기가 되었다. 파란 구슬은 지중해를 만들었다. 지중해를 나는 잠시 가슴에 담고는 줄리에뜨 비노슈처럼 물속에서 숨조차 삼키며 물결의 파장을 느끼려 했다. 물론 상상이었다. 술에 젖은 감상 속에서 빠르게 직조된 상상의 건축물은 부실공사였겠지만, 외양적으로 분명 장중했다.

술에 취해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상념은 그 상념의 허무함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모습이었고, 감정이었고, 냄새였고, 빛이었다.

“자, 이제 정말 끈다. 다 나가라. 종훈아, 뭐해? 얼른 나가.”

사장형 말에 상상 속에서 대책 없이 커져만 가던 건축물이 순식간에 졸아들어 거대한 파괴음을 내며 작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작은 블랙홀은 흔적도 없이 건축물을 먹어 치웠다.

하지만 여전히 잔해처럼 파란 방울들이 흘러다녔다. 파란 방울들은 제멋대로 공중을 떠돌더니, 내 몸속으로 기어들어와 제 놀이터인양 뛰어 놀았다. 온몸이 참을 수 없이 가려웠다. 나는 파란 방울들을 털어내려고 살짝 긁었다. 몸이 반응했다. 나는 노골적으로 긁기 시작했다. 긁으면 긁을수록 가려움증은 더욱 커져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종훈, 왜 이렇게 긁어대? 그만 긁고 나와.”

사장형은 멀뚱거리며 내 행동을 지켜보며 말했다. 물론 가속도가 붙은 내 행동을 막아주진 않았다. 나 스스로 내 손의 행동을 멈추어야 했다.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했다. 멈추자 목이, 배가, 얼굴이, 팔뚝이 얼얼했다. 얼얼한 팔뚝을 살폈다. 팔뚝엔 할퀸 자국처럼 여러 줄로 기다란 흔적이 생겼다. 나는 찬찬히 핏기가 어린, 기다란 흔적을 바라보았다.

붉게 맺힌 피가 빛에 젖어 파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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