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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l 21. 2023

곰팡이 냄새와 낡은 군화

콩트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하거나, 그냥 콩트만 쓸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미지 한두 장만으로 계속해서 콩트글이나 삼행시를 쓰는 방식을 채택할 수도 있다. 때로는 1부 2부 3부 등으로 나누어 신발, 의자, 의자에 앉은 노인을 각 부의 테마 그림으로 배치하고는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상상을 동원해보는 시도를 해볼 수도 있다. 그림에 천착한다면 흐름이 생길 수도 있다. 
- 놀이글 스타일이지만, 구별해서 원피스 스타일로 칭했다. 이 글의 경우, 원피스 스타일을 적용한 콩트. 당연히 기존에도 활용하는 구성이겠지만, 그냥 편의상 그렇게 부른다. 





Vincent van Gogh


 방이 습하다는 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술을 마시고 바로 골아 떨어졌다. 때로는 술에 취해 들어오기 일쑤였다. 야근 탓에 늦게 들어와 잠만 자야할 때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동료가 어렵게 말을 걸으며 오랜 고민을 털어놓으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말이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 요즘 자네에게서 냄새가 나. 집에 습기를 제대로 제거되지 않으면 곰팡이가 슬거든. 그러면 옷이나 신발, 집안 가구에 냄새가 배는데, 이거 냄새 제거하려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야.”

 그렇게 그는 줄곧 망설이는 표정으로, 곰팡이 냄새의 존재를 인지시켜 주었다. 그래서였나? 요즘 따라 여직원들이 표정 관리를 하려고 하다가도 가급적 남자를 피했다.

 그날 집에 일찍 귀가하여 장롱을 열어 보았다. 평소 때 입는 옷에선 냄새가 옅어 잘 몰랐지만, 오래 보관한 옷과 운동화에선 모조리 짙은 곰팡이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게 곰팡이 냄새라인지 몰랐다. 숨을 쉬자니 다소 퀴퀴한 냄새, 끈적끈적하고 기름기처럼 미끈한 촉감을 타고 드러나는 냄새. 누군가에게서 난다면 아무래도 피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냄새였다.

 급한 김에 원룸을 빼서는 근처 고시원으로 숙소를 옮겨야 했다. 일단 단출하게나마 필요한 짐을 옮겨놓고는 세탁할 물품을 분류하였다. 

 남자는 슬리퍼를 신었다. 삼선 슬리퍼 위로 고시원 이름이 적혀 있고, 청담동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그런 냄새와 고시원 이름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비교적 깨끗한 동네. 비싼 동네로도 알려져 바깥에 나가면 어떤 식으로든 고시원에 살고 있는 것을 티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런 건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식으로’ 위장된 감정을 애써 변명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동네의 평범한 주민 행세를 하였다. 그곳엔 가난이 어울리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청객처럼 가난은 그 동네에도 존재했다. 남자는 그 가난을 규정하는 구성원으로 속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급하게 가져온 짐을 뒤져보니 냄새 탓에 마땅히 신을 만한 운동화는 없었다. 그나마 냄새가 덜 나는 것은 낡은 군화뿐이었다. 허름한 츄리닝 차림에 낡은 군화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지만, 슬리퍼를 벗고 자신의 출신을 밝히지 않으려 했다.

 “와, 왜 이렇게 방치했어요? 이거 세탁하려면 다른 세탁물이 다 망가져요. 그냥 버리고 새로 사는 편이 나아요.”

 세탁소 주인의 말을 듣고 나오면서 초라한 군화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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