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목차: 놀이글의 비평]
Ⅰ. 서론
Ⅱ. 본론
Ⅱ-1. 이론적 배경(a): 놀이란 무엇인가
Ⅱ-2. 이론적 배경(b): 놀이의 비평
Ⅱ-3. 응용 사례: 놀이글
1) 놀이로서의 글
☞ 나의 놀이글
☞ 놀이글이란
☞ 놀이글의 비평
2) 놀이글의 유형
☞ 혼자서 하는 저술 놀이
☞ 여럿이 하는 저술 놀이
☞ 웹과 저술 놀이
3) 놀이글의 활용과 효용
☞ 놀이글의 활용 가능성
☞ 놀이글의 효용과 의의
Ⅲ. 결론
참고문헌
미주
3) 놀이글의 활용과 효용
그런데 이러한 ‘놀이글’이라는 형식과 ‘저술 놀이’와 같은 방법은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일까?
솔직히 처음에는 왜 이게 존재해야 하는지 나로서도 명확히 말하기 어려웠다. 그저 다양한 표현이 있으면 좋은 것이며, 각자가 자기 잠재력을 위해 이러한 방법을 응용하기 바랐을 뿐이다.
그래서 놀이글이나 저술 놀이의 쓸모나 의미를 짚기 전에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했었다.
☞ 놀이글의 활용 가능성
놀이글은 우선 앞에서도 언급했듯 놀이글 경연대회와 같은 행사를 생각해볼 만하다. 물론 이것 자체로는 딱히 어떤 활용의 의미가 있는지 말하기 어렵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SNS 상시 중계 등을 해서 독서 문화나 참여저술 문화에 기여할 만한 여지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혹은 산업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았다. 예를 들어 연예인의 지속적인 이미지 창출을 위해 기획자가 좀 더 꼼꼼하게 연예인 가상 서사를 연출할 방안으로 팬픽 등의 글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때 놀이글의 흥미를 극대화하고 팬덤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최근 뮤직비디오 제작에 팬들을 참여시키듯,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고 전문 작가를 고용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예인과 교감하는 놀이글을 써내려갈 수도 있다. 또한 뮤직 비디오처럼 뮤직 스토리를 소비할 가능성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놀이글이라는 형식 자체를 발전시켜 장르화하는 도전도 해볼 만하다.
면접 등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기업들에서 지원자의 협동성이나 심성 등을 알아보기 위한 놀이면접을 하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방식에 놀이글을 얹어 지성적이고 재치 있는 감각 등도 파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심리치료를 위한 놀이글의 활용은 어떨까?
다만 이러한 활용 방안의 구상은 어디까지나 구상일 뿐이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을 살피는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제안만으로 구체적인 실천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사실 이러한 활용을 먼저 고민했지만 결국 내가 놀이글와 저술 놀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한동안 천착했던 것은 바로 놀이글의 핵심적인 효용 잠재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 놀이글의 효용과 의의
나는 오래 전부터 지식놀이, 더 나아가 저술 놀이에서 지성이 발현할 만한 가능성을 검토했었다. 흥미 있는 독서와 글쓰기가 가능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놀이글에 참여하는 자들이 생기고, 결국 지식친화적인 문화의 형성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아무리 조잡해도 좋으니 문자와 글로 노는 문화가 있기를 바랐다.
정신분석가 구스타프 융은 “새로운 것의 창조는 지성이 아니라 놀이 충동에서 생겨난다. 창조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대상과 함께 논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유희적인 놀이로서의 글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했다. 무형식으로 자유롭게 쉽게 글을 창작할 방식을 찾다 보니 B글, 잡담글, 잡문, 혼종적 에세이, 이야기, 산문 등등의 형식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뇌 발달의 기초는 놀이라는 의견이 있었기에(주1), 결국 놀이를 닮았지만 놀이의 작동 구조를 지니지는 않은 B글, 잡담글, 잡문, 혼종적 에세이, 이야기, 산문 등등의 창작 기법은 해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상호반응성과 과정 중심의 창작 형식인 놀이글까지 실험해보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연예인의 자료를 가져다 쓰면서 순식간에 대화하듯 이야기를 즉흥 창작하는 기법이자 형식을 우연히 배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놀이글에서 과정의 의미가 거세된 채 예술 비평 기준에 맞춰 과정의 의미가 축소되었다. 놀이글을 변호하고 싶었다. 그래서 놀이의 특성과 비평 방법을 고민하던 와중에 놀이글의 대의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해답을 내보려고 했었다.
첫 번째 해답은 흔한 것이었다. “진정한 놀이는 어른들이 보통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주2)면서 취향을 존중해달라고 주장했던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변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자면, 이제 이렇게 말해야겠다.
첫째, 민주 시민 문화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놀이 문화가 중요하다.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는 합리적인 체제를 마련하여 결과의 기복을 줄이려는 습관과도 맞닿는다. 예술은 전근대의 경우 신에게 향하던 재능의 결과물이었고, 근대에 들어서는 조금은 우월한 인간이었던 천재나 예술가의 산물로, 압도적인 결과를 중시했다. 그런 면에서 그러한 결과물들은 온전히 민주적일 수는 없다. 놀이글은 과정을 중시하고 시민참여저술의 민주적인 이상이 반영된 글쓰기 형식이다.
둘째, 그 형태의 정해진 바가 없고 잡담의 형식으로 주로 드러나거나 게임이나 퀴즈의 형태를 띠므로 역시 그것을 하기 위해 안목이 중요하지 압도적인 기량을 요구하지 않는다. 창작의 장벽이 높지 않다.
셋째, 표현의 방법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놀이글은 언제든 다른 방식의 의미 있는 장르를 탄생시킬 잠재력 덕분에 역동적이다.
넷째, 즐거움을 주면서 대중적 요소를 가미하여 관심과 참여를 자극할 수 있다. 지식친화적인 시민과 문화의 탄생을 보려면 대의보다는 재미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더 깊은 지식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다섯째, 놀이글은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상상에 관한 자유로운 기초 훈련용 장르일 수 있다. 언뜻 근대의 예술관에 근거할 때 과정 중심의 놀이글은 저급하게 평가될 수 있으나, 지식을 가지고 자유분방하게 놀 수 있다는 점에서 놀이글은 유력한 교육용 수단이 될 수 있다.
사실 놀이글의 창작 구조나 작동 구조는 알게 모르게 인터넷에 만연되어 있다. 다만 정제되지 않은 네티즌의 글쓰기 방식에서 많이 보일 뿐이다. 매쉬업, 매드무비 등의 탁월한 창작 기법만 살펴도 대단함을 느낄 때가 많다. 비슷한 맥락에서 놀이글이 지식의 확산에 도움을 줄 개연성은 충분하다.
(주1) 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 《놀이의 반란》, 208쪽
(주2) V.Glasgow Koste, 《놀이, 유년기의 예술》, 11쪽