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시 공부를 잠깐 한 적이 있고,
중학교 때부터 <한문>이란 과목도 있다 보니,
한시도 공부하고, 번체 한자 자체에는 익숙한 편이었다.
그래서 일본어를 전혀 몰라도
중간
중간
한자를 보고 맥락을 짐작하는 것도
약간은 가능했다는 점에서
유용했다.
한자가 좋다기보다는 한자를 배워두면,
한자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문화권에서
불편을 덜 겪는다는 의미로 유용했던 것이다.
사실 한자를 배우고 쓰면서도,
한자가 좋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드물다.
우리 단어에서 구별을 위해 부득이하게
필요한 경우도
이제는 영어로 주석을 달아 구별하면 크게 불편함이 없고,
실제로 법학 등이 아니라면 영어 개념이 더 보편적이다.
심지어 디지털 세대로 진입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낼 때도 한자의 매력은 반감되고,
한글의 우수성은 돋보였다.
스마트폰 세대에서 한글이 돋보였던 건
디지털 기기에서 한글의 자음 모음 등이 초성 중성 종성으로 조합되어서 적은 문자로
많은 글자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한자가 매력적이라고 느낀 건 글자 자체의 예술성 정도였다.
그런데 딱 한 번
한자의 예술성이 실용적으로 겹쳐서 보이던 때가 있었다.
고시원이었나
어디였는지 장소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한 중국인 유학생이 정갈한 글씨체로
공책에 필기를 한 것을 보았을 때였다.
한 번 빠르게 필기한 것을 정서한 것으로 보였는데,
굉장히 분량이 많았을 것 같은 내용을 고작 공책 반바닥으로 기록해놓았던 것이다.
반바닥밖에 쓰지 않았지만, 그 정갈했던 한자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처음으로
한자의 압축성이 지닌 매력을 느꼈다.
물론 그 때문에
여러 해석이 모호하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중국어와 한자를 깊이 몰라서 그런데
세부적인 문체의 어감, 말끝의 어조 등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특정한 뜻만이 머릿속에 부유하는 것일까 하는 궁금함은 생긴다.
예를 들어
‘나, 연대, 너, 민주주의, 승리’이라고 단어를 나열한다면
“나는 너와 연대한다,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하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나는 당신과 연대합니다. 민주주의 승리를 향해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라고 하는 것과
구별이 되는 것인지 하는 궁금증 같은 것.
그래서 그러한 요소가
묘하게 공존하면서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할지,
그래서 문학의 시를 읽을 때 중국 시는 우리의 표음 문자 체계의 시와는 다른 입체성이 있을지 하는
궁금증 같은 것이다.
어쨌든 어렵고도 표의적인 한자가
압축적인 모호성 덕분에
매력적이라는 것을 그때 느껴본 적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