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한자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에세이

by 희원이

한자를 문자로서 선호하지는 않지만,

문자 예술로서는 분명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


어렵더라도


마치 하나의 완결된 글자 하나에

우주 하나가 담겨 있는 멋스러움이 있다.

서예를 하는 사람들이 붓을 들고 한 자 한 자를 심혈을 기울이고 쓰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떡을 써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한석봉의 서체를 보면 그냥 인쇄해놓은 글씨 같은데

그러한 정갈한 글씨를 쓰려면, 그것도 붓으로 그렇게 쓰려면

항상 신중하게 획을 다루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차분하고 매순간 서체와 붓의 움직임에 몰입하는 이것은 장인의 경지라 하겠다.

그 순간을 써 내려간다고 해야 할까. 그때마다

집중하고

그 행위 자체를 예술로 여기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한자는 그런 매력을 가진 문자였다.


하지만 내가 그 멋을 온전히 느끼고 즐기기에는

아직 인공위성도 쏘아 올리지 못하고

태양계 바깥으로도 나가지도 못하는

신세를 한탄해야 했다.

글자의 광활한 세계에 질리고 마니, 그곳에서 우주 유영을 한다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버거웠다.

춥고도 위험한 공간이고,

무한하게 질식할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옥편에서 글자의 뜻 한 번 찾으려고 해도 부수자 등을 이해해야 했고,

지금도 솔직히 옥편으로 글자를 잘 찾아보지 못한다.

인터넷에서 뜻을 검색하기 위해 글자를 직접 그리듯이 쓰는 방식이 없다면

정말이지

뜻 찾는 것을 포기하고 말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부지런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문자다. 또 과거의 지식인처럼

한정된 서적을 줄기차게 공부해서 과거를 보아야 하는 이들에게나

수양을 위해 필요했던 문자 같다. 그것도

사서삼경을 모조리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글을 읽고 또 읽었던 아닌가.


생각만 해도 재미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배울 게 너무 광대해서

그보다는 나을까 싶다가도 그 책들을 모조리 씹어 먹을 것처럼 외웠다는 걸 알고 나니,

그 역시 고충이 심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험은 힘들고

그때는 인생의 전성기를 모두 지난, 그러니까 40~50대에 이르러서 급제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고,


중국에서는

일주일씩 시험을 봤다고도 하니, 참으로 입시생은 고달프다. 컨닝도 있었다는 정보를 읽고는

웃음도 나왔다.

예상문제 족보가 돌기도 했고,

무엇보다 너무 적게 뽑아서 난감했을 것이란 동정이 든다.

조선의 경우

3년마다 시험을 보기도 하고

비정기적으로 갑자기 시험을 보기도 했다지만,

일단 너무 적게 뽑는 것이 아닌가 했다.

3년마다 시행되었던 식년시에서 한 번에 33명을 선발했다고 하니,

당시의 행정 경제 인구 규모를 보았을 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공무원 시험을 볼 때 1명 뽑는 분과에서

시험 보는 입시생의 심정 같은 걸 느꼈다.


그때 한자로 공부하던 사람들도 공부하기 싫었을 것 같다.

다른 즐길 거리가 많지 않다고 해도.

공부란 대체로 그런 것이다.

한자도 그런 것이다.


“한자는 어쩔 수 없어. 일단 외워야 해.”

이것 외에는 결국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무수한 암기 비법을 알려주는 정보를 헤치고 나와서 기어이

깨닫게 되었을 때, 진실은

삭막하고 한자는

무거웠다.


나야 뭐,

헛헛했다.

한자를 알려면 매순간

한자마다 오롯이

공부해야 했다. 그 하나하나가

하나의 우주이자,

세계며,

독자적인 개인이라고

멋스럽게 말하고 싶지만,


한자는 학자였다.

내게 너무 어렵게

우주의 진리를 설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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